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12.25 10:58최종 업데이트 25.12.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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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1인당 월 8만~26만 정액관리료, 성과 기반 인센티브...행위별 수가제 흔드는 주치의제 시범사업

[칼럼] 김재연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대한민국 의료 체계는 초고령 사회 진입이라는 인구 구조의 격변과 만성질환 중심의 질병 구조 변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 의료를 지탱해 온 병원 중심 치료 구조와 행위별 수가제(Fee-for-Service) 기반의 공급 체계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은 의료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12월 23일 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이른바 주치의제로 칭하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의 본격 추진을 확정했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과 가치 기반 의료 전환을 명분으로 통합수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이를 행위별 수가제 폐지로 향하는 단계적 수순이자 실질적인 재정 지출 통제를 위한 정책적 포석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은 단순한 단기 정책이나 관리 모델 개선 차원을 넘어, 의료 전달체계의 중심축을 일차의료로 이동시키려는 대규모 구조 개편 실험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작지 않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의 최종안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3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2029년부터는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로드맵이다. 정부가 2026년 상대가치 상시 조정과 연계해 검체 검사 등 과보상 영역의 재정을 입원수술처치 등 저보상 영역으로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으나, 이것이 일차의료기관의 실질적인 수익 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결국 이번 시범사업은 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일차의료 중심 재편'이라는 원대한 꿈과 현장의 불신과 재정적 한계라는 차가운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정부의 독주가 아닌 의료계와의 진정한 협치가 이뤄질 때 국민은 사는 곳에서 안심하고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한국형 주치의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차의료 중심 개편의 대규모 지불제도 개편 실험 

복지부가 제시한 시범사업의 핵심 구조는 '환자 등록', '다학제 팀 기반 관리', '통합수가 지불'이다. 이는 기존의 파편화된 진료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와 의사 간의 지속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예방부터 돌봄까지 포괄하는 서비스 모델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번 시범사업은 ▲지불제도 개편을 통한 재정 통제 ▲재정 재배분와 일차의료 소외 ▲행위별 수가제의 단계적 폐지 ▲성과 평가를 통한 보상 삭감 기전 등 핵심 쟁점을 가진다.

정부는 기존 행위별 수가 대신 '묶음수가'와 '정액 관리료'를 통해 재정 지출 예측가능성을 높이려고 한다. 또한 행위별 수가와 묶음수가의 '혼합형'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관리 책임 중심의 정액 보상체례로 완전히 전환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크다.

의료계는 정부가 상급종합병원과 2차 병원 육성에는 약 3조8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면서, 일차의료에는 별도의 추가 재정 공급 없이 지불 방식만 변경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의원급에 배정된 기존 재정을 쥐어짜 대형 병원 구조 전환 비용을 충당하려는 방식(재정 사유화)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도입 예정인 '성과 기반 차등 보상'은 표면적으로 의료의 질 향상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평가 지표를 통해 수가 지급을 조절해 재정 지출을 억제하는 기전으로 작동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사업은 단순한 관리 모델의 변화를 넘어, 행위별 수가제라는 한국 의료의 근간을 흔들어 건보 재정의 지출 구조를 정부 주도로 완전히 재편하려는 전략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자료=보건복지부

의원 1곳당 1000명 환자 등록, 환자 정액관리료 사전 지급 

복지부는 주치의제를 통해 의원 1곳당 약 1000명의 환자를 등록해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환자는 본인 의사에 따라 자율적으로 주치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주치의를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 의료기관 이용에 제한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초기 시범사업에 대한 환자 저항을 줄이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기존 행위별 수가가 아닌 환자 등록 및 지속적인 관리 노력을 보상하는 일차의료 기능 강화 통합수가를 도입하고, 다직종·다학제 팀 기반 서비스 운영 지원과 성과 평가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을 시범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환자 본인부담 비용이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2차의료기관 방문의 게이트키퍼가 주치의등록제라는 진실을 속이고 있다.

