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2023년 3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명. 최근 뉴욕타임스는 지금 추세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인구가 감소하는 속도가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 시대 유럽보다도 더 빠를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놨다.
하지만 당장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흐름을 뒤집기는 쉽지 않은 상황. 의료계는 12일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가임력 보존이 당장 실행해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가임력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감소하며 한 번 저하되면 현대의학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최근 만혼 추세 속에 초산 연령이 높아지고 난임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여성들의 가임력 보존을 위해 정부가 정책적·재정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가임력 저하 후엔 회복 불가능…AMH∙초음파 등 선별검사 접근성 높여야
이날 발제를 맡은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이정렬 교수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의학적 대책으로 가임력 보존을 통한 잠재적 난치성 난임환자에 대한 선제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며 ▲조기 선별 검사를 통한 가임력 보존 치료 대상자 선별 ▲가임력보존 대상자들에 대한 가임력보존 치료비용 지원 ▲난임 및 가임력보존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을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난임치료는 지난 2017년부터 건강보험 급여화가 되면서 많은 부부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난임을 사전에 예방하는 가임력 보존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적고, 정책적 지원도 전무한 실정이다.
그는 먼저 가임력 지표에 사용되는 검사인 AMH 검사(항뮬러관 호르몬 검사)와 경질 초음파 검사의 급여 대상을 일반 여성 전체로 확대 시행하거나, 여성 생애 주기별 검진에 AMH, 경질 초음파 검사를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현재 AMH 검사, 경질 초음파 검사는 난임 의심 시, 생식기 질환 의심 시 등에 제한적으로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이 교수는 “간단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검사를 통해 잠재적 난임 환자를 조기에 선별하고, 난자 동결 등의 방법을 통해 가임력을 보존하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라며 “특히 가임력 저하의 선별검사는 일정한 주기로 시행될 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난소·난자·배아동결 치료 지원과 난임·가임력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지식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항암치료를 앞둔 암환자 등 가임력 보존 치료가 필요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임력 보존 치료 지원은 장기적으로 임신율과 출산율 증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난임 조기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관련 교육을 강화한다면 더 많은 부부들이 가임기를 놓치지 않고 아이를 가져 출생률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난임시술 본인부담금 10%로 인하…난임 치료 휴가 늘리고 휴직 제도 도입
함춘여성의원 이중엽 원장은 난임치료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기준 개선과 난임 치료 휴가의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그간 정부가 출산율 제고를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지만 출산율을 보면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중해야 한다”며 “산모의 본인부담금 10%에 맞춰 난임시술에서도 본인부담금을 10%로 파격적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보험적용 횟수를 늘리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며 “다만 횟수 확대에 따른 출산율 증가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선 객관적 예측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또 “현재 일반 기업의 경우 난임치료를 위한 휴가가 짧고, 휴직제도도 없다”며 “난임환자가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게 난임치료 휴가 기간 연간 3일에서 10일로 늘리고, 직장 눈치를 보지 않고 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난임치료 휴가 시 직원 급여를 국가와 회사가 절반씩 부담토록 하고, 법 개정을 통해 난임 치료 휴가 기간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 중심 난임지원 사업 문제, 중앙 정부로 이양해야"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한국난임가족연합회 김명희 회장은 현재 지자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난임지원 사업을 중앙 정부가 중심이 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난임 문제 등은 중앙부처가 중심이 돼야 한다. 전문적, 국가적 문제인데 왜 270여개의 지자체에 찢어서 각자 알아서 하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지자체 수준은 구에서부터 시·도까지 천차만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난임지원사업 운영을 위해 보건소마다 한 명의 담당자가 있고 거기에 인건비가 지원되고 있는 건데, 차라리 그걸 모아서 전문성을 갖고 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자체 중심, 보건소 중심으로 사업을 하니 전국 단위 통계도 맞지 않고 엉망인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시절의 임신이 중요하다는 데 대한 교육과 남성에 대한 난임 검사 지원이 필요하단 의견도 나왔다.
대한가임력보존학회 이택후 회장(경북대병원 산부인과)은 “우리나라 보조생식술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하지만 너무 무분별하게 지원하다보니 젊은 부부가 보조생식술만 믿고 임신을 시도하는 시기를 놓쳐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며 “가능하면 젊은 나이에 임신을 시도하고 출산을 하는 게 건강이나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도 함께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최슬기 교수는 “남자들도 난임이 적지 않다”며 “건강검진 시에 주기적으로 검사 가능하면 아이를 낳기 원하는 사람들이 그에 맞춰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 내년부터 가임력 보존 선별검사 신사업 도입…난임시술 성공률 관리도 필요
보건복지부는 난임 치료, 가임력 보존 등에 대한 정부 지원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비용 대비 효과성 등에 대한 검증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최영준 출산정책과장은 “가임력 보존과 관련해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하게 지원돼야 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지만 방식에 대해선 건강보험 적용부터 생애주기 검진에 포함까지 의견이 다양하다”며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내년에 임신 사전 건강관리 사업이란 제목으로 새로운 사업을 도입한다. 여성에겐 AMH와 초음파 검사 비용을 지원하고 남성에게도 정액검사를 지원해주는 것이 골자”라며 “총 8만2000쌍이 대상이 될 것이고, 내후년에는 더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조영대 보험급여과 사무관은 가임력 보존을 위한 선별 검사와 관련해 “가임력 보존 선별검사는 예산 사업으로 우선 시작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의학적 효과성이나 비용효과성이 확인되면 추후에 국가검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어 “난임 시술과 관련해서는 재원을 더 투자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병원별이 아닌 국가 차원의 성공률에 대해 관리가 필요하다”며 “내부적으로 난임치료 시술을 한 환자들이 실제 출산으로까지 이어지는 지에 대한 건강보험 데이터를 보면 국내 기술력이 좋음에도 전체적인 성공률은 많이 낮다. 반대로 말하면 의미 없거나 효과가 낮은 시술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필요한 부분에 더 두텁게 지원될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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