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3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동네의원 의사가 직접 찾아가 진료하는 재택 의료 서비스, 일명 왕진 시범사업을 위한 ‘재택 의료 활성화 추진계획’ 최종안을 보고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건정심 발표 당일 상임이사회 결의를 통해 재택 의료서비스 시범사업을 거부하기로 하고, 성명을 통해 의료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만큼 재택 의료 활성화 추진계획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의협은 협의 과정에서 건정심 소위원회 특정 위원에 의해 재택 의료 활성화 방안이 왜곡, 변질했다며 이로 인해 국민이 재택 의료서비스 혜택을 누리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여러 방면에서 의료계를 옥죄는 정책과 규제가 쏟아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의협의 적절한 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의협이 태생부터 다양한 조직에 소속된 회원을 근간으로 구성된 한계점이 최근 들어 더욱 심화하는 양상이다.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면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처럼 의협 집행부는 집행부답게, 의협 대의원회는 대의원회답게, 산하단체는 산하단체답게 행동하고, 본분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러나 과연 현실은 어떤가?
제40대 의협 집행부가 출범해 임기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현시점에서 회원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한 성과가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반추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 최대의 화두였던 문재인 케어 저지 실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분석심사 선도 사업 강행 방치,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 수용, 커뮤니티 케어 및 방문 진료 추진, 한방 추나요법 급여화 저지 실패, 의료계의 수가 인상 요구 관철 실패, 불법 PA의 양성화 시도 방치 등 정부 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펼치지 못한 결과 회원의 권익에 막대한 침해가 발생했고, 의협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의협 집행부가 이런 난맥상에 빠진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도 의협 대의원회는 집행부 못지않은 안이한 대처로 회원의 권익옹호를 방치해 위상에 심각한 훼손을 자초했다 “개인 회원이 의협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집행부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반대만 한다”, “대안이 있다면 제시하라” 등 대의원인지 집행부 임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궤변으로 대의원 여론에 분탕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본적 대의원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길이 아니면 그 길로 나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 대의원의 임무다. 자신이 추구하는 의협을 만들고자 하는 구상을 한 자는 집행부에서 자신의 소신을 펼치면 된다. 대의원 내부적으로 아무런 의견과 발언이 없는 빈껍데기 상황에서 대의원회 운영위원회조차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피상적인 의사 결정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의협 대의원회에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된 것에 대해 본인을 비롯한 대의원들과 대의원회 의장 역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협 집행부는 모든 현안을 상임이사회 외에도 시·도의사회장 회의에서 논의하고 있으나, 실제 정책이 결정돼 움직이는 방향을 보면, 시·도의사회장 회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이런 회의에서 허심탄회한 중대사가 논의되기보다 회장의 의지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
비록 시·도의사회가 의협의 산하단체이나 실질적으로 회원의 의견을 가장 가까이에서 수렴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회의에서 시·도의사회장의 의견이 충분하게 반영되고 다양한 요구가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일부 시·도회장에 의한 일방적인 회의 진행 행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하고, 무의미한 회의로 의협 집행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오판에 면죄부를 주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회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의협 집행부만 쳐다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집행부는 현안에 대한 대처나 회원과의 소통은 부실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한 채 회원의 권익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의-정 협의를 위해 지나치게 정부에 많이 양보하고 있다.
아울러 정책 추진과정에서 의협의 권위에 도전하는 의학회의 행동에 철저한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협회장 자신의 불신임을 막기 위해 의학회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려 한다고 우려하는 일부 시선이 있다.
지난 1년 6개월간 의협 집행부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처참한 결과만이 남아 있다. 투쟁을 위해 만든 투쟁위원회는 식물화한 지 오래고, 여전히 정부의 정책 발표에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은 출범 초기와 다를 바 없다. 내부통제에도 실패해 여러 잡음이 가십거리로 기사화되는 현재의 모습에서 의협이 진정 의사가 만든 단체인지 의심스럽다.
의협이 지성인으로 학자로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못할망정 국민과 정부로부터 대책 없는 단체로 지탄받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 정부와 국민의 정서는 이미 극단적인 이익추구 단체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의사 이전에 학자로, 학자 이전에 인간이 되라”는 노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 의협이 사회에서 올바른 위상을 확보하도록 다 함께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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