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주취자로 몸살 앓는 응급실
지난 1월 20일, 인천의 한 병원 응급실에 방문했던 주취자가 공원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병원의 관련 의료진과 경비원 13명이 무더기로 의료법 위반 및 유기치사 혐의로 입건됐다.
우선 안타깝게 사망한 시민에 대해 깊은 조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 사건에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있다.
주취자가 사망한 원인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어야 할 특정 질환 때문인가?
응급실이라는 것은 '응급 의료'를 행하기 위한 공간인데, ‘음주 상태’는 ‘응급 질환’인가?
주취자가 만약 응급실을 들르지 않고 공원에서 사망했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응급실은 주취자를 모자라는 병원 침대에 재우면서 다른 일반 환자들을 돌려보내고 술을 깨워주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나?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주취자에게 병원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전국 대부분의 응급실은 주취자로 매일 몸살을 앓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국 어느 응급실도 주취자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주취자, 노숙자가 응급실에 오게 되면 의료진 입장에서 여러 가지가 참 힘들다. 심한 취기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상태 파악이 힘들고, 치료 및 검사에 대한 협조도 잘 되지 않고 고성이나 욕설이 쉽게 오간다. 대책 없는 난동으로 인한 폭력에 휘말리기도 일쑤다. 응급실 의료진 90% 이상이 주취자의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의료진은 이들을 섣불리 병원 밖으로 내보낼 수 없고, 물리적인 억제도, 검사도, 치료도 힘들다. 의료진은 주취자의 몸에 그 어떤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도 협조가 안 되니 어렵고, 설령 연락이 된다 해도 보호자가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밤에 인계를 받아 줄 쉼터도 있을 리 없다. 경찰에게 인계를 하면 다른 병원 응급실로 다시 가서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이렇게 너무 당연시 된 주취자의 응급실 방문에 대해 의료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다. 그런 환자가 나가겠다고 하면, 환자를 고이 보내드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한 의료진들이 병원 밖에 자기 의지로 나가서 사고가 난 환자의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면서 경찰은 지난 1년간 인천의료원에 961명의 주취자, 노숙자에 대한 진료 기록이 부실하다는 것도 지적하고 나섰다. 그런데, 1년 365일간 무려 961명, 하루 평균 3명의 주취자가 응급실을 방문했다는 뜻이다. 이들로 인해 업무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피해를 입는 의료진 뿐만 아니라, 진료 시간이 지연되거나 기회를 놓치는 진짜 환자들의 피해는 가늠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전국의 응급실은 주취자들의 천국이 됐고 이번 사건은 그 천국의 입구를 활짝 열고 출구를 막았다. 이제 응급실 의료진들은 주취자들이 응급실에 들어오는 순간 함부로 내보낼 수 없다. 섣불리 내보냈다가 사고가 난다면 모든 책임이 의료진에게 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노숙자, 주취자에 대한 보호, 복지, 지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응급 진료로 정신없는 응급실이 떠안아야 하는 걸까. 아무도 떠안고 싶지 않은 책임을 억지로 떠넘기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 병원 응급실은 노숙자, 주취자들에게 최고의 무료 여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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