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2.12 20:34최종 업데이트 25.02.12 20:37

제보

마취과 1년차 전공의, 데이트폭력 피해자 공동 배상 판결문 보니 "중심정맥관 삽입 과실로 환자 사망"

수건걸이에 머리 부딪힌 피해자 경막외출혈, 의료진은 응급수술 준비...부검결과 오른 빗장밑동맥에 관통상 후 대량 실혈

의료계, 의료진 과실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 의문 제기…“응급환자 외면하라는 판결, 필수의료 씨 마를 것”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법원이 데이트폭력으로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의사와 병원에게 데이트폭력 가해자와 공동으로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의료계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재판부는 의료진의 과실과 피해자가 응급수술을 받게 한 가해자의 폭행죄를 동일시했는데, 그간 의료계가 필수의료 의사 부족의 원인으로 지적했던 사법부의 의료과실에 대한 가혹한 판결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당 의사는 마취통증의학과 1년차 전공의로 확인돼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상해로 경막외출혈 환자, 응급수술 결정…중심정맥관 삽입시술 중 실혈 발생해 결국 사망
 

12일 메디게이트뉴스는 최근 데이트 폭력 피해자 A씨의 유가족들이 데이트폭력 가해자인 B씨와 피해자의 응급수술을 진행한 의사 C씨, C씨가 속한 D병원을 상대로 총 6억3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인의 배상책임을 70%로 인정한 광주고등법원 제3민사부의 사건 판결문을 입수해 살펴봤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2017년 10월 6일 새벽 3시 57분 무렵으로 연인인 A씨와 B씨가 말 다툼을 하면서 시작됐다. 가해자 B씨는 다툼 중 피해자 A씨를 밀쳤고, A씨는 화장실 수건걸이에 머리 뒷부분을 부딪치며 넘어져 경막외출혈 등의 상해를 입었다. 경막외출혈이란 외상에 의해 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의 동맥이나 정맥에 출혈이 발생해 경막외 공간에 피가 고여 안쪽의 뇌를 압박하는 상태를 말한다.
 
경찰과 119를 부른 A씨는 119구급차를 타고 인근에 있는 병원으로 이동했고, CT 등 검사 결과 뒤통수 부위 왼쪽 경막외출혈이 증가해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확인돼 D병원 응급센터로 전원됐다.
 
새벽 8시 무렵 D병원은 다시 A씨의 뇌 CT촬영을 했는데 출혈량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돼 두개골을 절제해 혈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고, A씨는 10시 20분경 수술실로 이동했다.
 
당시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1년차였던 였던 의사 C씨는 가족에게 A씨에 대한 전신마취를 설명하고, A씨 가족으로부터 ‘마취통의서’를 받았다.
 
D병원 의료진은 수술 시 수혈이나 수액 투여에 대비해 망인의 오른 속목정맥에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기로 했고, 전공의 C씨는 시험천자용 주사기를 넣어 속목정맥(목 속에 존재하는 정맥)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
 
이에 마취통증의학과 소속 2년차 전공의가 A씨의 속목정맥을 찾았고, 이어서 C씨가 삽입용 주사기를 넣은 후 안내선을 넣었으나 저항감이 느껴져 이를 제거했다.
 
C씨는 삽입용 주사기의 위치를 조정한 후 중심정맥을 확인하고 안내선을 다시 넣었다. 그 이후 확장기로 혈관을 확장하고 중심정맥관을 삽입한 후 안내선을 제거했다. C씨는 주사기를 넣고 피를 흡인하는 방법으로 중심정맥관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했으나, 피가 흡인되지 않아 중심정맥관을 제거했다.
 
이후 C씨는 다시 중심정맥관 삽입을 위해 시도했는데 이를 전후해 A씨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심박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에 마취통증의학과 소속 3년차 전공의가 A씨에게 수액과 승압제(에페드린 등)를 투여했으나, 반응이 없자 승압제를 추가로 투여했고, 오전 11시 15분 무렵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에게 전화로 상황을 보고했다.
 
해당 교수가 수술실에 도착한 후 C씨 등은 그의 지시에 따라 A씨에게 가슴 압박을 실시했고, 11시 29분 무렵 흉부 엑스레이 결과 혈흉이 확인돼 흉부외과 전문의를 호출한 후 수혈을 시작했다.
 
흉부외과 당직 교수가 도착해 오후 12시 무렵 흉관을 삽입해 고인 피를 제거한 후, 흉강경 검사를 시행했으나 다량의 피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흉부외과 당직 교수는 가슴절개술을 진행해 오른 빗장밑동맥과 오른 온목동맥 분지 부위에서 분출성 출혈과 오른 가슴 내부에서 응혈이 포함된 다량의 혈액을 확인하고 피가 나는 부위를 손으로 압박해 지혈했다.
 
