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료원은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국가지정 음압격리 병실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메르스 치료병원으로 처음에 지정됐고요.
하지만 (메르스 사태) 중간에 진료병원으로 바뀌었고, 의료진 중에 환자가 생겨서 집중관리병원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다 복잡한 문제가 생겨서 다시 코호트 격리병원으로 되기도 했고요.
이것이 아마 오늘 제가 이 심포지엄에 초대받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10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공공보건의료 4개 병원 합동 심포지엄'의 연좌로 소개받은 김해련 강릉의료원 원장은 준비한 슬라이드를 넘기기도 전에 말을 먼저 꺼냈다.
그는 다이내믹한 메르스 현장 경험 때문에 본인이 초대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감 나게 전달해 드리려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김 원장은 본인의 근무지 소개로 발표를 시작했다.
강릉의료원 소개
"강릉의료원은 매년 20억원의 적자로 직원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해 체불임금 41억원이 누적됐고, 대금을 30개월씩 지연 결제해 납품을 거절당하거나 가격 인상을 요구당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상화 노력의 결실로 올해는 5월까지 작긴 하지만 흑자를 기록 중이었습니다.
수년간 목을 옭아매던 적자경영에서 탈출해 한숨을 돌리던 중이었지요. 그즈음에…"
모든 청중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김 원장이 슬픈 얘기를 유쾌하게 했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웃음이 쏟아졌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다시 추락하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메르스 사태 때의 강릉의료원 대기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셀프 생존
"우리 강릉의료원은 메르스 확진 환자 4명을 진료했습니다. (하지만) 환자수보다는 더 큰 의미의 특별한 일을 겪었습니다."
정부는 메르스가 확산하자 강원도에서 발생한 '확진 환자'를 강릉의료원에서 치료받도록 지시했다.
전국적으로는 16번 확진자가 발생했던 5월 31일, 속초 지역 노부부가 의심 환자로 처음 입원했고, 의료원은 이들을 확진자와 동일하게 관리했다.
의료원은 1인 1실 수용을 원칙으로 삼았고, 내과 의사 1명과 간호사 4명으로 한팀을 꾸렸다.
팀별로 1주 근무 후, 2주간 격리하는 부분적인 코호트 체제를 처음부터 운영한 것이다
"첫 확진자였던 두 분이 같은 날 입원했습니다. 음압병동을 갖췄고 진료팀을 투입했으니깐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는데…
지병을 동반한 메르스 환자라는 게 문제였어요."
두 환자 모두 각각 암과 천식이 있었다.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종양내과 의사 도움이 필요한데, 그런 과목 전문의가 병원엔 없었어요."
난감한 문제에 봉착했던 의료원은 다행히 음압병상에 투입됐던 의사의 모교병원과 강원대병원의 '전화'자문으로 초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안정됐다.
하지만 메르스 환자 치료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전국적으로도 확진자 발생이 진전될 즈음에 문제가 터졌다.
"132번 환자를 이송하는데 동승했던 간호과장이 10일 후 179번 환자로 확진된 겁니다."
<출처 : YTN>
죽어가던 132번 환자 : 3시간의 허비
'간호과장'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냥 간호사도 아니고 ‘간호과장’이 동승한 이유를 ‘찬찬히’ 들어보자.
일명 '600Km 환자'로 알려진 132번 감염자.
<출처 : 조선일보>
이 환자는 음압병상을 찾아 600Km를 헤매다가 폐렴 증상이 악화해, 사망 직전에 이르러서야 서울보라매병원에 도착한다.
당시 이 환자는 지방의 대학병원을 거쳐 삼성서울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으나, 음압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 결과까지 자택(춘천) 격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자택 격리 중) 양성 판정이 나온 겁니다."
환자는 양성 판정이 나온 직후 강릉의료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의료원에 도착했을 때 산소포화도나 흉부엑스레이 상태, 심한 기침과 가뿐 호흡 등으로 급성폐렴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판단돼 강원대병원에 자문했고, 우리 시스템으로는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의견을 받아 지방 중앙대책본부 등 관계기관과 3차 병원 이송을 협의해야만 했습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얘기는 지금부터다.
"하지만 아무도 결정해 주는 데가 없는 거예요.
3차 병원 이송을 결정해야 하는데 어느 (정부) 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결정을 못 한 채, 2시간이 흘렀단다.
"다행스럽게 보라매병원에서 받아주셨지만, 그거 결정하는 데 2시간이 걸렸습니다.
