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리소좀 축적 질환(LSD)이란 유전적 원인에 의해 특정 효소에 결핍이 나타나 대사 이상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세포 내 소기관인 리소좀 안에는 몸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존재한다. 이 효소에 이상이 생기거나 효소가 생성되지 않으면, 분해돼야 할 물질이 세포 내에 점진적으로 축적돼 비가역적인 손상이 발생한다. 결핍된 효소의 종류에 따라 약 50여종의 리소좀 축적 질환이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질환은 폼페병, 뮤코다당증(1형, 2형), 고셔병, 파브리병으로, 결핍된 효소를 체내에 주입하는 효소대체요법(ERT) 치료제가 개발돼 있다.
이처럼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에서는 효소대체요법을 빠르게 시작해 증상 진행을 막는 것이 중요한데, 그동안 진단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 가운데 올해부터 신생아 선별검사의 리소좀 축적 질환 급여가 신설돼 빠르게 진단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채종희 교수와 순천향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정호 교수가 19일 열린 사노피 리소좀 축적 질환 신생아 선별검사 급여 확대 미디어 세미나에서 리소좀 축적 질환의 조기 진단, 치료 혜택에 대한 지견과 더불어 급여 신설로 변화한 치료 환경에 대해 발표했다.
채 교수는 "뮤코다당증 제1형으로 진단된 남매 사례에서, 5세가 돼서야 효소대체요법을 시작한 누나는 다발성 골형성부전이 나타난 것에 반해,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질환을 조기 진단하고 생후 5개월에 치료를 시작한 동생은 외모와 성장률에서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다발성 골형성부전에 있어 이상 소견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뮤코다당증 제2형, 폼페병 등 다른 리소좀 축적 질환에서도 효소대체요법을 빠르게 시작할수록 정상적인 성장을 유지하고 증상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리소좀 축적 질환은 소아 시기부터 증상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비가역적인 신체 손상을 유발한다. 때문에 손상 전 질환을 조기에 진단해 효소대체요법으로 증상의 진행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리소좀 축적 질환을 통틀어 7000명에서 9000명 중 1명 꼴의 발병률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국내 신고된 리소좀 축적 질환 환자는 400여명에 불과해, 전 세계적인 발병률과 비교해 현저히 적다. 상당수가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곳의 병원을 전전하는 '진단 방랑'을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자 17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희귀질환 증상 자각 후 진단까지 1년 미만이 걸린 환자가 64.28%로 가장 많았으나, 10년 이상이 걸린 환자도 6.1%를 차지했다. 또한 16.4%의 환자는 최종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4개 이상의 병원을 찾아다니며 진단 방랑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리소좀 축적 질환은 전신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임상 양상만으로 병을 진단하기 어렵다. 환자의 긍정적인 예후를 위해 조기 치료가 필수적인 질환 특성 상, 조기 진단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존재해 오던 상황에서 올해 신생아 선별검사의 리소좀 축적 질환 급여 신설은 매우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신생아 선별검사는 특정 유전 질환 및 유전적 장애가 발현하기 전에 미리 진단,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생후 48~72시간)를 대상으로 증상 여부에 관계없이 시행하는 공중 보건 프로그램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생후 28일 이내 시행되는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 질환들에 대해 급여 지원을 해주고 있다.
또한 2024년 1월 1일자로 리소좀 축적 질환 관련 6종의 효소활성도 검사(GALC, GBA, GLA, GAA, IDUA, ASM)가 새롭게 급여 항목으로 포함돼, 올해부터 출생하는 생후 28일 이내 모든 신생아는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조기에 리소좀 효소의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리소좀 효소 이상 소견을 받은 환아는 가까운 권역별 희귀질환 전문 기관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 여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특히 희귀·중증난치질환 산정 특례로 등록된 질환은 의료 급여 1종 자격으로 외래 진료비 지원이 가능하다"면서 "리소좀 축적 질환은 그동안 낮은 질환 인지도로 진단 이후에도 환자들이 치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신생아 선별검사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조기에 질환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접근성이 확보된 만큼, 새로 진단된 환자들이 빠르게 다음 조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각 질환과 치료 과정에 대한 대국민적 인식 제고와 논의가 필요한 단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신생아 선별검사가 도입된 시기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30년, 일본과 대만 보다는 20여년 늦었다. 그렇지만 도입 이후 새로운 검사 방법을 도입하고 대상 질환을 확대하는 노력이 이어지며 지금은 다른 나라들의 상황과 비슷한 선상에 있고, 오히려 몇몇 특정 질환에 대한 검사는 더 빨리 시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와 같은 진단 환경의 발전에 힘입어 급여로 진행 중인 신생아 선별검사 결과의 관리, 즉 양성자 및 실제 환자로 진단되는 환자 수 등과 같은 통계적인 관리가 가능한 정부 조직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진단 이후 치료가 가능한 질환들이 늘어나고 있다. 희귀질환 환자의 생애동안 들어가는 의료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 도입이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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