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4.01 08:39최종 업데이트 24.04.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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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2000명 늘려 '응급실 뺑뺑이' 해결한다?…전공의들 "경증환자 빅5병원 몰리게 만든 정부 책임"

[전공의 특별인터뷰]③ 환자 위한 마음으로 버텨온 전공의들…사태 마무리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

 
[특별 인터뷰] 병원을 떠나 마음 아프면서도 상처받은 전공의들의 이야기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의료접근성을 가진 대한민국이 2025년부터 의대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무려 65%를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우리나라 필수의료 위기, 지역의료 불균형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의사 수 보다 적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당사자인 의대생과 의사들의 거센 반대에도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의료계는 근거가 부족하고 의료계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데다 의학교육 여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2000명 증원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업에 평생을 바치겠다며 낮은 월급에도 주 80시간, 연속 36시간이 넘는 고강도 업무를 견뎌왔던 전공의들이 결국 정부 정첵에 대한 반대로 하루 아침에 병원을 떠났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부의 강경 발언에 상처를 받고 이제 다시는 병원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조심스럽게 전공의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① 전공의는 왜 사직서를 냈나…"폭주하는 정부, 한국 의료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직 결심"
② "100만원 지원금 거부했다"…사직한 소청과 전공의가 정부에 모멸감 느낀 이유

③ 의사 2000명 늘려 '응급실 뺑뺑이' 해결한다?…"당직 전공의들 목소리 들어본 적 있나"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응급실 뺑뺑이. 정부가 이번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로 해결하고자 했던 우리나라의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환자가 가장 많아 대기가 긴 것으로 유명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을 지켜온 전공의들은 '응급실 뺑뺑이'가 결코 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전공의들을 병원 밖으로 내몬 정부의 '의료 개혁'은 그간 진료 현장을 지켜온 의사들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와 정형외과 전공의 B씨는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의료개혁의 문제점을 들어봤다.

경증 환자들로 과밀화된 응급실…“현장 의료진 목소리 외면한 채 의대 증원 밀어붙여”

서울 아산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일정 기간 강릉아산병원에 파견되기 때문에 지방의료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날 대화를 나눈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전공의는 필수의료, 지방의료 살리기의 대책이 결코 의대정원 증원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씨는 "강릉아산병원 파견 당시 응급실은 매 순간이 면허를 내거는 상황이었다. 강릉아산병원은 지난해 심장내과 교수 6명이 사직해 2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야간에 심근경색환자가 응급실로 들어오면 처치가 불가능해 전공의들이 인근 병원에 전화를 돌리며 전원이 가능한지 사정하는 것이 일이었다"며 "강릉아산병원 전문의들이 병원을 그만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어도 정부는 여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강릉아산병원에서 밤이나 주말 당직을 서면 주변 지방의료원으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 지방의료원에는 야간, 주말에 혈액검사조차 안되는 병원이 많았다. 그러니 야간에 발생한 환자는 지역, 중증도에 상관없이 모두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된다. 2차 병원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다 사라졌다"고 현실을 전했다.

A 전공의는 '응급실 뺑뺑이'의 여러 원인 중 하나로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꼽았다.

그는 "지역의원에서 진료 후 종이 소견서 하나 가지고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들어오는 환자들이 많다. 외래로 가도 될 정도의 추가적인 검사나 약물 관리를 위해 오히려 외래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응급실로 온다. 환자가 많아 수 시간 대기해야 하고, 병실이 없다고 해도 환자들은 무조건 서울아산병원을 찾는다. 부산에서도 입원이 가능하냐는 119 전화가 온다"며 "정말 우리 병원에서 치료해야 할 환자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응급환자 흐름 개입하고, 의료전달체계 정립해 2차 병원 살려야

A씨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단순히 의사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응급환자 흐름에 개입해 경증은 2차 종합병원·지역응급의료센터로, 중증은 3차 대학병원·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이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본은 이러한 경증환자들의 최종치료병원 이용을 막기 위해 병원 전에 환자를 스크리닝하고 있다. 일본의 구급대가 현장에서 환자의 증상, 상태, 활력징후 등을 파악해 환자를 분류해 적절한 병원을 지정해 이송하면 환자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B씨도 "우리나라는 의료전달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1차에서 진료받고 2차에서 상급종합병원에 가야 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환자를 상급종합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우리나라 인구 수만 봐서는 중증만으로 응급실을 다 채울 수 없다. 그런데 중증은 수가가 낮고 인력이 많이 투입되다 보니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대학병원들이 박리다매로 수술 수를 늘리고, 경증도 마구잡이로 받는다"며 "그렇다 보니 응급실은 꽉 차고 진짜 중증 환자는 못 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B씨는 "이렇게 대학병원이 몸집을 불리다 보니 지역 2차 병원은 살아남지 못한다. 경증환자까지 서울권 대학병원으로 몰리다 보니 지역의 2차 병원은 기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이 악순환이 안 끊기는 것 같다. 정부가 개입해서 분류하고 페널티라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권 바뀔 때마다 바뀌는 의료정책…인기영합주의적 정책 한계 지적

