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권미란 기자] "원장님, 이번달 영업 실적을 맞춰야 하는데 신용카드 정보를 알려주시면 결제했다가 바로 취소하겠습니다"
대구 중구에서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2년 전 국내 제약 H사 영업사원 B씨로부터 이같은 부탁을 받았다. 그동안 거래를 하면서 믿고 지내온 만큼 A원장은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의원 명의의 신용카드 앞면을 찍어 영원사원의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A원장이 대수롭지 않게 신용카드를 건낸 이후 한참이 지나도 결제는 취소되지 않았다. B씨는 애초부터 신용카드 결제를 취소해 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840만원 상당을 결제한 이후에도 약 10개월간 44회에 걸쳐 A원장이 알려준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해 총 2억9222만6697원을 결제했다.
또한 영업사원 B씨는 H사의 결제시스템에 A원장이 동의하지 않은 결제확인서까지 위조해 제출했다. H사가 운영하는 타수 결제 확인서를 이용한 행위였다.
H사는 의료기기나 의약품 주문 명의자와 신용카드 결제 명의자가 다를 경우 카드 결제 명의자의 '타수 카드 결제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병의원이나 약국은 친분 있는 영업사원들에게 거래 의료기기나 의약품 인수 확인 차원에서 도장을 맡기는 경우가 있다. A원장 역시 같은 이유로 영업사원에 의원 명판과 자신의 인감도장을 맡겼던 것이 화근이었다.
H사에서 2013년 1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근무해온 영업사원 B씨의 만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원장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영업사원 B씨의 이전 범행이 발각될 것을 막기 위한 일명 '카드깡'으로 이용됐다.
5일 메디게이트뉴스가 단독으로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대구 지역의 비뇨기과, 신경과, 치과 등에서 허위로 주문한 의료기기와 의약품 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A원장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먼저 856만6800원 상당의 눈썹 리프팅 의료기기를 결제하고 거래처인 다른 의원에 배송시켰다. 오배송으로 생각한 해당 의원 직원으로부터 기기를 교부받아 임의로 처분했다. 이후 해당 허위 주문내역건을 위조해 H사 주문시스템에 기재하고 담당부서에 전송했다.
단독 범행 외에도 B씨는 영업실적 목표 달성을 위해 H사 영업사원 4명과 공모해 병의원에서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주문한 것처럼 조작하는 방식으로 수차례 범행을 저질렀다.
다른 신경과에서는 의료기기와 의약품 미수금 30만원을 본인 명의 은행계좌로 이체받아 보관하고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B씨가 약 3년간 편취한 금액은 91회에 걸쳐 총 5억3783만860원 상당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3675만3397원을 12회에 걸쳐 인터넷 도박, 생활비 등에 사용, 횡령했다.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B씨에 대해 범행 기간과 횟수, 범행수법, 피해금액 규모, 타 직원과 공모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사기, 업무상횡령, 사문서위조, 여신금융업법위반 등 죄목으로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H사 관계자는 "개인 비리로 인한 사건이었고 당사자는 현재 복역 중이다"라며 "이후 내부 체질 개선과 함께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법 준수에 대한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검찰 조사를 받은 H사는 해당 사건과의 관련성에 대해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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