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3.29 09:43최종 업데이트 24.03.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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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100만원 지원금 거부했다”…사직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정부에 모멸감 느낀 이유

[전공의 특별인터뷰]② 필수과 의사들의 사명감 돈으로 사려는 듯한 느낌 받아…정부는 매일 마녀사냥만 열중

하루라도 빨리 문제 해결 위해 의협 주도 협의체 구성해야…사직 철회 조건은 ‘원점재논의’

각각 외과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로 근무하다 최근 사직한 김경민(가명) · 지선희(가명) 씨는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직 이후 그간 근황과 정부에 대한 심경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특별 인터뷰] 병원을 떠나 마음 아프면서도 상처받은 전공의들의 이야기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의료접근성을 가진 대한민국이 2025년부터 의대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무려 65%를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우리나라 필수의료 위기, 지역의료 불균형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의사 수 보다 적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당사자인 의대생과 의사들의 거센 반대에도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의료계는 근거가 부족하고 의료계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데다 의학교육 여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2000명 증원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업에 평생을 바치겠다며 낮은 월급에도 주 80시간, 연속 36시간이 넘는 고강도 업무를 견뎌왔던 전공의들이 결국 정부 정첵에 대한 반대로 하루 아침에 병원을 떠났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부의 강경 발언에 상처를 받고 이제 다시는 병원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조심스럽게 전공의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① 병원을 떠난 이유 "폭주하는 정부, 한국 의료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직 결심했다"
② “월 100만원 지원금 거부했다”…사직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정부에 모멸감 느낀 이유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김경민(가명) · 지선희(가명) 씨는 최근까지 일명 '낙수과'로 불리는 외과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였다. 그러나 이들이 전공의 직책을 내려놓고 수련병원을 떠난지 벌써 한 달여, 의대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은 해결될 기미 없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선희 씨는 아기들이 좋아 소청과를 선택했다. 비록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내 손으로 직접 아이들을 살리고 생명을 구한다는 가치를 믿고 소청과 전공의를 지원했다. 아팠던 아이가 부모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설 때 지 씨는 삶에서 가장 행복함을 느꼈다. 

'돈' 때문에 소청과를 선택하지 않은 만큼 최근 정부가 소청과 전공의들에게 월 100만원 씩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도 그는 지원금 수령을 거부했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고 단순히 일회성 지원금으로 무마하려는 정부 태도에 환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청과 의사들의 사명감을 돈으로 사는 것 같은 느낌에 모멸감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랬던 그는 최근 사직 이후 줄곧 무력함, 우울증 등과 싸우고 있다. 주변엔 정신과 병원에 다니는 전공의들도 많다고 했다. 의료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올바른 가치를 위해 싸운다고 믿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그를 더 힘들게 한다.

보건복지부 박민수 2차관을 필두로 정부 고위관료들의 무차별적인 폭언과 마녀사냥도 이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됐다. 간혹 행정적 문제로 일하던 병원을 찾을 때마다 지 씨는 자신이 범죄자라도 된 듯한 처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그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누가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왔다. 

김경민 씨도 마찬가지다. 환자를 살리는 최전선에서 일하고 싶어 외과를 선택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명감이 퇴색된지 오래다. 수술을 할 때마다 적자를 보는 수가 구조 탓에 외과의사들은 항상 병원에서 찬밥 신세다. 특히 김 씨는 최근 정부가 의사를 '기득권 악마' 혹은 '물건'처럼 여기는 태도를 보고 크게 낙담했다. 의사이기 전에 국민이고 사람인데 '부족하니 차출하고 없으니 옮겨놓는다'는 식의 발상에 힘이 빠진다고 했다. 

의료제도와 시스템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의료계와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공존해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김 씨의 견해다. 그는 지금처럼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제로섬 게임' 방식으론 의료계와 정부 모두 공멸하게 된다고도 강조했다.  

이들 필수과 전공의들은 무엇 때문에 의료현장에서 그토록 바라던 환자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일까.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가 극한으로 치닫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이들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해법이 생길까. 매일 환자에 대한 미안함, 미래에 대한 불안,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사직한 전공의들을 만나봤다.  

사명감 갖고 필수의료 선택했지만…정부는 매일 의사 마녀사냥만

- 최근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선희(소청과): 심적으로 큰 무기력함과 우울감까지 느끼고 많이 힘든 상태다. 주변에도 이런 증상으로 인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전공의들이 더러 있다.  

김경민(외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매우 크다. 외과 전공의 3년차가 될 시기였는데 환자 생명을 살리고 싶은 책임감으로 외과를 선택했지만 낙수과라는 오명과 함께 정부에서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면서 책임감과 사명감은 없어진 지 오래다.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결정이었고 아직도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큰 사명감을 갖고 병원에 들어왔는데 환자들을 볼 수 없어 심적으로 많이 힘들고 지친다. 다시 이전과 같은 의료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가장 무섭고 떨린다. 

- 전문의 중심 병원 등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정책적 개선을 약속했다. 이런 말들이 진정성 있다고 보나.

