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3.26 09:39최종 업데이트 24.01.25 19:56

제보

경북의대 100주년, 경북의대 소아과학교실史

[경북의대 100주년 칼럼] ⑨최병호 경북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

경북의대 100주년, 새로운 100년을 위해  

2023년은 경북의대 전신인 대구의학강습소로부터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다. 경북의대는 한 세기 동안 훌륭한 의료인과 의학자를 배출한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 의학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지금까지 배출된 9000여명의 졸업 동문은 환자 진료 및 의학 연구에 매진해 국내외 의료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북의대는 2023년 8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메디게이트뉴스는 경북의대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와 함께 지나온 100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릴레이 칼럼을 게재한다. 

①권태환 경북의대 학장·경북의대 100주년 공동준비위원장
②박재율 경북대 의과대학 동창회장·중앙이비인후과 원장
③이재태 경북의대 100주년 자문위원단장·경북의대 핵의학교실 교수 
④김성중 경북의대 31대 동창회 수석부회장·대구 W병원 원장 
⑤김용진 경북의대 100년사 간행위원장·경북의대 병리학교실 교수
⑥이원주 경북의대 부학장·경북의대 피부과학교실 주임교수
⑦정한나 경북의대 흉부외과학교실 교수 
김성중 경북의대 31대 동창회 수석부회장·대구 W병원 원장
최병호 경북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 

가장 가난했던 나라, 영양실조와 전염병마저 만연하였던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의 건국 초기부터 교실을 재창설하고 한국전쟁 중에도 지켜내신 선대 교수님, 배고픈 유학과 자기희생을 통해 현대 의학을 도입하고 발전시켜 당시로는 난치병이었던 수많은 질병을 물리치신 원로 선생님, 최고의 의료진 양성을 위해 평생을 열정으로 헌신하셨던 스승님, 소아의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수많은 어린 생명을 지켜내신 훌륭한 교실 동문이 계셨기에 저희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각자 맡은 바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경북의대 소아과학교실은 물려받은 시대의 소명을 가지고, 국립경북대학교어린이병원을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운영하며 어린이 건강을 지역 의료계와 함께 지키고 있습니다. 

[1945~1976년]
대구의학전문학교 학생 강의실- 소아과학 수업 모습

1933년 대구의학전문학교가 개교된 후에는 주임교수 체제 하의 소아과학교실이 정식으로 설립돼 교육 및 진료를 하게 됐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인 교수진에 의해 교실 운영이 재개됐으나, 군정과 1946년 대구 10.1 사건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교수진의 일괄 사표와 재임용 등으로 제대로 된 교실 운영은 어려웠습니다. 
 
최정헌(崔正憲) 교수님은 1935년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경성의전 소아과에서 조수(현재의 전공의 과정)로 수련을 마치셨습니다. 평양시립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1947년 자유를 찾아 월남하셨습니다. 대구동산기독병원 소아과장 재직 중 광복된 조국에 더 큰 기여를 하고자 1949년 경북의대로 부임하게 됐습니다. 최정헌 주임교수께서는 한동섭(韓東燮) 조교수와 함께 의학 교재와 교육을 국제 표준 의학으로 대치하고 치료 중심의 소아과학에 예방소아과학을 병행하는 새로운 교육과 진료를 시작하셨습니다.

1959년 최정헌 교수님은 CMB(한국의학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록펠러재단) 추천 장학생으로 미국 코넬대학 부속 뉴욕병원에서 14개월간 연수를 하고 귀국하셨습니다. 학생 강의에 전공분야별 외래교수제를 도입하고 신생아 및 미숙아에 대한 특수 관리에 진력하셨습니다. 1962년 공로훈장인 황조소성훈장을 받았습니다. 1967년 12월에 최정헌 교수님은 UNICEF 및 WHO-펠로우로 영국 런던대학 어린이건강센터(Institute of Child Health)에서 1년간 소아과학 교육법 및 개발도상국 어린이 보건문제에 대한 연수 후 귀국하셨습니다. 지역사회 소아보건 분야에도 역점을 두기 시작해 전국 유일의 모범적인 모자 보건센터를 창설, 육성시키셨습니다. 
 
대한소아과학회 춘계학술대회. 앞줄 가운데가 최정헌 회장, 앞줄 좌 첫 번째가 한동섭 교수님

1970년에는 대한소아과학회 회장으로 선임돼 우리나라 보건법 제정 등에 적극 참여하셨습니다. 고아원 어린이의 육아 지도, 초등학생 급식 및 성장발육 상태 조사 등 어린이 보건과 지역 사회의학 문제에 적극 참여하면서 어린이 보건향상에 여러 면으로 기여하셨습니다. 세균성 전염병 관리, 모자보건 및 어린이 영양 문제에 대한 업적은 커서, 1972년에는 소아과 교육 및 모자보건사업에 대한 공헌으로 보건사회부 장관의 감사장을 받으셨습니다.