그런데도 약 15분 후 A씨의 혈압이 다시 하강했고, 결국 A씨는 12시 50분경 혈량감소성 쇼크로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후 A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 중심정맥관 삽입시술 과정에서 오른 빗장밑동맥에 약 1~2㎜ 정도의 관통상이 생긴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관통상에 의해 대량 실혈(파혈된 혈관으로 혈액이 흘러나오는 것)이 발생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전공의 삽입시술 중 1~2mm 관통상에서 실혈 발생…재판부 "일반적 부작용이라 보기 어려워"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전공의였던 의사 C씨가 중심정맥관 삽입시술을 잘못 시행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사가 중심정맥관의 삽입 위치를 정하는 것은 의사의 진료방법 선택에 있어 합리적인 재량의 범위에 있고, 의사 C씨 등 의료진이 A씨의 오른 속목정맥에 중심정맥관 삽입시술을 시도한 것에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중심정맥관 삽입시술 과정에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판시했다.
 
의학계에서 중심정맥관 삽입 시술이 흔히 시행되는 시술이나 기흉, 혈흉 등의 합병증이 보고돼 왔고, 특히 쇄골 아래 동맥의 천자로 인해 혈흉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중심정맥관 삽입 과정에서 주위 동맥을 건드리게 될 가능성은 1.9%~15%로서 적지 않게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의료사고와 같이 동맥이 약 1~2㎜ 크기로 관통돼 대량의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보인다”며 “오른 속목정맥은 오른 목의 안쪽에 있는데, 이 사건 관통상은 그보다 상당히 아래쪽에 있는 오른 쇄골 밑에 있는 동맥 부위에서 발생했다. 오른 쇄골 밑 동맥이 손상되는 것은 오른 속목정맥에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의사 C씨의 과실 이외에 관통상을 발생시킬 만한 원인이 없다며, C씨가 삽입시술을 시행하면서 실수로 관통상을 야기했다고 봤다.
 
재판부, 중심정맥관 삽입 시술 전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 등 설명의무 위반 지적 

재판부는 또한 의사 C씨가 속목정맥에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하기 전에 당사자인 A씨나 보호자에게 그 시술의 필요성, 방법 및 내용, 그 시술에 따라 전형적으로 발생이 예상되는 후유증 또는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할 의무를 저버렸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전공의 C씨는 가족으로부터 마취동의서를 받았으나, 그 안에는 ‘마취 과정에서 이 사건 삽입시술이 있고, 그로 인해 주위 동맥에 천자가 발생하는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치명적일 경우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등에 대한 설명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재판부는 “피고 병원 의료진이 이 사건 삽입시술에 대한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 사건 삽입시술에 필요한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다만 “망인이나 보호자가 설명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삽입시술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설명의무 위반의 점은 원고들이 선택의 기회를 잃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데 대한 위자료를 인정하는 사유로만 참작한다”고 밝혔다.
 
법원, 전공의 과실과 환자 사망 사이 인과관계 인정…“응급수술 원인 제공 가해자와 공동배상”
 

재판부는 부검 결과 A씨의 사망 원인이 관통상으로 인해 발생한 대량 실혈 때문으로 밝혀졌고, 해당 관통상은 삽입시술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구 중 하나가 A씨의 오른 빗장밑동맥을 찔러 발생했다며 의료진의 과실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이 사건 삽입시술 이전에 정상적인 활력 징후를 보였고, 기타 특수체질에 해당한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의사 C씨가 이 사건 삽입시술을 잘못 시행한 과실과 A씨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의사 C씨는 물론 그 사용자인 D병원은 애초 피해자 A씨를 폭행해 경막외출혈 등의 상해를 입혀 응급수술을 받도록 한 가해자 B씨와 함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가해자 B씨의 폭행치상 행위로 같은 날 D병원에서 A씨에 대한 수술 및 삽입시술이 행해지게 됐으므로, B씨의 폭행치상 불법행위와 의사 C씨의 의료과오 불법행위는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성을 인정할 수 있다”며 “A씨 사망 결과에 대해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지고, D병원 역시 C씨의 사용자로서 사용자책임을 부담하라”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손해의 공평하고 타당한 분담을 위헤 피고들의 손해배상책임을 70%로 제한했다.
 
의료계, 의료진 과실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 의문 제기…“응급환자 외면하라는 판결, 필수의료 씨 마를 것”
 

한편, 해당 판결이 알려진 후 의료계는 해당 판결이 응급환자라도 100% 살리지 못한다면 치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A씨의 사망원인으로 지목된 중심정맥관 삽입시술 중 발생한 관통상이라는 의료과실이 없었더라면 A씨가 경막외출혈이라는 상해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와 대한마취통증의학의사회에 이어 대한응급의학회 등 각종 의사회와 학회까지 나서 해당 판결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과실과 상해·사망 등 결과의 인과관계를 너무 쉽게 인정하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결 경향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가 당장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의료진을 폭행 가해자와 동등하게 바라보는 이번 판결로 사법부가 의료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며 “해당 의사와 병원은 애초부터 위험한 환자를 받지 말고 외면했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관계자는 “이러한 판결들이 지속해서 쌓이면 향후 생명이 위중한 환자에 대해 의료진들은 소극적인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괜히 환자 살리려다가 범죄자가 되느니 위험한 의료행위를 포기하는 의사들이 늘어날 것이고, 결국 필수의료 의사들은 씨가 마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