40시간 연속 근무 후 5시간 쪽잠을 자고 새벽 5시에 출근하며 환자 곁을 지켜왔던 전공의들을 버티게 한 것은 회복되는 환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병원 밖 사지에 내몬 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진짜 의료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닌 총선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른 마구잡이식 정책이라는 점이 그들을 분노하게 했다.

A씨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은 올 2월 초에 워크숍이 있었다. 당시에는 사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설 연휴 때 정부가 '법정 최고형'을 운운하고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의사들에게 행정처분과 의사면허 취소 등으로 겁박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환자를 소생시켜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밤낮을 버텨왔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극단적인 발언에 큰 충격을 받고 회의감을 느낀 동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B씨는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에게 '환자 목숨을 갖고 겁박을 한다'는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의 말은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선배 동료들은 정말 진심어린 마음으로 환자 곁을 지켜왔는데, 이번 사태를 유발한 정부가 그 책임을 우리 의사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공의들은 이번 의료정책이 우리나라 의료 백년대계를 위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총선을 앞두고 급하게 만들어낸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B씨는 "의료는 결국 정책에 큰 영향을 받게 돼 있는데 역대 정부 모두 올바른 의료를 향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표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쪽으로만 정책을 만들고 있다. 지금껏 실패한 정책만 봐도 그렇다. 5년마다 집권 정당이 바뀌면 의료정책이 바뀐다"며 "표를 가져오기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진행되는 정책이 가장 큰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진짜 필요한 정책은 표를 잃을 것을 알면서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다. 그 지역의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지금 정부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해 장기간‧고강도 근무 버텨온 전공의들, 사태 마무리되면 "과연…"

이번 사태는 언제쯤 마무리될 수 있을까? 전공의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과 별개로 이번 사건이 전공의들에게 준 상처를 봉합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B씨는 "이번 사태는 정말 예단하기가 어렵다. 나 역시 사태가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되더라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누가 이날부터 사직서를 내자, 병원에 출근하지 말자고 한 게 아니라 각자의 판단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현 정부의 모습을 지켜본 의대생들이 과연 미래에 전공의 수련을 받으려 할지도 의문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소위 바이탈(vital)과 친구들은 그 과가 힘든 것을 이미 알고 있고, 힘든 것을 각오하고 생명을 다룬다는 사명감과 보람을 추구해 힘든 수련을 버텨왔다. 그런데 정부가 그 바이탈 과를 낙수효과로 채우겠다고 하면서 그 친구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B씨는 "만약 사건이 일 단락 돼 복귀하더라도 예전처럼 당직이 아니더라도 응급 수술 연락을 받고 나가고 정해진 것 이상을 하면서까지 최선을 다해 환자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환자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 이상을 해왔는데, 의사도 사람이다.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가 깨지고 감정의 골이 생긴 상황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했다. 

A씨도 "우리 병원 응급의학과는 전공의부터 교수까지 정시에 퇴근하는 분들이 거의 없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데 당장 소생실로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들어오면 ‘퇴근이니까 다음 사람한테 얘기하세요’하고 갈 순 없다. 이것저것 환자를 챙기다 보면 퇴근 시간이 30분~1시간 넘기는 것은 일상다반사다"라고 말했다. 

A씨는 “비단 응급의학과 뿐 아니라 다른 과 역시 비슷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타과 전공의들도 정시퇴근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이렇게 더 일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불만을 갖지도 않는다. 당연하게 자기 일이라고 여기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이러한 초과 근무에 대해 대가를 바란 적도 없고, 인센티브나 월급, 연봉 인상을 요구한 적도 없다. 선배 교수 때부터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해왔고, 우리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런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난 전공의들이 과연 예전처럼 이러한 초과 근무를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라고 전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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