1977년 8월 최정헌 교수님께서 정년퇴임하셨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군의학교 교장, 군병원 원장 등으로 근무했고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에 은성충무훈장을 소급해서 받으셨습니다. 
 
한동섭 교수님은 1943년 경북의대를 졸업 후 1947년 경북의대 전임강사로 부임해 최정헌 교수님과 함께 초창기부터 교실을 이끌어 나갔으며, 1976년 퇴임하셨습니다. 1965-67년 경북의대 부속병원장(현재 경북대학교병원장)을 겸직하셨습니다.  
경북의대 소아과학교실 1977년 수료 기념. 앞줄 왼쪽 2번째부터 안두홍, 최정헌, 구자훈 교수님

[1977~2004년]
 
안두홍(安斗洪) 교수님은 1949년 경북의대를 졸업하고 소아과학교실 조교 근무를 시작한 후 1962년 강사로 임명되셨습니다. 1977년 최정헌 교수님의 퇴임으로 주임교수, 부속병원 소아과장직을 승계하게 됐습니다. 1978~1982년 경북의대 부속병원장에 취임해 EXIM 차관 도입, 신병동 건립 등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1978년 대한소아과학회장에 선출되셨고 1982-84년 경북의대 학장을 맡으셨습니다. 1991년 정년퇴임셨습니다. 1985년 대통령 표창 및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셨습니다.
 
구자훈(具滋薰) 교수님은 1963년 경북의대를 졸업하고, 모교 소아과 수련 중 입대해 해군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도미하셨습니다. 미국 뉴욕 및 버팔로 아동병원(뉴욕주)에서 소아과 전공의 및 소아신장학 펠로우를 수료하셨습니다. 7년 만에 귀국해 1976년 모교에 부임해 교실에 큰 개혁이 시작됐습니다. 안두홍 과장님과 함께 소아과 각 분야의 특화에 주력해 소아신장학, 소아심장(이상범 교수), 소아혈액종양(이건수 교수), 신생아(김행미 교수) 분과별 특수 클리닉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1981년 세포유전 검사실을 개설해 염색체 이상의 산전 진단을 비롯한 유전상담을 하게 됐습니다(이건수 교수). 1986년 지역 최초로 29병상 규모의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을 개소했습니다. 
 
교수진의 해외 장기 연수가 본격화했습니다. 이상범 조교수가 미국 뉴욕 콜럼비아대학 소아심장학 1년 연수 후 돌아오신 후 1984년부터 소아 심장 초음파실 운영이 본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심혈관 촬영을 통해 선천성 심장병의 수술 전 진단에 획기적인 도움을 주는 한편 심도자술을 이용한 폐동맥 협착증, 대혈관 전위증에 풍선 성형술 치료를 도입해 활발히 시행했습니다. 1985년에는 소아 신장이식에 성공했습니다. 1987년 이건수 교수가 1년 간 미국 UCLA 소아혈액종양 연수를 하고 귀국했고 1989년 골수 이식(국내 네 번째)을 실시하셨습니다.

1988년 김행미 교수가 1년간의 미국 버몬트, 오하이오 대학병원 연수(신생아집중치료실, NICU)를 마치고 귀국하셨고,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는 미숙아 호흡곤란증에 대한 surfactant 치료를 실시했습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호흡 부전의 최신치료법인 고빈도 환기와 NO 흡인 요법을 시행해 신생아 폐고혈압 지속증 미숙아의 생존율을 현저히 호전시켰습니다. 
 
1991년 소아병동 내에 6병상의 소아중환자실이 설치돼 인공호흡기와 집중 치료가 필요한 소아 환자의 치료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1992년 만성 환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써, 1형 소아 당뇨 환자를 위한 당뇨 캠프를 시작해 매년 지속하고 있습니다(고철우 교수). 혈우병환자에 대한 치료와 정기검사, 재활, 유전상담을 실시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지정 혈우병 대구 경북지역 진료센터를 운영했습니다(이건수 교수). 심혈관 촬영실에서는 심도자술을 이용한 선천성 심장병의 비수술적 중재적 치료도 더욱 활발히 진행돼 풍선중격 확장술, 동맥관 폐쇄술 등으로 영역이 확장됐습니다. 

