"일의 양은 그대론데...병원이 당직자 아이디 사용 종용, 시간외 처방 걸리면 사유서 작성"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채 기자] 수련병원이 공공연하게 시행하는 EMR 셧다운제로 인해 전공의들이 의료법 위반에 내몰리는 일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8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근 회원들을 대상으로 ‘EMR 셧다운제’ 실태 파악을 진행했다며 “상급종합병원, 기타 수련병원 등 수십 곳에서 비정상적인 EMR 접속이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설문에는 총 1076명의 전공의가 참여했다.
대전협은 “(설문을 통해) 전공의의 전자의무기록 ID가 근무시간 외에는 접속이 차단돼 불가피하게 당직하는 타인의 ID를 이용해 처방기록을 입력해야 하는 현실이 낱낱이 밝혀졌다”며 “일선 전공의가 정규시간에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법 위반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이 직접 진찰하지 않고 진단서 등 증명서를 발행하거나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는 것은 위법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A 전공의는 “업무량이 많아 도저히 정규 근무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다. 환자를 직접 확인하고 처방하지 않으면 처방해 줄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 교수가 환자를 보지도 않는다”며 “어쩔 수 없이 다음 당직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처방을 내놓고 간다. 일을 다음 사람에게 던지고 갈 수는 없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지방의 B 전공의는 “병원 수련담당 부서·의국에서 대놓고 당직자 아이디 사용을 종용하고 있다. 전공의법 때문에 근무시간 외 처방을 냈다가 걸리면 오히려 전공의가 사유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EMR 셧다운제에 대한 폐해를 밝혔다.
대전협 실태조사 결과 실제로 EMR 접속차단이 업무량을 줄이거나 퇴근 시간 보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무려 85%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박지현 회장은 “EMR 접속을 차단한다 해도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의 양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EMR 접속을 차단함으로써 수련병원이 서류상으로 전공의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근거를 생산해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경민 수련이사는 “전공의법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이 제한돼 인력이 충원돼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수련병원은 보여주기식으로 80시간을 넘지 않도록 EMR 기록만 막기 급급했다. 법이 제정됐다 한들 어떻게 수련환경이 개선될 수 있겠는가”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도 국립중앙의료원의 비정상적인 EMR 접속기록을 지적하며 전공의 근무시간 외 EMR 접속을 차단하는 정황을 공개했다.
여한솔 부회장은 “근무시간 외 EMR 접속을 차단함으로써 전공의의 실제 근무 기록을 왜곡하고 대리처방을 유도해 수련병원이 전공의가 의료법을 위반하도록 적극적으로 종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박지현 회장은 “서류상으로는 마치 전공의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근무시간이 지나도 타인의 ID를 통해 처방하며 일해야 하는 게 전공의들의 불편한 현실”이라며 “대전협은 이 문제를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앞으로도 EMR 셧다운제 폐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