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에 공식 대화테이블을 제안하면서 조용하던 의협이 대화를 먼저 제안한 뒷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의협이 전공의 7대 요구안 수용 이전엔 대화를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던 것과 대비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먼저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수동적인 모습만 보였던 것과 달리 먼저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정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판도가 시작될 수 있다는 기대감 역시 감지되는 분위기다.
여러 혼란 사라진 대통령 탄핵 직후가 문제해결 적기
8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우선 의협의 입장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시기'가 주요했던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정부와 대화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성과를 낼 수 있을 때 공개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왔다.
이같은 발언 취지를 고려했을 때 의협은 지금이 성과를 낼 수 있는 적기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대통령 탄핵이 지연되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가중되고 책임 있는 대화 주체에 혼선이 생기면서 대화를 시작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진 상황에서 더 이상 갈등 해결을 미룰 이유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이 의료대란 상황의 새판을 짤 수 있는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역시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학생과 전공의들은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그동안 받았던 상처가 위로 받았을 것으로 평가한다. 다친 마음을 열고 이들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달라는 것은 사직전공의와 의대생도 나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라고 말했다.
의협은 현재 의대생 제적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집행부가 문제해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탕핑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즉 이번 공개 대화테이블 제안은 '수업거부'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의대생들이 마음을 돌려 정상적인 의학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도 이들에게 수업에 참여할 대의적 명분을 달라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의협 사정에 정통한 의료계 관계자는 "탄핵 이전엔 대화 주체 자체가 애매했지만 탄핵까지 이뤄진 상황에서 의협이 더 이상 대화하려면 먼저 정부가 움직여달라는 수동적 입장만 고수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한 협상→공개적 압박·대화로 대정부 협상 전략 전환
반면 의협이 대정부 협상 전략을 조정한 것 뿐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의협은 정부, 국회 등과 수시로 소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김성근 대변인 역시 인정한 부분으로 그 대상엔 한덕수 권한대행 역시 포함돼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비공식 루트를 통해 원하는 성과 조율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더 이상 물밑으로만 조용히 협상해선 의정갈등 상황을 끝내기 어렵겠다는 셈법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조용한 협상'에서 '공개적 압박'으로 전략을 바꾼 것으로, 투쟁과 공식 대화라는 투트랙을 동시에 가동해 정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압박하고자 하는 전략인 셈이다.
여기엔 탄핵 이후에도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들이 여전히 기존 의료개혁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의협은 20일 총궐기대회를 시작으로 '파업, 휴진' 등 강경 투쟁을 연상케하는 단어들을 쏟아냈고 그와 동시에 정부와 국회가 참여하는 공식 협상테이블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 이후 새 정권 들어와도 의대증원 문제 해결 난망 예상
의협이 협상을 서두르는 또 다른 이유론 대선 이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의대증원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꼽힌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의대증원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증원 자체엔 찬성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대표는 '2000명 증원이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증원 방향성은 바람직하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에 더해 민주당은 의료계가 반대하는 공공의대 신설 등 정책까지 당론으로 지지하고 있어 오히려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이외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과 비공개 회동 공개 여부를 시작으로 갈등을 빚어왔고 경북 국립의대 신설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 김성근 대변인은 "현 정부를 책임질 권한대행으로서 이 문제를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책임질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해결에 나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조용하던 의협이 먼저 대화를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정갈등 상황이 해결될 수 있는 또 다른 국면이 시작됐다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협상테이블이 마련된 이후엔 보다 가시적인 대안들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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