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대한중환자의학회 김정민 홍보이사, 세종충남대병원 문재영 교수, 순천향대 천안병원 김진영 교수, 의정부 을지대병원 선현우 교수, 용인세브란스병원 최지수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1인 중환자실을 갖춘 병원이 국내에 하나둘 늘고 있는 가운데, 감염관리와 환자 프라이버시 보호 등으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설과 인력 비용으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현장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장기적으로는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의 번아웃 방지와 소송 위험 방지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대한중환자의학회 홍보위원회는 지난 8월 ‘중환자실, 왜 1인실인가’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갖고, 실제 1인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 의료진과 함께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김정민 홍보이사(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의 진행으로 세종충남대병원 문재영 교수, 순천향대 천안병원 김진영 교수, 의정부 을지대병원 선현우 교수, 용인세브란스병원 최지수 교수가 참여했다.
[동영상 보기] 대한중환자의학회 좌담회 '중환자실, 왜 1인실인가'
세종충남대·순천향대천안·용인세브란스병원 등 1인 중환자실 속속 증가
세종충남대병원 문재영 교수는 “2017년 새 병원 건립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중환자실 디자인을 의뢰받고 고민하게 됐다"라며 "중환자의학 체계가 많이 발전하면서 기술도 발전하고 지식도 많이 쌓였지만, 중환자실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의 중환자실은 1인실이 대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문 교수는 "우리가 일하는 환경, 환자가 치료받는 환경이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환자실 전체를 1인실로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됐다”고 했다.
1인 중환자실을 운영하면서 달라진 건 환자와 보호자의 인식이다. 문 교수는 “특히 세종시에는 소아 환자들이 매우 많다. 보호자들이 자신의 아이가 치료받고 있는 환경을 옆에서 보고 싶어하고, 아이도 엄마 아빠와 함께 치료받을 수 있어 정서 안정에도 도움된다. 의료진도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소진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순천향대천안병원도 올해 5월 새 병원을 개원하면서 중환자실을 1인실로 설계했다. 김진영 교수는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1982년 개원을 한 이래 한 40여년간 노후화된 병원에서 진료했다. 이번에 새롭게 병원을 개원하면서 중환자실을 1인실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순천향대천안병원은 2023년 말 5기 상급종합병원 지정에서 탈락한 이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중환자실 투자를 결정한 계기가 됐다.
김 교수는 1인 중환자실이 무엇보다 환자안전에 가장 영향을 미쳤다며, “중환자실 병상이 창가에 놓여 있어 자연채광을 통해 최대한 섬망을 줄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1인 중환자실 설계에 참여한 용인세브란스병원 최지수 교수는 “중환자실 전체 병상이 간호사 스테이션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곳곳에 두고 천장에도 배치하면서 간호사가 환자에게 일어나는 일을 빨리 확인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1인 중환자실이 효과적인 것은 감염관리에 있다. 문 교수는 “중환자실은 요양병원, 요양원, 다른 중환자실 등에서 환자를 전원받는 경우가 있다. 감염질환이 걱정될 때가 많은데, 1인실 구조에서는 감염질환으로 인한 아웃브레이크가 되지 않는다.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바로 통제가 가능하다”고 피력했다.
최지수 교수는 “중환자실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치료가 많은데, 여기서 환자들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라며 “보호자들이 환자를 면회할 때도 제약을 받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고, 임종 면회 때도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료진 입장에선 1인 중환자실의 힘든 점도 공존한다. 시설 비용 물론 인건비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의정부을지대병원 선현우 교수는 “1인실이 많은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동선이 길다. 응급 상황이 많은 중환자실 특성상 CRRT(지속적 신대체요법), 인공호흡기, 투석기기 등을 사용해야 하는데 동선 낭비가 심화될 수 있고 그만큼 근무 환경이 힘들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진영 교수는 “1인 중환자실을 만들 때 설비나 운영 두가지 측면에서 비용 부담이 있다”라며 “특히 1인실 병상은 기존 병상에 비해 환자들이 장비를 공유할 수 없어서 1.5~2배 정도 장비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1인 병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병원에서 인건비 보조가 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으로선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중환자실 가야할 방향이지만 시설·인력 제도적 뒷받침 필수
1인 중환자실은 가야할 방향이지만, 인력 지원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지속 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한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무조건 병상을 늘려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문재영 교수는 “1인 중환자실 구조는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중환자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치료의 핵심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자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문 교수는 “1인 중환자실의 장점을 극대화하려면 충분한 인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병원이 중환자실에 충분한 숫자의 간호사를 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 그러한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선현우 교수는 일반 병실 대비 중환자실 병상 수의 비중을 높이면 지원금이 나오고 있는 정책과 관련해 “무분별하게 중환자실 비율만 늘리는 것만 추구한다면 중환자실 병상 비율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병원에서 정책적으로 중환자실을 무리하게 늘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 교수는 "가령 1인실을 좁게 만든다거나 병상 수에 비해서 지나치게 많은 중환자실을 운영하게 되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중증 환자가 아닌데도 중환자실에 하루 이틀 더 있게 하거나, 병실이 부족해서 환자들이 하루 이틀 더 중환자실에 있게 되는 상황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송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필수과 지원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중환자실에 대한 정책 지원으로 필수과 지원을 높여야 한다는 건의도 이어졌다.
김진영 교수는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자체가 매우 부족하고 이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라며 “전공의들은 법적으로 근무 이후에 별도 공간을 제공하거나 연속당직을 금지하고 있지만 중환자실 의료진에는 그런 법이 없다. 현재 주 36시간씩 두 번 연속당직을 서야 하는데, 의료진 집중력 저하에 따라 환자 치료결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소송에 대한 리스크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치의가 아닌 타 진료과에서 의뢰된 환자들을 중환자실 전담전문의가 적극적으로 진료하지 못할 수 있다. 정책적으로 의료진이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최지수 교수는 “중환자실 교수들이 당직 후에도 퇴근하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거나,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당직을 서야 하고 출근을 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전공의, 의대생들이) 중환자실 근무를 꿈꾼다고 하더라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의료진 처우 개선과 번아웃을 막기 위한 충분한 인력 시스템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현우 교수는 “중환자실은 환자 치료를 위한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전담 전문의들에게는 직장인 셈"이라며 “중환자실을 제도적, 환경적으로 정비해서 환자들뿐만 아니라 의료진을 위한 장소로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건의했다.
마지막으로 김정민 홍보이사는 “1인 중환자실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료진을 위한 필수 변화라는 걸 알게 됐다”라며 “1인실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보상과 제도 개선이 없으면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도 알게 됐다. 앞으로 안전하고 전문적인 중환자 진료 환경을 위해 학회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