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것은 오늘의 삶에 대한 발자취가 후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회자되고 기록되느냐에 따라 특별한 것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선배님들이 피땀으로 환자 진료와 의료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이 현재 우리에게 특별한 역사가 됐다. 지금도 이 모든 순간이 역사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을 역임했던 우리 선배님과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 활동을 포함해 그 흔적을 찾아보며 대구·경북이라는 한 지역에서 의료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정치계에 몸담았던 인물들
의료계 활동뿐 아니라 국회의원 및 장관으로 활동하며 정치계에 몸담은 경북의대 동문도 많았다.
출처 : 대한민국헌정회
김집 제7대 체육부 장관(1988.12∼1990.3)
제11대 국회의원(전국구)민정당(1981.4∼1985.4)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민정당(1985.4∼1988.5)
김집 회원은 대구·경북의사회 기록을 찾았을 때, 가장 언급이 많이 된 인물 중 한명이다. 대구시의사회 제28대 회장(1976~1978)과 경상북도의사회 제4대 대의원회 의장(1979~1981), 대한의사협회 제17대 대의원회 의장(1982~1985)을 역임했으며 이러한 의료계 활동 외에 체육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957년 경상북도체육회 이사, 1974년 대한체육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의사회 활동 시기였던 1981년 제11대 및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돼 활동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12월 5일부터 1990년 3월 18일까지 제7대 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직이 끝난 1990년 4월부터는 한국청소년연맹 총재 및 아시아청소년연맹 총재를 지냈다.
주목할만한 것은 보통 평생에 한번도 받기 힘든 훈장을 세 번이나 수훈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으로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청조근정훈장, 각 분야에서 공을 세워 국민 복지향상 및 국가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국민훈장 모란장, 체육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체위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체육훈장청룡장을 수훈했다. 정치인이자 의료인이자 체육인이었던 김집 회원은 각 분야에서 활동 공적이 모두 뚜렷하고 타의 모범이 됐음을 알 수 있다.
한국원, 대구의전
제2대 국회의원(경북영덕)무소속(1950.5∼1954.5)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대구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한국원 회원은 경상북도의사회 제4대 회장(1945.5.1.∼1950.4.30.)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나 6·25전쟁 발발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로 국회의 활동 기록은 물론 의사회 활동 기록 역시 거의 남아있지 않다. 대한민국헌정사를 통해 경상북도 보건과장 및 국광병원 병원장을 역임한 이력 정도만 알 수 있다.
김천수, 대구의전
제7대 국회의원(경북상주)민주공화당(1967.7∼1971.6)
김천수 회원은 한국원 회원과 마찬가지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대구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상주군에서 김천수의원을 개원해 운영하였으며 제2대 상주시의사회 회장(기록상 1975년까지)을 역임하기도 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상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 외에도 상주인권옹호 위원장, 재건국민운동 촉진회장, 사단법인 담수회 상주지부장, 국회 농림예결운영위원, 경북고등학교 총동창 회장, 광산김씨 종친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상주산업대학교 추진(승격)위원장을 맡아 상주농업전문대학을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김찬우, 경북의대 27회 졸업
제11대 국회의원(청송·영덕·울진)민한당, (1981.4∼1985.4)
제14대 국회의원(청송·영덕)통일국민당, (1992.5∼1996.5)
제15대 국회의원(청송·영덕)신한국당, (1996.5∼2000.5)
제16대 국회의원(청송·영양·영덕)한나라당, (2000.5 ∼2004.5)
김찬우 회원은 영덕군에서 영덕제일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며,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제14~1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활동한 정치인이다. 이외에도 국회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민추협보사위원장, 신한국당 경북도지부 위원장·당무위원, 신한국당 전당대회 부의장, 국회 한·터키 의원 친선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김찬우 회원이 활동한 제15대·제16대 국회의원 시기 영주 출신의 박시균 회원 역시 경북영주 지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박시균, 경북의대 31회 졸업
제15대 국회의원(경북영주)무소속, (1996.5∼2000.5)
제16대 국회의원(경북영주)한나라당, (2000.5 ∼2004.)
김찬우 회원과 같은 시기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박시균 회원은 영주 성누가병원을 운영했으며 한나라당 노인복지소위원회 위원 및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한나라당 정책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경북대 총동창회 부회장, 국회 아시아·태평양 정책연구회 회원, 국회 안보통일정책연구회 회원, 한·이탈리아의원 친선협회 부회장, 한·우크라이나의원 친선협회 이사, 한나라당 정책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장애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국회 노인복지정책연구회 대표의원, 미래전략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활동하다
대한의사협회의 회원을 대변하고 회원의 권익을 수호하는 주체는 집행부라 할 수 있지만, 13만 회원들을 대신해 총회를 출석해 의안을 발의하고 심의하는 의결권을 가지는 것은 대의원이다. 경북의대 출신 의장은 총 7명으로, 한강이남의 의대 중 가장 많은 의장을 배출했다.
