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영국의 의료 사고 대응 행동(Action against medical accidents: AvMA)은 의료사고에서 예방(회피)이 가능한 위해(harm)로 피해를 본 환자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지난 1982년에 설립됐다가 2003년에 현재의 단체명으로 개명됐다. AvMA는 환자의 안전 개선과 의료 사고에 대한 공정한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민간의 독립된 비영리 단체로, 매년 약 3000여명의 의료 사고 피해자에게 상담 제공과 피해자의 권리 이해, 그리고 환자에게 필요한 질문의 답변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맡아 운영한다.
의료가 보편화되고 발전함에 따라 역설적이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의료 사고도 늘고 있다. 의료 중과실에 대한 전반적인 기소 건수도 자연스레 증가세에 있다. 영국은 과거 1795년부터 1974년까지 약 180년간 형사 기소 건수는 총 41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1975년부터 2005년까지 30년 동안에 44건으로 증가했고,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만에 다시 44건이 기소 처리됐다. 물론 기소를 당했다고 모두가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다. 형사처벌이 된 경우는 이중 극소수에 그친다.
예기치 않은 의료 사고에 악성 의료환경 등 여러 가지 함정 존재
의사에게는 ‘의료 사고’에 대한 여러 가지 유형의 ‘함정’이 존재한다. 의료기관에서 불충분한 인력의 운영, 이로 인한 부족한 휴식, 대리 의료, 직원 교육 및 감독 부족 등 악성 의료환경에서 비롯되는 근무도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응급 상황에서 2명 이상의 환자와 환자 가족을 상대하다 보면 쉽게 집중력이 흐려지기도 한다. 의료에서 모든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의사에게 돌아간다. 의사나 직원은 조사에 돌입하면 일단 직무 배제 처분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과실로 판명되면 면허 박탈이나 정지등 징계 조치, 관련 기관에 보고 등의 징계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설령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해도 일련의 이러한 과정은 스트레스가 극도로 높아지고 의사와 동료 그리고 가족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상 범죄자의 경찰 조사 방식과 과실치사 기소는 의료인에게 더욱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위협도 가해진다.
영국의 의료사고피해자 단체인 AvMA는 심각한 의료사건 뒤에는 거의 항상 사건의 원인이 된 조직적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현대의 조직 의료(Organized medicine)가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AvMA 블로그에 실린 전직 간호사의 기고문에 따르면 의료 과실로 인한 과실치사 기소 추세가 계속 증가한다면,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의 정직함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처벌의 위협은 의료에서 정직함의 열린 문화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실패할 것이고, 장기 징역형의 공포 속에서 의사 자신의 안위를 위한 방위가 우선 작동해 자신의 실수나 정확한 임상 상황을 밝히지 못한다는 분석이고 지적이다.
과도한 형법 개입으로 영국 등 선진국보다 의사 기소 건수 매우 높아
우리나라 의사에 대한 형사 기소 건수를 영국이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높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는 과도한 형사법이 개입한 나라인데 아직도 개발도상국 상태의 행정적 미비점을 사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사법 적극주의와 과도한 형사법 적용이 만연한 나라가 됐다.
영국에서는 환자 안전을 위한 임상적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사에 대한 처벌 조치가 아니라, 실수가 발생한 시스템에 대한 조치를 통한 배움과 개선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논리이다. 영국 사회는 복잡한 급성 건강 환경에서는 의료 과실이 매우 흔하고 놀라울 정도로 쉽게 발생한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 사고는 비극적이기도 하나 배움의 소중한 기회라는 시각도 같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아직 기본적인 안전 확보에 대한 관심과 제도가 선진국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의료배상 제도도 상당히 뒤처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여주는 필수 의료 기피 현상에는 분명 형사처벌이 크게 한몫하고 있다. 이것이 의료 현장의 목소리인데 정부나 환자단체는 우리나라의 형사처벌이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다.
정부가 밀어붙인 몇 차례의 의료 개혁에서도 의료의 형사범죄화에 대한 내용은 별로 변화가 없어 보인다. 다른 나라는 보편적으로 하지 않는 의료 형사범죄화에 대한 논의를 오히려 의료계에 특혜를 준다는 논리도 너무나 황당하다. 왜 의료 사고 특례법인가? 법률 용어도 바뀌어야 한다.
형사 범죄화로 보복 심리 확산 노-블레임 문화로 의료 안전성 확보해야
의료 형사범죄화로 점차 의사는 고부담 고위험의 어려운 일보다는 안전하고 쉬운 일을 선호하는 의사의 회피기동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의료 과실을 둘러싼 문화적 변화, 즉 침묵에서 안전으로 의료의 제도적 개선과 전환이 가능하려면 우선 의료인을 범죄자 취급을 하는 형사처벌의 공포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의료사건에서 형법 적용은 명확한 고의적 중과실로 국한해야 한다. 의료를 선순환 구조로 만드는 데는 우선 환자 안전과 의료 과실의 축소를 위한 노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처벌이 아닌 ‘안전 문화’의 강조는 좋은 의료를 위한 기본 기제로써 영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의료인에 대한 ‘보복 문화’를 완화시키는 것이 필수적인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료인 개개인을 탓하기보다는 좋은 의료를 위한 제도(체계)적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다양한 의료단체와 환자 옹호 단체, 시민단체 등 모두 의도하지 않은 의료 실수에 대해 형사처벌보다 시스템 개선과 정의 기반의 접근을 지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자 안전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법적 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노-블레임(no-blame)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안전한 의료를 위한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