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MRI 검사 대기로 진단 늦어지는 '진짜' 환자들
MRI는 현대 의학에서 필수 검사법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특히 증상이 다소 애매해서 검사하기 까다로운 측면이 많고, 작은 손상이 큰 문제를 낳는 뇌, 신경계통 질환의 검사에서는 MRI를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MRI는 기계 값, 유지비용, 기계를 설치하기 위한 공간 마련과 공사비용, 그리고 이를 운영하고 판독할 인건비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도 MRI는 비싸다.
그런데 MRI를 공짜로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면 무상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MRI를 찍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찰이 필수이고 검사에 대한 결정권을 의사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넘쳐 나는 MRI 수요 중에 가짜 수요를 사전에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르고 걸러 MRI를 촬영하려 해도 대기기간이 몇 개월을 훌쩍 넘긴다.
그런 MRI 검사가 이제 한국에서도 하기 쉬워졌다. 지난해 10월 1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핵심이었던 'MRI 보험 적용' 정책이 시작되면서다. 공짜는 아니지만, 저렴한 자기 부담금으로 자신의 뇌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병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앞서 언급한 나라들처럼 의사가 환자의 수요를 통제할 수 없다. 비용만 수요를 억제하는 유일한 빗장이었는데, 정부가 이를 풀어버렸다.
MRI 급여화 정책 시행 이전부터 많은 대학병원의 MRI는 365일 24시간 가동됐다. 정책 시행 이전에도 MRI 비용이 딱히 비싸지 않았고, 진료로는 적자투성이인 병원의 수익을 MRI검사로 보전해야 했기 때문에 병원들은 기계를 쉬지 않고 돌려야 했다. 그렇게 공급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MRI 급여화 정책이 시행됐고, 모두의 예상대로 수요는 터져 버렸다.
그래서 주말 새벽 4시에 찍으려 해도 1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낮 시간대에 찍으려면 3개월을 기다려야 MRI를 찍을 수 있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사태가 지난달 한 일간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대기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진단 시기가 늦어짐을 뜻하고, 치료 시기 또한 늦어짐을 뜻한다. 이는 어떤 환자들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올해와 내년에는 뇌에 이어 척추, 근골격계 MRI에 대한 급여화가 차례대로 대기 중에 있다. 추가적인 MRI 급여화 이후에 검사 수요를 억제하거나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대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폭증하는 수요 속에 섞여 있는 진짜 환자들이 진단 시기를 놓쳐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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