대한의사협회 제13대 (1972∼1974) 대의원회 의장 송명도, 경북의대 1회 졸업
경상북도의사회 제18대(1963.6.1.∼1964.1.31) 회장 및 제22∼23대(1967.4.1.∼1969.3.31), 제26대(1971.4.1.∼1972.3.31) 회장을 역임한 송명도 회원은 경상북도의사회 회무에 적극적이었던 만큼 중앙회 활동도 활발히 하면서, 회장 임기 중이었던 1968년 4월 28일 제20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제19대 집행부 감사로 선출돼 활동했으며, 경상북도의사회 회장 마지막 임기가 끝나 직후인 1972년 4월 29일 제24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제13대 대의원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같은 해 경상북도의사회는 회칙 개정을 통해 대의원회 의장단 제도를 도입해 초대 대의원회 의장이 선출됐다.
대한의사협회 제17대 (1982∼1985) 대의원회 의장 김집, 경북의대 제16회 졸업
앞서 장관 및 국회의원으로 정치인의 삶을 지냈던 김집 회원은 의료인으로서도 여러 업적을 남겼다. 경상북도의사회 제4대 (1979.3.24.∼1981.6.17) 대의원회 의장을 역임한 김집 회원은 1981년 7월 1일 대구시가 경상북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1981년 6월 17일 임시대의원총회를 개최하면서 기존 임원진의 사표를 수리하고 임원 보궐선거를 실시해 새로이 회장 및 의장을 선출하게 되면서 임기가 종료됐으며, 이후 1982년 4월 23일 대한의사협회 제34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제17대 대의원회 의장으로 선출돼 활동했다.
대한의사협회 제18대 (1985∼1988) 대의원회 의장 홍선희, 경북의대 제16회 졸업
대구시의사회 초대 (1981.7.7.∼1985.3.31.) 회장을 역임한 홍선희 회원은 지부 회장 활동기간이 끝난 후 1985년 4월 19일 제37차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회 의장으로 선출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 제22대 (1997∼2000) 의장 조세환, 경북의대 30회 졸업
대구시의사회 제3∼4대(1988.4.1.∼1994.3.31) 회장을 역임한 조세환 회원은 1994년 5월 1일부터 대한의사협회 제29대 집행부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조세환 회원은 임기 말인 1997년 4월 26일, 제49차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제22대 대의원회 의장에 당선되었다. 임기 당시 1998년 11월 의약분업을 규정한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의약분업이라는 큰 갈등의 소용돌이가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대한의사협회 제24대 (2003∼2006) 의장 이채현, 경북의대 31회 졸업
많은 경북의대 출신들이 주로 대구경북에서 활동을 했으나 이채현 회원은 부산광역시를 무대삼아 부산침례병원, 부산봉생병원에서 근무했으며, 한국정형외과의원을 개원해 운영하였다. 의사회 활동으로는 부산진구의사회 부회장, 부산광역시의사회 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부산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대한의사협회 제27대 (2012∼2015) 대의원회 의장 변영우, 경북의대 42회 졸업
경상북도의사회 제38∼39대(2000.4.1.∼2006.3.31) 회장을 역임한 변영우 회원은 경상북도의사회 회장을 재임 중인 2003년 5월 1일부터 2006년 4월 30일까지 대한의사협회 제33대 집행부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6년 4월 25일 제58차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제25대 대의원회 부의장으로 선출돼 활동했으며, 이후 제27대 대의원회 의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2012년 4월 29일부터 대의원회 의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변영우 회원은 이외에도 의협 의료법비상대책위원장, 의협 대외사업추진본부 기획특별위원장, 경상북도 교육공동체시민연합 공동대표, (재)우리 문화재 찾기 운동본부 이사, 경북대학교병원 이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동창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의사협회 제30대 (2021∼현재) 대의원회 의장 박성민, 경북의대 51회 졸업
대구시의사회 제12대 회장(2015.4.1.∼2018.3.31.)을 역임한 박성민 회원이 2021년 4월 24일 제73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현재 활발히 활동하며 대의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박성민 회원은 의장 임기 이전, 대합의사협회 감사, 의협 정책자문단 위원, 의협 재정건전화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 의협 의료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이외에도 언급되지 못한 경북의대 출신 주역들이 많으나 개개인별로 그 활동상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여 되레 그 활동상에 누를 끼칠까 싶어 이만 줄인다. 추후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 존경의 마음을 전할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동료와 후배의사들은 영남권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의사협회 활동에 매진 중에 있다. 의사회 활동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개인의 경제적 활동이나 여가를 보내는 시간을 쪼개서 해야하기에 무척 어려움이 따르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고, 그렇기에 의사회 활동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참여를 해주길 당부드린다.
오늘 지면에 언급된 모든분들이 어떠한 영광을 기대하고 활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럼에도 기꺼이 의사회를 위해 활동해주는 많은분들이 계시기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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