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5.12 09:52최종 업데이트 25.05.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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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 ‘의료 불평등’ 제도화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사진=게티이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우리나라는 이웃 국가인 일본, 타이완과 같이 소위 ‘의료격차’가 낮은 보건의료 기반이 모범적이고 우수한 국가 중 하나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속칭 뺑뺑이와 응급이 아닌 소아 외래 진료가 대기 없이 실시간으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악성 민원을 이유로 그 원인을 심각한 의사 부족이라는 문제로 단순히 귀결시켰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공공의대 재탕 타령을 복수의 국립의대 설립으로 포장해 대선 표심잡기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볼셰비키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은 모든 노동자에게 평등한 의료를 보장한다는 정치 구호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1920년대 무상으로 모든 의료를 해결하겠다는 사회주의의료(socialist healthcare)가 출현했다. 공교롭게도 1920년 영국의 도슨(Dawson)이 의료 제도화와 전달체계를 주장했던 것과 비슷한 시기였다. 세계 최초의 보건부 수장인 소련의 Nicolai Semashko가 설계한 야심찬 사회주의 의료계획은 장기간 지속된 내란과 전쟁, 기근 등으로 당초에 꿈꿨던 사회주의의료는 실현되기 힘들었다. 그렇게 지속된 기근과 전쟁 속에 보건의료는 국가 경제에 예속된 하위 분야로 전락했다.
 
구소련식 의료, 이념으로만 화려하게 포장 내용은 매우 열악
 
궁색한 국가 경제 사정은 사회주의가 표방한 의료 평등권이 국가 중점산업 근로자 우선인 선택적 평등이 되었다. 신분과 계급(class)이 중요한 평등의 기준이 된 것이었다. 소련은 자본주의 의료와 경쟁해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기 위해 의료의 양적인 측면을 선점하려 했다. 세계 최고의 의사 수, 세계 최고의 병상수를 자랑했으나 실상은 질 낮은 의료와 만성적인 열악한 의료재정으로 약품, 장비와 시설이 부족했고, 그 수준 역시 매우 열악하고 초보적인 상태였다. 일차진료는 우선순위가 밀려 주요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500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대기업부터 시작했다. 독일식 사회보험도 근로자를 위한 것으로 출발한 비슷한 역사를 갖는다. 소비에트연방식 의료제도는 소련연방의 붕괴와 함께 결국 제도적 몰락을 맞이했다. 소련연방의 영향권인 동부, 중부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소련식 의료제도에서 탈출을 시도하였고 지금도 비스마르크식 사회보험제도와 영국의 조세 바탕 의료의 모델을 두고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정하지 못하고, 아직도 고민 중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식 의료제도도 이들에게 관심이 높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보건의료 지표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를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나라는 전통적 개념의 일차진료는 없고 전문의가 일차진료를 병행하고 있어 러시아의 'Extended Primary Healthcare'와 유사하다. 그러나 러시아는 단독 개원전문의가 아닌 폴리클리닉(Polyclinic)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소련연방 시대부터 검진, 검사의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은 ‘Dispensarization’이라는 용어를 창조해 대규모 검진과 검사를 활성화했다. 검진, 검사상의 이상을 찾아내고 보고하고 추적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재정문제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검진, 검사 의료로 세계적으로 암 생존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부상했다.
 
정부 주도 한국식 의료 구소련연방 모델과 닮은 점 많아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이해하는 어려움은 정부가 주도하는 원가 이하의 수가 보상, 진료권역 폐지, 보험진료의 실손보험 보상, 의료소비의 자유화 등으로 사회보험과 조세 바탕 의료, 그리고 자유시장 경제의 의료가 혼합된 의료제도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흥미롭게도 구 소련연방의 세마슈코 모델(Semashko Model)과 유사한 점은 변형된 전문의 주도 일차 의료, 대규모 검진과 검사의료와 과도한 관료주의적 중앙집권 보건정책, 그리고 의료에 대한 양적 데이터에 집착하는 모습도 매우 유사하다.

우리나라와 구 소련연방과 제도적으로 다른 점은 우리나라 의료는 자영업 개원과 영리 추구 비영리병원 의료로 모든 의료인의 월급제가 기본인 구 소련식 제도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지금도 소련식 의료제도를 하는 나라를 보면 정부가 정해 준 월급 이외 환자는 추가적이고 임의적인 비공식적 진료비를 병원과 의사에게 ‘공식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암묵적 규범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세마슈코 본래 의도인 모든 근로자에게 평등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는 개인과 가족의 호주머니 사정에 따른 가정 경제적 신분이 평등 의료의 중요 요소로 변질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정부 주도 의료 불평등 제도화’라고 기술하는 표현도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의료 평등화를 위해 사회복지학자의 이론에 따라 진료 권역제를 폐지하고 단일화를 달성했다. 그 결과로 의료의 수도권 집중이 급속히 일어났고, 현재의 의료격차는 시장 경제 특성에 의한 선택의 자유가 한가지 이유로 보인다. 거주지에서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못한 환자 사이의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평등을 위한 조치가 오히려 의료 격차와 불평등의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다. 사회보험이나 조세 바탕 의료나 핵심은 일차진료에서 의료소비의 사회화로 통제를 하는 것인데, 우리 정부는 국민만 바라보며 소비자로서 환자 권리와 의료소비 진작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었다. 결국 우리나라의 의료 불평등은 정부 정책이 주도하는 의료 차등화 정책의 산물인 것이다.
 
국민만 바라본다는 정치 슬로건 실상은 표심만 계산한 선동
 
의료 차등화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의대를 설립하건, 지역 완결형 제도를 만들건 전제 조건인 ‘진료권역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공공병원에 공공환자를 유치해야 할 텐데 실제로 성남의료원의 예를 보면 그 의구심만 커진다. 의료 평등화는 불평등 완화를 위한 최대한 노력이지 인류사회에서 도저히 구현해 보기 힘든 허상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회주의에서 실험한 평등 위주의 소련식 의료도 결국 의료 차등화 정책이었고 제도적 폐기가 최종 운명이었다. 유럽의 사회보험제도는 사회적 연대(solidarity)를 강조한다. 영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료는 노동자 우선도 아니고 사회연대의 이데올로기도 아닌 국민의 기본권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느림보 조세 바탕 의료를 견디지 못한 영국 국민의 13%가 별도의 사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이용객 없는 공항과 고속열차역 등 다양한 정치적 가수요가 나라 세금을 크게 좀먹고 있다. 평등성을 강조하는 공공의료 이데올로기로 잃어버리는 사회적 기회비용을 주목해야 한다. 유럽이나 구소련연방과 같이 20세기 초부터 치열한 이데올로기 논쟁과 끔찍한 전쟁을 통해 보여준 문화 역사적 유산에 정치가가 상상하는 의료평등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나라도 중앙집권체제에서 관료가 중심이 되어 의료제도를 이끌었고 정치가들이 기형적 제도에 일조했다.

현대의 복잡한 의료제도는 관료조차 우리나라 의료의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 힘들어 보인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표심주의와 선동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적 의료 가수요가 진정한 사회적 의료수요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허상뿐인 의료 개혁의 앞날은 매우 어두워 보인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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