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학 이미 25학년도에 트리플링 발생…"지방의료원·보건소에서 본과 실습교육 대안은 의학교육 후진화 대책"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교육부가 8000명이 넘는 의대생 유급에도 2026학년도 의대 교육에 '트리플링'으로 인한 문제는 없다고 자신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의료계 눈에 뻔히 보이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를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교육부가 전체 의대생의 42.6%에 달하는 8305명에 대한 유급과 46명에 대한 제적을 원칙대로 처리하면서도 24·25·26학번 1만 명이 동시 교육을 받는 '트리플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별 증원율 천차만별, 최대 3.25배 증원된 대학도…일부 대학 이미 트리플링 진행중
교육부에 따르면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이 3058명으로 정해지면서 24·25·26학번 의대생의 숫자는 총 1만 700명 가량이다.
이중 학교를 옮긴 학생, 학사경고·수강신청 이슈로 2학기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 현재 수업을 듣는 학생, 지난해부터 1년간 휴학 중인 학생, 군 휴학자 등을 고려하면 내년에 예과 1학년으로 교육을 받게 될 24·25학번은 2500~3000명 수준으로, 26학번 3058명을 포함하면 5500~6100명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교육부는 특히 예과 1학년은 기초 과목도 거의 없고 주로 외국어와 인문학과 같은 교양 수업을 듣기 때문에 인원이 늘어나도 실질적인 수업에 어려움은 없다며, 내년도 예과 1학년생이 최대 6100여명이 된다해도 교육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실습을 시작하는 본과부터는 실습 병원 부족 등의 이슈가 발생할 수 있으나 지방의료원, 보건소, 의원급 의료기관 등 임상실습병원을 다양화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교육부는 2026학년도 예과 1학년의 숫자가 예년 의대 모집인원인 3058명의 약 2배 정도만 늘어난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각 대학별 여건을 살펴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실제로 2025학년도에 각 대학별로 증원율이 천차만별인 상황이다. 서울권 대학들은 단 한 명도 증원되지 않은 반면, 지방 대학 중에는 최대 325%가량 증원된 대학도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가천의대는 기존 의대 정원 40명에서 2025학년도에 130명으로 325% 늘었고, 울산의대도 기존 40명에서 110명으로 275%, 충북의대도 기존 49명에서 125명으로 250% 가량 늘어났다.
따라서 의대 정원이 150% 이상 증원된 25개 대학은 24, 26학년을 더하면 350%에서 525%의 학생을 동시에 가르쳐야 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사실상 지방 대학들은 이미 2025학년도에 트리플링이 발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문제점이 터져 나오지 않았을 뿐"이라며 "내년도에 의대 모집인원이 기존 정원대로 동결된다고 하더라도 지방 의대들의 실제 교육은 트리플링으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본과 실습교육, 지방의료원·보건소로 해결?…"세계적 교육 수준을 후진화하는 대안"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당장의 문제는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는 실습 위주의 수업이 진행되는 본과 3, 4학년 교육의 문제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지난해 새로 공개한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인 ASK2026의 평가 기준의 'K.6.2.3'에서는 의과대학은 학생이 적절한 임상경험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임상실습시설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있다.
이 항목에서는 교육병원의 규모가 임상실습에 적절한지, 교육병원 내 학생교육시설이 적절히 확보돼 있는지, 교육병원 내 학생전용공간이 적절히 확보돼 있는지 확인한다.
구체적으로 주 교육병원은 500병상 이상이어야 하며,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교육병원은 학생교육을 담당하는 보직자와 학생 교육을 지원하는 행정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의대 평가에 적용하는 ASK2026은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이 제시한 기준을 근간으로 우리나라의 기본의학교육 상황을 고려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세계적 수준의 평가 기준을 무시한 채 지방의료원, 의원급 의료기관, 보건소 등지에서도 학생들의 수련교육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해 교육부가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으로 교원 수 부족에 따른 의학교육의 질 저하를 지적하는 의료계에게 교수 1인당 학생 8명까지 교육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유사한 행태다.
일본은 교수 1인당 학생 0.58명, 미국 3.21명인 것과 비교해 교육부가 제시한 교수 1인당 학생 8명 수준은 탄자니아 대학의 교원 확보 수준과 맞먹는 것으로, 세계적 수준과 비교해 질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기준이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역시 지난해 성명서를 통해 "각 대학의 교육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발표된 정부의 증원과 배분안은 지난 수십 년간의 노력을 통해 이룩한 의학교육을 퇴보시킬 것"이라며 "양질의 의학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생 규모에 걸맞은 교육여건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며 의학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한 바 있다.
모 의과대학 A교수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실제 현장은 법에 정해 놓은 기준에 엄격히 맞춰야 한다. 그럼에도 실제 선진화에 역행하는 후진화를 대안으로 삼는 모습은 무척이나 안타깝다"며 "현재도 엄격한 기준에 맞춰 실습할 교육병원을 선정하는데, 이는 생명을 다룰 의사가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경증 환자가 주로 이용하는 의원과 환자가 적어 매년 적자가 수백억씩 나는 곳도 많은 지방의료원, 학생을 가르칠 자격을 충족하기 어려운 보건소 등에서 학생 실습을 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전했다.
다른 의과대학 B교수는 "사실상 정부는 눈에 뻔히 보이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를 외면하며 언발에 오줌누기식 대책을 남발하고 있다. 당장 대선을 앞두고 향후 3~4년 후에 벌어질 일들을 눈가리고 못 본척하는 교육부의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역시 14일 성명서를 내고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수련을 국립대병원 및 사립대 부속병원 등 교육병원이나 수련병원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등 떠밀리듯 지역의료원, 지역 2차 병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임상 실습과 전공의 수련을 분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의대교수협은 "대규모 증원 시 교육병원들이 정상적인 임상실습과 전공의 수련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정부가 인정한 꼴"이라며 "결국 윤석열 표 의대 증원은 교육 여건이나 교육의 질을 완전히 도외시한 폭압적 정책이었고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그걸 땜질하느라 바빴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은 "교육의 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도 교육의 질을 무엇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다"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교육의 질에 대한 정량, 정성적인 목표가 서로 공유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이처럼 기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50명이 듣던 강의가 300명이 듣는 강의로 바뀐다고 질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그러니 교육부도 질 저하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질에 대한 기준을 먼저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