현명철 교수가 전기생리검사(Electrophysiologic study) 및 전극도자 절제술(Radiofrequenay catheter ablation)을 도입해 1998년 1월 전국에서 2번째로 발작성 심장 빈맥 환아에게 심도자를 이용한 심장 내 부전도로 절제술을 성공시켰으며 이후 활발하게 부정맥환자를 치료했습니다. 태아 심초음파를 시작하여 산전 관리에 큰 도움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3월 담도폐쇄증으로 인한 간경화 말기 1세 영아에게 이식혈관외과와 함께 비수도권 최초(전국 4번째)로 생체 부분 간이식을 성공시켰습니다(최병호 교수). 
 
1999년 권순학 교수가 미국 뉴욕에서 소아과 전문의를 취득 후 미네소타대학에서 소아신경학 펠로우 3년 과정을 수료하고 6년 만에 귀국해 조교수로 부임해 소아신경학 분과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희귀 중증 환자가 끝없이 몰려와서 오후 진료가 밤 9시 반까지 밀리는 일이 허다함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구자훈 교수님은 1994년 9월 의과대학 학장으로 취임한 후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 의대 기금교수제를 도입하는데 성공해 교수진의 대폭 확대를 이뤄냈습니다. 소아과학교실의 교수진도 충원을 통해 분과진료의 확대와 어린이병원의 개원 준비의 초석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2 병원 및 캠퍼스(현 칠곡경북대병원 및 의생명과학관) 설립문제를 해결하는데 공헌을 하셨습니다. 대한신장학회 회장(1994년), 대한소아신장학회장(1999년), 대한소아과학회 회장(2000년)을 역임하였고, 2004년 2월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하셨습니다.
 
경북의대 소아과학교실 2004년 수료 기념. 앞줄 왼쪽부터 6, 8, 10, 12번째 이상범, 구자훈, 이건수, 김행미 교수님 

구자훈 교수님은 필자의 은사님으로서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주치의는 환자 기록을 머릿속에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환 보고를 하거나 회진을 돌거나 경과를 발표할 때 환자 수에 관계없이 병력 및 데이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나와야 했습니다. 훈련이 되다보니 환자의 의무 기록을 작성하면서 저절로 모든 수치가 외워지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Assess'와 'summary'가 중요하다는 말씀은 수 십 번도 더 들었는데, 지금은 필자가 수 백 번도 더 강조하는 메시지가 됐습니다.

두 번째 기억나는 원칙은 중환자가 생기면 ‘차라리 환자 옆에서 죽을지언정 소홀함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의국원은 이 말씀을 주치의가 죽더라도 환자를 살려야 한다고 약간 잘못 이해했습니다. 환자 병상 옆에서 주치의가 모든 것을 다하면서 지키는 문화가 수십 년 동안 고착이 되었습니다. '교대 keep'이 아니라 살릴 때까지 계속이었습니다. 일례로 소아 신장이식이 뜨면 보호자 없는 1인실에서 환자와 숙식을 같이 하면서 2주를 '독박 keep'했습니다. 필자는 전공의 3년차 때 신장이식 keep을 5번이나 (당~ x, 독박을 썼~ x) 겪었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소아 간이식 관리에서 빛을 발휘하게 됐는데, 당시 keep을 할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나비효과였습니다.  

[2005년~ 2023년]   
 

2005년 이상범 교수는 대한소아심장학회 회장을 2년 역임했고 2006년 경북의대 학장으로 수고했습니다. 이건수 교수는 대한혈액학회 이사장(2002~2004),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회장(2003~2005), 대한소아과학회 회장(2012-13)으로 봉사했고 2009년 대통령표창을 받았습니다. 
 
숙원 사업이던 대구경북권역 어린이병원을 2007년 지정받은 이후 칠곡경북대병원 부지 내에 2013년에 개원하게 됐습니다.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대구 경북 권역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최선의 전문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으며, 경북대병원 교수진이 대거 이동했습니다. 총 병상 중에서 소아집중치료실, 신생아집중치료실, 고위험산모 태아집중치료실의 비중이 40%를 차지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의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원과 분원 형태로 병원이 두 개가 돼 전공의는 본원의 파견을 받아야 했습니다. 
 
칠곡경북대병원 전경 

2013년부터 2021년 사이에 이상범, 이건수, 김행미, 고철우 교수의 퇴임이 있었습니다. 신임 교수진으로 9개 분과 교수진을 완성했습니다.