금방 숨이 넘어가는 분이라는 데도 이송 병원이 결정 안 되니깐 2시간이나 걸린 거죠."
그는 충격적인 말을 이어갔다.
"심지어는 (위로부터) 강릉의료원에서 알아서 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결국 이송병원 결정에 2시간, 구급차를 준비하는데 또 1시간이 허비됐다.
구급차 준비 지연 이유를 마저 들어보자.
"이송병원이 결정됐고, 자 이젠 무슨 차로 갈까 (고민하다가) 춘천 보건소 당신 차들이 와있으니 당신들이 모시고 가면 좋겠다고 했죠."
당시 132번 환자를 자택에서 의료원으로 이송했던 춘천 보건소 구급차가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면서 이송해야 하는데, 포터블(휴대용) 산소가 구급차 안에 없다는 겁니다."
결국 보건소 구급차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30~40분을 지체시켰고, 결국 119에 연락했더니 오케이 했단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동승할 사람이 없었던 것.
"어렵게 132번 환자를 이송할 병원이 결정되고, 구급차까지 준비했는데 동승할 간호사가 없는 거예요."
메르스 체제로 전환되면서 의료원엔 더 이상 유휴 인력이 없었다.
"간호사 누군가가 같이 가야 하는데 보낼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간호과장에게) "당신이 간호과장이니깐 당신이 가세요"라고 했죠.
간호과장이 가게 된 사연이 그렇습니다."
보라매병원으로 이송 준비중인 132번 환자 <출처 : 뉴시스>
병원은 점점 정상화됐으나….
"그렇게 132번 환자를 새벽 2시에 보라매병원에 인계했습니다. 환자를 본 보라매병원 의료진은 목숨을 잃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라고 했죠."
132번 환자는 ECMO까지 달았지만, 상태가 호전돼 현재는 퇴원한 상태다.
김 의료원장은 심포지엄에 참석한 보라매병원 의료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의료원은 이후에도 간호과장이 메르스에 확진되면서 병원 직원들이 자가격리와 능동감시된 일, 의료원을 방문했던 강원도 보건복지 의료국장과 강릉시 의원들, 보건소장들이 자가격리된 일을 소개했다.
의료원은 핵심 인원들이 모두 격리되면서 모든 의료 기능을 중단시켰으나, 간호과장을 간접 접촉했던 혈액 투석환자 문제로 인해 이들을 전원 입원시키는 코호트 격리를 결정해야만 했다.
"의료원 전체 24개 병실을 1인실로 바꾸고, (전실설치 등의) 구조변경과 격리로 생긴 부족한 의료진은 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등의 외부로부터 25명을 지원받아 인공신장실 운영을 계속했습니다."
추가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은 채 2주간의 격리 기간이 끝나자, 외부의료진은 철수했고 주요 직위자들이 복귀했다.
일반진료를 재개할 당시의 강릉의료원(가운데가 김해련 원장) <출처 : 강원도민일보>
병원 기능은 일단 돌아왔지만, 문제는 재정이었다.
강릉의료원은 월평균 10억원의 매출을 내어 이것을 비용으로 집행하는데, 메르스 4개월간 약 35억원의 매출 공백이 발생한 것.
"피해액을 산정해 보건복지부에 신청했습니다. 당장 운영자금이 없어서 직원들 월급을 못 주는 판인데 이 자금을 언제 줄 거요? 빨리 주세요!! 했죠."
정부는 최초에 8월 말까지 피해액을 보전해준다고 약속했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말을 바꿔) 9월 중에는 주겠다 하더라고요. 그것도 현지 실사를 하고 나서."
원장은 현장실사조사표 작성을 요구받아 제출했다. 정부는 15일에 현장조사를 오겠다고 알렸지만 7일에 갑자기 찾아왔다.
정부가 20억의 보전액을 산정하자, 김 원장은 호소했다.
"내가 자가격리 당하고 메르스 치료하면서 수명이 몇 년은 단축된 것 같은데, 내 수명 단축된 거 보상해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의료원 피해액만 보상해 주십시오."
원장은 당장 지급해야 할 직원급여 등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금융기관 차입 권고만이 답장으로 돌아왔다.
의료원은 현재 보건복지부 예비비 2억원, 목적사업비 일시 전용 2억원으로 일부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8월에는 강원도 지방정부 승인 아래 은행차입금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김 원장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내일 모레 추석인데 직원들 월급이나 제대로 줄지 걱정입니다."
그의 얼굴엔 아직도 근심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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