지: 실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전공의들 업무 시간 대비 급여를 고려하면 시급 9000원이 안 된다. 전공의 8명을 구할 수 있는 급여론 전문의 1명밖에 채용할 수 없다. 즉 엄청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당장 전공의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전문의를 뽑기엔 역부족이다. 이번 사태로 소청과는 기피 현상이 오히려 더 가속화 것으로 예상한다. 

-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면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지: 세월이 지나면서 소아 비중에 비해 소아과 의사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소아과 오픈런이 생기는 이유는 소아과 전문의를 따고 소아과 진료를 볼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료 접근성이 좋아 병원 쇼핑이 가능하다 보니 특정 병원으로 환자들이 많이 쏠린다. 수가가 낮아서 소아 진료만 봐선 수익이 남지 않아 비급여 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도 많다. 

결국 의사 숫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배분의 문제다. 소아과 전공의들이 전문의를 딴 이후에도 소아과 진료를 계속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 또한 소아과 기피 현상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에서 소아과 의사들에게 책임을 물었던 계기가 컸다. 사법 분쟁에 자주 휘말리는 진료과 의사들을 지킬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 최근 가장 상처가 됐던 말들이 있나?

김: 장·차관 등 복지부 고위 관계자들이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며 업무개시명령, 법정최고형 등을 언급하는 상황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특히 매일 정부 브리핑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차관이 하는 질의응답 내용을 듣다보면 비의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의료 현장과 구조에 대한 지식의 한계가 엿보인다. 예를 들어 '카데바가 부족하다'고 하니 '부족한 병원으로 카데바를 옮기겠다'거나 '카데바를 수입하겠다'는 발언은 현장을 너무 모르는 발언이다. 또한 의학 교육에 대해서도 인공지능이나 메타버스 등을 통해 부족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발언도 답답했다. 

사직 철회하고 돌아갈 수 있는 전제조건은 ‘원점재논의’…사태 빨리 끝나길 기도

- 현재 의대 교수들이 나서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김: 교수들의 사직이 파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교수들은 대형병원 진료를 이끌어가는 주체이다 보니 큰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그 과정에서 교수들이 생각하는 사직 철회의 조건이 있을 것이고 전공의가 생각하는 조건이 다를 수 있다. 지금 교수들은 그들의 길을 가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 그렇다면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을 철회하고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김: 소위 '바이탈 메이저'라고 하는 과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전공의들이 많다. 바이탈 과를 선택한 것 자체가 사회적 대우는 적을 수 있어도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 선택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마음 속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구체적인 복귀 시점은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지만 기본적으로 의대정원 증원을 '원점 재논의'하자는 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도 다시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 특히 이번 일을 계기로 저임금 고효율 노동자인 전공의들로 인해 운영되던 대학병원의 구조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전공의 처우개선은 덤이다. 

지: 사직하고 현장을 비우고 있는 지금도 환자들에게 미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 뿐이다.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마찬가지로 의대정원 문제가 원점 재논의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원점에서 논의한다고 해서 단 한명도 늘리면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간을 갖고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결론 낸 통계를 바탕으로 논의해야 한다.  

- 만약 향후 대화를 위한 협상테이블이 구성된다면 협의 주체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지: 현재는 교수협의회 등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지만 향후엔 젊은 의사를 포함한 의사협회가 주도해야 한다. 특히 사직한 전공의들이 이번 사태의 주체인 만큼 이들의 의견이 당연히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김: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의견이 무조건 반영돼야 한다. 특히 협상의 주체는 의료계의 유일한 법정단체인 의협이 맡아 단일화해야 한다고 본다. 

- 개인적으로 이번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나.

지: 사태가 끝날 수 있는 분기점이 지금까진 없었다고 보인다. 사안을 풀 수 있는 대화가 진행되면 좋겠지만 정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2000명 증원은 번복할 수 없다는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나마 입장이 바뀔 수 있는 계기를 총선이라고 봤는데 현재는 총선 이후까지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다. 시작할 땐 총선 이전에 끝나길 바랐지만 지금은 봄 이후 여름까지 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 이번 사태가 끝나려면 우선 정부의 사과가 필수다. 지금까지 지켜왔던 소중한 사회적 가치가 한순간에 많이 망가졌다. 이런 상태론 절대 이전 의료체계로 돌아가기 힘들다. 지금도 많이 망가졌지만 지금이라도 복구할 수 있는 계기가 있길 희망한다. 

- 마지막으로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 모든 환자들이 의사를 악마로 취급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린 악마가 아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수 많은 시간 동안 공부하고 수련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보람되고 즐거웠던 평범한 사람들이 병원을 떠나 길거리로 내몰렸다. 왜 전공의들이 사직하게 됐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환자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 갖고 있다. 

지: 자리를 오래 비우게 되면서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제일 크다. 하루빨리 사태가 끝나 이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길 바란다.
 
※해당 내용은 전공의 개인 의견이며 전공의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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