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9.27 16:42최종 업데이트 24.09.3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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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이 보장받아야 할 아동의 권리 알린 '세이브더칠드런'의 지난 100년

[세이브더칠드런 공동기획] ①"인류에게는 아동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지난 100년, 앞으로의 100년을 향해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을 주체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100년의 역사를 지닌 NGO 단체다. 현재 6개 대륙 115개 국가에서 지역 NGO, 정부, 지역주민 등 현지 파트너와 함께 사업을 기획하고 있으며,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아동권리 침해 원인을 파악해 인도적지원과 개발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활동영역은 생존, 보호, 교육, 권리옹호, 긴급구호 등 5가지로, 무엇보다 종교, 인종, 국가,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 아동의 생존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세이브더칠드런과 공동기획을 통해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토대로 특히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기관의 철학과 활동내역에 대해 알아본다.  

①조건 없이 보장받아야 할 아동의 권리 알린 '세이브더칠드런'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의 규칙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어느 나라 아이이건, 어떤 종교를 가졌건 상관없이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글렌타인 젭은 인류 최초로 아동 권리를 주창했다. 그녀는 1923년 모든 아동의 기본적 권리를 다섯 가지 원칙으로 정리한 세계 최초의 <아동권리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선언문은 이듬해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에서 <아동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으로 채택됐다. 이후 1959년 국제연합 유엔(UN) 총회의 <아동권리선언>의 기초가 됐으며, 1989년 <유엔아동권리협약>으로 채택돼 아동의 권리와 자유 보장이 선포됐다.

에글렌타인 젭은 아동의 권리를 이 세상에 외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및 참여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이제는 전 세계 약 120개 국가에 퍼진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을 설립했다.

전 세계에 아동의 권리 최초로 주창…'UN 아동권리협약'으로 채택
 
에글렌타인 젭은 굶주린 오스트리아 어린이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직접 제작해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뿌리다 체포됐다.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의 태동은 에글렌타인 젭이 살았던 시대 배경과 관계가 깊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교사 출신인 에글렌타인 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적국'이었다는 이유로 연합국이 펼친 봉쇄정책 속에 극심한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던 독일과 오스트리아 아동을 구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에글렌타인 젭은 사람들에게 기아의 참상을 제대로 전달하고 구호기금을 모으기 위해 실제 아이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직접 제작했다.

'적국의 아이들을 돕자'는 그의 외침은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에글렌타인 젭은 위험한 전단지를 배포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리고 영국의 ‘전시 국토방위법’에 따라 실형을 살거나 전단지 한 장당 5파운드라는 무거운 벌금을 물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는 재판장에서 비인간적인 연합국의 봉쇄정책의 문제점을 널리 알렸고, 굶주림에 고통받는 아이들과 취약한 사람들을 돕자는 그의 주장이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였다. 

에글렌타인 젭은 결론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벌금은 단 5파운드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열정에 감동한 검사가 상징적으로 5파운드를 기부하면서 ‘벌금 5파운드’가 세이브더칠드런의 초창기 후원금이 됐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1919년 세이브더칠드런을 설립한 그는 전쟁으로 인한 아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국가의 이익을 초월해 각국이 협력하는 ‘국제 협력 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1920년 1월 제네바에서 '국제 세이브더칠드런 펀드 연합'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그리고 1923년 모든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를 담은 '아동권리선언'을 썼으며, 이 선언문은 1924년 UN의 전신인 국제연맹에서 채택돼 현재 국제연합 'UN 아동권리협약'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세이브더칠드런이 국제 기구가 되면서 곧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에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소가 꾸려졌다.

100년 역사 지닌 세이브더칠드런…6개 대륙 120개국에서 아동 보건영양 등 활동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을 주체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100년의 역사를 지닌 NGO 단체다. 

1919년 창립한 이후, 1921년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러시아 기근으로 고통받는 아동을 돕기 위해 최초로 대규모 모금 활동을 전개했으며,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 각국에서 피난민과 전쟁 피해 아동을 대상으로 구호 활동과 교육, 농업 지원활동을 펼쳤다. 

특히 1975년 베트남전 종전 이후 국제구호단체 중 최초로 베트남에서 활동이 허락된 단체로, 인도적지원 활동에 나섰다.

현재 6개 대륙 120여 개 국가에서 로컬 NGO, 정부, 지역주민 등 현지 파트너와 함께 사업을 기획하고 있으며,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아동권리 침해 원인을 파악해 인도적지원과 개발협력사업 모두를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장 취약한 환경에 놓인 아동을 중심으로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활동영역은 생존, 보호, 교육, 권리옹호, 긴급구호 등5가지 영역으로, 특히 의료환경이 열악한 저개발국가에서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나 그 외의 원인으로 숨지는 신생아와 5세 미만의 영유아, 산모를 구하기 위한 보건 시설 지원 및 보건 전문 인력 교육, 이동 진료 및 가정방문을 통한 사전·산후 검사, 식수 및 위생 서비스 등을 지원하고 있다.

6.25전쟁 후 한국에서 구호활동…이제는 도움주는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로 성장
 

세이브더칠드런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한국전쟁 당시였다. 세이브더칠드런 영국, 미국, 캐나다, 스웨덴이 부산에 지부를 설립해 전쟁고아와 피난민을 대상으로 구호활동을 펼쳤다.

1950년대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을 받았던 한국은 1953년 활동국으로 출범했다. 이후 한국은 1981년 국제 세이브더칠드런 연맹 회원국으로 가입해 1996년에는 중국 내몽골에서 기초교육지원사업을 시작해 43년만에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성장했다.

2002년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로 법인명을 변경한 후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아프리카 여아 학교 보내기 ‘스쿨미 캠페인’,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 ‘아동에 대한 전쟁을 멈춰라’ 글로벌 켐페인 등을 함께 하며 성장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지진이나 홍수, 가뭄 등의 자연재해나 무력 분쟁 등 전 세계 재난 현장에서 아동을 구하기 위한 긴급구호 및 인도적지원 활동과 국내외 모든 아동이 건강하게 자라 배움의 기회를 누리고 적절히 보호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 보호, 발달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국내 아동의 경우, 학대피해아동을 위한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위한 가정위탁사업, 아동의 놀 권리 증진 등에 앞장서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해외에서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방글라데시와 우간다에서 모자보건지원사업을 산모와 아동이 임신과 출산 전·후 기간 동안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아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강화했다.

그 외에도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아동권리보장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연간 이벤트로 모든 아동이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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