2020년 2월 대구부터 덮쳤던 코로나-19 대유행이 3년을 넘어서면서 드디어 일상으로 회복이 됐습니다. 그동안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고자 하는 의사의 지원이 3년 연속 전국적으로 없게 되는 절망적 상황이 돼서 소아응급의료와 중환자 관리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닥쳐오는 위기 상황을 선제적으로 예상해 대구경북권역에서 유일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2022년 3월 개소했습니다. 현재는 전문의 7인으로 구성해 운영 중이며, 24시간 365일 대구경북의 응급 환자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국비 지원만으로는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센터이었지만, 대단히 감사하게도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에서 운영비 지원을 매년 해주고 있고, 24시간 소아 혈관 및 진정 팀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수도권과 다른 지방에서 일어나는 소아응급 대란으로부터 대구경북 어린이는 훨씬 좋은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전국적인 모범 지자체 사례가 돼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고 있습니다. 
 
응급환자 중에 포함돼 있는 중환자를 책임질 수 없다면 소아전문응급센터라도 존립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경북대 어린이병원은 어린이병원 통합집중치료센터를 전문의 6인(2021년에는 9인)으로 운영 중입니다. 2017년 권역 최초로 심장이식 성공(5kg 영아)을 포함해 간이식 등의 이식 수술 전후 환자 관리를 소아집중치료실에서 성공적으로 해왔으며, 수많은 심부전, 간질 중첩증, 중증 패혈증 등의 환자를 건강하게 살려냈습니다.

소아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흉부외과 교수진이 수술실로 옮기기조차 어려운 응급 수술은 집중치료실에서 직접 수술 팀을 대동해 장절제술, 개두술 등을 해내고 있으며, 집중 치료실 안에서 수술 후 관리를 포함하여 최신 인공호흡기와 ECMO, 혈액 투석, 혈장 교환, 치료 위장관 내시경 등의 치료를 하고 있으며, 심장 및 복부 초음파와 위장관 내시경을 상시 병동에서 하는 최고 수준의 PICU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9개 분과 전문의와 소아외과계열 교수진, 소아영상의학, 소아재활의학, 소아정신과 등 소아 관련 전문의의 협진은 기본입니다.
 
또한 대구경북권역 고위험산모 태아 집중 치료센터는 산과교수 5인으로 운영 중으로 대구경북권역의 고위험 산모의 안전한 분만과 태아의 건강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NICU와 밀접한 협력을 통해 출생체중 530g의 미숙아를 건강하게 퇴원시키는 등 대구경북권역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 초기에는 수도권의 고위험 코로나 산모까지 칠곡경북대학교병원으로 이송을 받아 치료했고 소아 코로나-19 환자 격리 치료는 초기부터 현재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증환자의 치료와 관리가 장기화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중증환자 중 재택관리가 가능한 경우에는 조기 퇴원을 시켜 가정에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돌볼 수 있게 했습니다. 전국에서 서울대어린이병원 외에 유일하게 운영되는 경북대 어린이병원 중증재택의료팀에는 등록돼 관리 받는 환자가 누적 40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권역 희귀질환센터(권순학 교수)도 어린이병원에서 실질적인 운영을 하고 있으며, 유전대사 클리닉도 운영되어 수많은 환자의 확진과 치료를 돕고 있습니다. 발달재활센터에는 다양한 치료실과 훈련실을 갖추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병동의 입원환자 담당도 모두 교수진과 전문의가 맡고 있어서, 향후 언제라도 전공의를 편하게 모실 준비가 돼있습니다.

맺음말

1971년까지 전국의 의과대학은 14개가 있었는데 1977년부터 1998년까지 무려 27개의 의대(22개가 비수도권 의대)가 신설됐습니다. 그러나 신설의대의 반 이상이 지방 거점 부속병원 대신 수도권에 대형 협력병원을 신설하고 졸업생을 수도권으로 흡수했습니다. 수도권 병상이 급증하면서 수도권의 전공의 정원도 늘어났고, 의대졸업 정원보다 전공의 정원이 많아지게 되니, 힘든 필수의료 전공 지원자는 더 감소하게 되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초래 됐습니다.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의대의 인기가 치솟음에 따라 지방의대 재학생의 반 이상을 수도권 출신이 차지하게 됐고 졸업 후 대부분 수도권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지방 균형발전을 위한 목적의 지역 의대 신설은 오히려 현재 진행되는 지방 필수의료의 몰락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고만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현재 소아 의료계의 위기는 끝날 줄을 모르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며, 초창기 교실의 어려움에 비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와 기반이 순식간에 무너질까 걱정이 깊습니다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저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은사님이 이뤄내셨던 고귀한 교실의 명예와 전통을 지켜나가겠습니다. 또한 중증 및 희귀난치성질환, 소외계층의 아픈 어린이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이바지하겠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