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창고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책들을 모아둔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무슨 책이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열었는데,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문제집과 책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수학의 정석’은 필자에게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준 책이었기에 30년 전에 열심히 공부했던 학창시절이 생각이 나서 잠시 하던 일을 멈췄습니다. 유독 많이 변색된 곳을 펼쳐 보니, 수학 선생님께 많이 혼났던 통계 부분이었습니다.
지금도 필자는 논문을 쓸 때 아직도 통계가 어려운데, 그때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수학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심슨의 역설’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국의 통계학자 에드워드 심슨이 정리한 역설로 각각의 변수에 신경 쓰지 않고 전체 통계 결과를 유추하다 일어나는 오류를 말합니다. 즉, 작은 데이터들을 하나의 큰 데이터로 합쳐 놓으면 작은 데이터에서 나온 결과가 뒤집혀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병원에 의사 A와 B가 있는데,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의사 A는 주로 중환자 수술을 맡았고, 평범한 의사 B는 주로 쉬운 수술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은 의사 A라 할지라도 환자의 생명이 위중한 중환자 수술을 많이 맡으면 전체 수술 성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평범한 의사 B는 가벼운 수술을 많이 맡았다면 의사 A보다 전체 평균 수술 성공률은 더 높을 것입니다. 이 경우 단순히 전체 평균으로만 계산한다면, 수술의 난이도 차이와 수술 횟수의 차이를 무시해 결과가 왜곡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지난 7월 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1’에 대한 분석을 놓고 의료계와 복지부가 설왕설래를 하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2019년 임상 의사 수가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폴란드, 멕시코에 이어서 세 번째로 적고, 국내 의학계열 졸업자 역시 인구 10만명당 7.4명으로 OECD 국가 중 일본 7.1명, 이스라엘 7.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어김없이 “보건의료 인력 규모가 낮다”고 해석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의사 수 부족’을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과대학원 설립을 추진했던 정부의 정책에 맞는 통계를 또다시 발표한 것입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대수명, 영유아 사망률, 급성기 의료 평가, 암 관리 의료질 평가 등은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높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회피가능 사망률(AM: Avoidable Mortality), 의료접근성, 도시-농촌 간 의사 분포 차이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좋았습니다. 회피가능 사망률이란 현 의료서비스 수준과 의료지식을 적용한 검진과 치료 등으로 피할 수 있는 사망률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144명으로 OECD 평균인 199.7명 보다 훨씬 낮아서 의사들의 노력으로 국민의 건강을 지켜 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OECD 16개국 평균 백내장 수술 대기 시간이 129일인데 비해 한국은 0일 이었고,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이 ‘경이로운 수준’임을 알 수 있는 지표입니다. 아울러 도시-농촌 간 의사 분포 차이는 인구 1000명당 0.6명으로 0.1명인 일본에 이어 두 번째이고, OECD 평균인 1.5명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농촌 지역 의사 분포가 상대적으로 많이 높다는 뜻으로 도시와 농촌 간에 의사 인력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정부의 주장과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들은 적은 의사 수와 비용으로도 모든 건강지표를 최상위로 유지하고 있는 의료계의 헌신과 희생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은 단순히 단일 통계만을 근거로 중요한 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할 경우 ‘심슨의 역설’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부는 OECD 보건지표 그대로 사실에 기반해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현 수준을 평가하고 정책에 활용해야 합니다. 또한 OECD 국가들에 비해 훌륭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더 이상의 채찍이 아닌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한 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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