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8.31 11:12최종 업데이트 23.08.3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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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바뀐 선진입·후평가 제도, IRB 없는 의료기관에서 연구 없이 바로 진료…의사·환자 '반발'

의료계 "규제 푼다고 능사 아냐, 근거 확보 어려워지고 시장 퇴출 가능성 높여" 우려 제기

복지부 "빠른 주기의 인공지능, 디지털치료제 시장 도입과 생태계 조성 위한 것…데이터 확립 공은 업체로 넘어가"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새로운 의료기술, 의료기기의 개발이 가속화됨에 따라,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중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 혁신의료기술 평가 제도, 제한적 의료기술 평가 제도 등 '선진입 후평가 제도'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대폭 변경된다.

우선 3개 중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혁신의료기술 평가 제도를 통합하고, 보다 빠르게 실사용데이터(리얼월드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도록 IRB(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가 없는 의료기관에서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선진입 제도 대상 기술 선정 절차를 통합하고, 선정된 기술에 대해 고시 대신 공고하는 방식으로 변경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오상윤 과장,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신채민 본부장·박주연 근거창출지원팀장은 지난 30일 신의료기술 선진입-후평가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 개선 방향과 선진입 후평가 제도 일원화 개선안을 발표했다.
 
 
자료 = 현행(위) 선진입후평가 제도가 대폭 변경(아래)될 예정이다.

현재 신의료기술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후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에서 임상적 안전성·유효성을 평가받아야 보험등재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술에 한해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 혁신의료기술 평가제도, 제한적 의료기술 평가 제도 등 '선진입 후평가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복지부 오상윤 과장은 "신기술의 특수성과 산업발전 속도를 고려해 새로운 의료기술의 시장 선진입을 허용하고 안전성·유효성을 이후 평가하는 각종 제도를 도입, 추진해왔다"면서 "2015년에는 '신의료기술평가유예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의료기술 중 일정요건을 갖추면 비급여로 조기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후 2019년에는 혁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인공지능, 의료로봇, 3D 프린팅, 디지털치료제 등 첨단의료기술에 대해 안전성과 잠재성을 확보시 조기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안전성과 유효성 등 임상적 근거 창출 지원과 사후평가를 하는 제도다. 2022년부터는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를 시행 중이다. 이는 비침습적 혁신의료기기에 한해 각종 인허가와 평가제도를 결합해 의료현장에 진입하는 기간을 390일에서 80일로 단축시키는 제도다.

오 과장은 "이 같은 제도에도 불구, 산업계에서 임상근거 창출 요건을 채우기 어렵고, 실시기관이나 진료과목 제한 등 임상계획을 짜는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면서 "이에 따라 선진입 후평가 제도를 개선키로 결정했다. 혁신의료기술 평가 제도 등에서 산업계 부담으로 여겨지는 임상계획 수립 등 현장 사용 절차를 대폭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각기 다른 선진입 제도 간 형평성 문제와 복잡성 등을 고려해 과정 관리 방법을 일원화하고 비침습적 기술 등에 대한 사용기간을 최대 4년까지 확대하는 한편, 환자 안전관리와 부작용 모니터링 등은 보다 강화하겠다"면서 "요약하면 산업계가 좀 더 빨리 시장에 진입하되 환자안전은 보다 엄격하게 지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거창출을 위한 지원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오 과장은 "선진입 제도가 대폭 완화되더라도 개별 의료기기 기업 등은 보험등재, 해외 진출 등을 위한 근거창출 노력을 자체적으로 기울여야 한다"면서 "향후 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전주기 컨설팅, 영문보고서 제공 등 밀착 지원도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혁신의료기술평가 등 심의 절차에서 산업계의 의견 개진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위원회 구성시 산업계와 법조계 등 타 분야 인사를 포함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평가 유예, 혁신의료기술 평가 등 기존 선진입 제도의 대상 기술 선정 절차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절차와 기간 단축을 위해 기존 혁신의료기술 등의 고시를 '공고'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도 관련부처와 협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비침습적 의료기기로 식약처 허가-신의료기술 평가 간 중복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은 평가 절차를 완화하거나, 해당 기기는 신의료기술 평가를 거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평가유예 신의료기술+혁신의료기술평가 = 선진입 의료기술 통칭, IRB 연구 없이 바로 진료 시행해 근거 마련 가능

구체적으로 현행 선진입 의료기술을 살펴보면, 평가유예 신의료기술은 비급여로 임상진료를 활용할 수 있고 최대 2년+평가기간(최대 250일)간 시행할 수 있다. 연구는 필수 조건이 아니며 모든 의료기관에서 시행 가능하다.

혁신의료기술은 연구수행과 임상진료(선별급여 또는 비급여)를 병행해야 하며, 연구시 IRB가 있는 의료기관에서만 가능하다. 최대 3년(일부 5년)+평가기간(최대 250일) 동안 시행하면 된다. 제한적 의료기술은 신의료기술평가를 탈락한 기술로, 비급여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최대 4년 이내(환자등록 3년 + 추적관찰 1년)며, IRB가 있는 기관에서 전향적 임상연구를 해야 한다. 이들 3개 제도 모두 부작용보고, 모니터링 등을 실시해야 하는데, 제한적 의료기술의 경우 보다 체계적인 임상 자료 등록, 데이터관리와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

이번 개선안의 골자는 평가유예 신의료기술과 혁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합해 바로 이들 대상의 경우 연구 없이 바로 의료현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수행 기간 역시 최대 4년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보의연(NECA) 박주연 근거창출지원팀장은 "근거창출 연구는 원하는 기업에 한해서 진행하면 되고, 4년까지 시행하려면 기간연장을 위한 중간검토를 받으면 된다"면서 "사용기간은 최대 4년까지 허용한 것은 충분한 근거창출 기간을 주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분기별로 받던 수행현황을 월별로 보고받을 예정이며, 모니터링과 부작용 보고 역시 월별로 보고받도록 개정했다.

