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12.17 07:31최종 업데이트 24.12.1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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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복지부의 기계적인 업무정지처분에 제동…"환자 전원으로 생명 위협 시 공익 침해"

수도권 유일 CRE 환자 입원 가능 요양병원, 복지부 상대 '업무정지처분 취소 소송'…대법원 "과징금 갈음 고려했어야"

대법원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법원이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에 업무정지처분을 내릴 때 해당 업무정지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가져올 수 있는 경우를 따져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복지부가 기계적으로 업무정지처분을 내린 병원은 수도권에 유일한 감염증 환자 요양병원으로, 복지부의 업무정지처분이 시행될 경우 100명이 넘는 환자가 다른 병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이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업무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인 A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의 판단을 인용하며 최종적으로 업무정지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5년 7월 1일부터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이자 의료급여법상 의료급여기관인 B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로 2018년 11월 12일부터 16일까지 보건복지부로부터 현지조사를 받았다.

복지부는 A씨가 ‘약제비 실구입가 산정기준 위반청구’로 요양급여비용 8511만원과 의료급여 1956만원을 부당하게 편취했다며 요양기관 업무정지 30일 처분,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20일 처분을 내렸다.

A씨는 복지부 고시 약제 및 치료재료의 비용에 대한 결정 기준에 따라 요양급여에 사용된 약제의 구입 금액은 분기별 구입한 약제총액의 합을 총 구입량으로 나눈 가격(분기 가중평균가격)을 다음 분기 둘째 달 초일 진료부터 3개월까지의 진료분의 구입약가로 산정해야 하지만 분기 가중 평균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의료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A씨는 분기 가중 평가가격이 6원인 의료용 산소를 청구단가 10원으로 요양급여비용과 의료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약제비를 분기 가중 평균가격 보다 높은 금액으로 청구한 것은 명백한 과실로 처분 사유가 부존재한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B병원은 원무업무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산으로 공단에 대한 급여비용 청구 업무를 처리하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의료용 산소 가격이 10리터당 10원으로 설정돼 있었고, A씨는 해당 설정을 병원별 시가로 수정해야 함을 알지 못한 채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했던 것이다.

A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사전조사에서 의료용 산소의 단가 설정에 대해 지적받은 이후 즉시 이를 수정해 현재까지 실거래가로 산정해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해 오고 있다”며 “단순한 착오로 요양급여비용을 잘못 청구한 것에 불과하고 사익을 위해 고의로 단가 책정을 잘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A씨 측은 복지부가 업무정지처분을 갈음해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었음에도 B병원에 대해 업무정지 처분을 한 것은 재량권의 일탈 및 남용의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나 B병원은 2023년 9월 1일 기준 137명의 환자가 입원 중인 병원으로, 이들 환자는 모두 다른 병원에서 전원 돼 온 카바페넴내성 장내세균속균종(CRE) 감염증 환자인데 입원 환자 중 대다수가 70세 이상의 고령 환자였다.

CRE 감염증은 카파베넴 계열 항샹제에 내성을 보이기에 치료가 어렵고, 특히 장기재원환자와 인공호흡기 또는 중심정맥관 등의 침습적 처치를 받고 있는 중환자의 경우 치명률과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CRE 환자는 기본적으로 격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국내에 있는 CRE 감염증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종합병원 내지 요양병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심은 서울고등법원은 A씨 측이 주장한 현지조사의 절차적 위법성 및 A씨가 ‘과실’로서 처분 사유가 부존재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재량권의 일탈 및 남용의 위법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먼저 재판부는 A씨가 금액이 잘못 산정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이 고의가 아닌 '착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착오라고 하더라도 산소의 단가가 평균 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책정돼 청구된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이라며 '약제비 실구입가 산정기준 위반청구' 사유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복지부가 제재적 행정처분이 재량권의 일탈‧남용을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그 위법성을 인정했는데, B병원이 수도권에서 몇 안 되는 CRE 감염증 치료 거점병원으로서 대학병원 응급실 수준의 의료장비를 대규모로 갖춘 병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이 병원의 입원환자들은 대학병원급 3차 병원에서 전원돼 온 CRE 감염증 환자들로서 장기간 입원 치료를 요하는 환자들"이라며 "대학병원 측이 이들 환자에 대해 기본적인 치료를 한 후 장기간 이어질 후속 치료를 위해 B병원으로 전원시킨 것이다. 이러한 전원 조치의 주된 이유는 병실 수가 바족한 대학병원이 장기간 격리병실을 이용해야 하는 CRE 감염증 환자를 모두 수용하기 곤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만약 B병원에 대한 업무정지 처분이 적법하다는 확정된다면 B병원에 입원한 CRE 감염증 환자 모두 대학병원이나 다른 요양병원으로 전원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CRE 감염증은 접촉에 의해 감염되기에 그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해야 하므로 격리 돼 치료를 받아야 하고, CRE 감염증 환자를 적절히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격리병실 및 고가의 의료 장비 등을 포함한 제반 시설을 충분히 갖춰야 함에도 그런 요양병원은 극소수이므로, CRE 감염증 환자를 타 요양병원으로 전원시키는 데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B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의 52명은 혼수상태로 고압산소장비 등에 호흡을 의존한 채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들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 경우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99조 제1항은 업무정지 처분이 해당 요양기관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심한 불편을 주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업무정지 처분을 갈음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며 "물론 이는 복지부의 재량이나 B병원에 대한 업무정지 기간 동안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찾아 이동해야 하는 등 심한 불편을 주는 것이라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A씨는 현지조사 단계에서 약제를 분기 가중평가가격보다 높게 청구했음을 인정하면서 조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복지부는 단순치 처분 사유와 같은 사실관계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업무정지 처분은 의료기관의 부당 청구를 제재함으로써 공적 재원으로 운용되는 요양급여와 의료급여 재정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그런데 업무정지 처분으로 인해 A씨는 병원의 명예가 실추되고 환자와 고객의 신뢰 손상으로 인한 사익 침해뿐 아니라 병원에 입원 중인 CRE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초래돼 공익의 침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심 재판부는 복지부의 업무정지 처분으로 인해 달성하려는 공익에 비해 그 처분으로 초래될 A씨의 사익 침해와 공익 침해 정도가 더 중하다며 피고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해당 사건은 복지부의 상고로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대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주면서 해당 업무정지처분은 취소될 예정이다.

1심 패소 후 찾아온 사건을 2심부터 맡아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김준래 법률사무소의 김준래 변호사는 "복지부가 현지조사 관련 행정처분을 할 때, 요양기관이 초창기에 업무정지처분을 선택했더라도, 복지부는 요양기관과 환자의 공익을 고려해서 과징금처분이 더 적합하다면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법리를 대법원이 최초로 정립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나아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복지부가 오히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업무정지처분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복지부의 업무수행 최고의 목표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의 보다.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지켜줘야 할 주무관청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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