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됐던 환자가 정부를 상대로 진행한 소송에서 정부가 환자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정부가 감염병 확산 위험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19일 경제정책실천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제4민사부)은 지난 9일 메르스 감염 피해자(30번 환자)와 경실련이 정부를 상대로 진행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이 판결은 1심 판결 중 원고 패소부분을 취소하고 정부가 메르스 감염피해자인 30번 환자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30번 환자는 16번 환자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다. 16번 환자는 2015년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16번 환자는 5월 22일부터 28일까지 대청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30번 환자는 외과 골절로 16번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30번 환자는 6월 1일 고열이 발생해 충남대병원에 전원돼 치료를 받았고 한달이 넘게 치료를 받다가 7월 5일 완치 판정으로 퇴원했다.
2015년 당시 메르스 사태로 숨진 환자는 38명이었다. 메르스 확진 환자 186명, 격리환자 1만6693명 등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한 수준이었다.
경실련은 메르스 피해가 급속도로 확대된 원인을 정부의 안일한 감염병 인식과 초기대응 부재 등 국가 책임으로 규정하고 피해자들과 함께 13건의 공익소송을 진행했다. 이번 소송은 공익소송 중 첫 번째 판결인 가운데, 정부 책임이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됐다.
재판부는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1번 환자가 바레인에 다녀온 사실을 신고했지만 바레인이 메르스 발생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메르스 검사 요청을 거부했다”라며 “감염병예방법에서 메르스 의심환자가 정부에 신고되면 역학조사 등을 시행할 의무가 있으나, 이를 지체한 과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질병관리본부가 1번 환자 접촉자를 의료진과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사용한 사람들로만 결정하고 다른 밀착접촉자나 일상적 접촉자를 파악하지 않은 점을 과실로 인정했다. 평택성모병원 역학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면 16번 환자를 추적할 수 있었고, 16번 환자와 원고의 접촉이 차단돼 감염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감염병 관리와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해 감염병을 예방해야 한다”라며 “감염병 발생 시에는 적극적이고 신속한 조치로 피해 확산을 방지하고, 적절한 치료를 실시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메르스 감염에서 국가의 공공의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재판부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원고는 국가가 환자의 안전을 무시한 채 감염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예방,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를 감염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라며 “이번 판결은 국가의 감염병 관리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 국민에게 위자료 지급을 결정한 첫 판결”이라고 밝혔다.
경실련은 ”정부는 피해보상 외에도 심각한 재난 상황에 이르게 한 감염병의 예방과 관리를 위해 공공의료 확충과 인력 양성 등 근본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전체 의료기관에서 5%에 불과한 공공의료기관 비율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공공병상 보유율 12% 등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실련은 “감염병 발생 등 국가적 재난 상황을 대비하려면 적절한 공공의료 시설과 인력을 확보하고 보건의료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라며 “앞으로도 메르스 피해구제 소송을 지원하고,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제도 개선 운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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