특히 통합수가는 환자의 내원 횟수나 개별 행위에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등록'과 '지속적 관리'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 의원은 등록된 환자 1인당 건강 등급에 따라 월 8만 원에서 최대 26만 원에 달하는 정액 관리료를 매월 사전 지급받는다. 이는 의사가 환자를 자주 오게 할 유인을 줄이고, 대신 환자의 건강 결과 개선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다.

이러한 구조는 외국의 주치의(등록제) 초기 모델에서도 나타난다. 대만과 유럽 주요 국가의 주치의 초기 모델은 각국의 의료 체계 특성에 따라 '강제 등록형'과 '경제적 유인형'으로 구분되지만, 공통적으로 일차의료 의사가 의료 체계의 관문(Gatekeeper)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영국은 모든 국민이 일차의료 의사에게 등록하도록 하는 강제 등록형 모델을 채택했고, 프랑스는 주치의를 거치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 환급률을 낮추는 방식을 도입했다. 네덜란드 역시 일차의료를 상급 의료기관 접근의 관문으로 설정하고, 기본 서비스에 대한 인두제와 개별 진료 행위에 따른 행위별 수가를 혼합한 지불 구조를 채택했다.

이들 국가의 초기 모델은 대형 병원 쏠림을 막기 위한 관문 기능 확립과 의사-환자 간의 지속적 관계 형성을 목표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정액제 보상과 성과 기반 인센티브를 혼합해 운영했다.

사회주의 의료 논쟁과 정책의 성패 조건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시범사업의 지불제도 변화를 민간 의료기관을 국가 통제 하에 두려는 사회주의 의료의 서막으로 규정하고 있다. 환자 등록제와 정액 보상체계가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와 같은 모델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프레임이 대국민 여론전에 활용될 경우, 환자는 자신의 의료 선택권이 박탈될 것을 우려해 제도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는 의료계의 저항에 정치적 명분까지 실어주는 효과를 낳는다.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진료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묶음 수가나 정액 수가 체계에서는 정해진 비용 범위 내에서 진료를 마쳐야 한다는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하향 평준화나 과소 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민간 자본으로 설립된 의료기관을 국가가 수가 체계와 관리 지침을 통해 사실상 공공기관처럼 운영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상 보장된 직업 수행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주장이 의료계 내부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사유화 비판은 정부가 가입자가 낸 소중한 보험료를 정책적 입맛에 맞는 특정 사업예 거점 지원기관 지원 지역 차 병원 육성 등에 임의로 투입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의료계는 의료계와의 합의 없이 건보 재정을 정책 실험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재정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이는 정부가 국고 지원은 최소화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만 의존해 생색을 내려 한다는 오랜 불만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 환자에 집중하도록 구조를 개편하고, 경증·만성질환 환자는 지역 일차의료기관과 2차 병원으로 분산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차의료의 수용 능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급병원의 문턱만 높일 경우, 환자는 갈 곳을 잃거나 오히려 2차 병원으로의 쏠림 현상만 가중될 수 있다.

또한 상급종합병원에는 정규 수가 전환을 통한 보전이 이루어지고, 2차 병원에는 2조원의 지원금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일차의료기관에만 '성과 기반 정액 수가'라는 실험적인 모델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 측면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크다.

일차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수익 구조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혁신 모델에 참여하기보다 기존의 행위별 수가를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방어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의 참여 저조로 이어져 정책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주치의제 시범사업의 성패는 정부가 얼마나 '낮은 자세'로 의료계와 대화하고, 얼마나 '과감하게' 재정을 일차의료 현장에 쏟아붓느냐에 달려 있다 혁신은 위에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꽃피울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정부가 지금처럼 하향식 접근을 고집한다면 이번 시범사업 역시 대한민국 의료사의 수많은 실패한 실험 중 하나로 기록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 회복을 위한 거버넌스 재구축 ▲일차의료 현장에 대한 실질적인 재정 투입 ▲환자의 의료 이용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명확한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 의료계를 '혁신의 대상'이 아닌 '정책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자문 기구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부여하는 구조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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