또한 신의료기술과 혁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합한 선진입의료기술제도 대상도 보다 확대한다. 기존에 혁신평가 대상은 비침습적 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 웨어러블 기술 등이었으나 비침습적 융복합 영상진단과 차세대 체외진단 기술 등으로 확대됐다. 신의료평가유예 대상은 비침습 진단검사기술에서 비침습 의료기술 전체로 확대됐고 유예기간도 2년에 더해 1회 유예 연장이 추가됐다. 

다만 제한적 의료기술 평가제도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대대적 개선이 이뤄지는 만큼 환자 안전 모니터링은 보다 강화한다. 환자 사전 설명과 동의서를 의무화하며, 신청기관뿐 아니라 실시기관(의사)도 주체 책임을 강화해 부작용이나 이상반응에 대해 즉각 보고하도록 했다. 중대한 이상반응이나 안전성 위해 수준이 높은 경우, 또는 허위 보고하거나 보고하지 않으면 사용 중단 조치를 내릴 예정이다.

특히 올해 안으로 '선진입 통합관리 정보시스템 구축'을 마련해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환자 모니터링은 물론 실사용 자료를 축적, 분석해 실사용 근거를 마련하는 데도 사용할 예정이다. 

보의연(NECA) 신채민 본부장은 "선진입 의료기술의 과정관리 절차 간소화와 통합으로 산업계 부담이 완화되고, 컨설팅 확장을 통해 적시적기에 시장에 진입하고 기술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 "규제 푼다고 능사 아냐, 근거 확보 어려워지고 시장 퇴출 가능성 높여" 우려 제기
 

이 같은 제도 개선에 대해 산업계는 환영의 목소리를 냈지만, 의료계, 환자단체 등에서는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김종배 신의료기술평가분과장은 "암환자가 신의료기술을 제때 사용하지 못해 일본 등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신의료기술을 빠르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결국 환자 혜택으로 돌아간다"면서 "앞으로도 환자들의 의료접근성 개선과 보장성 강화 등을 고민하면서 지속적인 제도 발전과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기기협회 보험위원회 임재준 부위원장 역시 "신기술의 빠른 시장 진입을 통해 환자는 물론 국가경제와 산업육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산업계는 제도 개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성공을 위해 반드시 시장 진입 후 근거창출에 대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아산병원 서준범 교수(혁신의료기술자문위원회)는 "산업계가 IRB 연구를 불편해 한다는 이유로 이를 빼고 진료를 바로 보게 했고 적용기간도 4년으로 대폭 늘렸다. 과연 이 부분이 산업계의 이득으로 돌아갈지는 의문"이라며 "선진입을 통해 시장에 빠르게 들어오면 한시적으로 경제적 이득이 발생하겠지만, 4년 후 실제 등재돼 수가를 받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 1~4년 사이 임상적 유용성과 경제성을 창출하지 못하거나 제대로된 근거 마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가도 못받고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제도 개선 후에는 안전성 모니터링을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비가역적 전기천공술을 제한적 의료기술제도로 적용받아 연구를 수행해온 세브란스병원 방승민 교수는 "기존의 선진입 후평가 제도도 보다 빠르게 시장 진입을 돕는 제도인데, 이번 개선안은 진료현장에 바로 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더욱 시장 진입을 앞당기도록 했다. 산업계 입장에서 당장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나, 추후 안전성 보고나 모니터링, 데이터 관리 등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상의사 입장에서 보면 안전성 보고와 동의서 의무화 등으로 업무가 급증할 수밖에 없고 책임도 확대된다. 때문에 산업계 입장에 근거해 규제를 풀어 빠르게 시장에 신기술이 도입되도, 정작 현장에서는 사용을 꺼려 사장되기 쉬울 것이란 지적이다.

데이터 수집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데이터 퀄리티 역시 원하는만큼 나오지 않아 정식으로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을 때 오히려 기준 미달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내다봤다.

방 교수는 "더욱 문제는 단순이 세상에 없던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전성, 유효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패스해버린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들이 진료현장으로 가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환자가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업계가 데이터를 만들다가 실패해도 그 손해를 모두 국민이 떠안게 된다"면서 "단지 '혁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대적인 개선을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건강정책참여연구소 김준현 대표 역시 "이번 개선안은 보건의료가 영리, 상업적 목적에 포위되면서, 보의연이 의료 근거 창출 위한 본연의 관점 보다는 의료기술의 상업적, 경제적 이득에 초점을 뒀다. 이는 단순히 산업계 절차상 문제를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네카의 평가 기능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반드시 근거창출을 위한 방안이 우선돼야 한다. 근거도 없이 시장에 무리하게 진입하면, 결국 환자들은 의료비 부담이 늘고 안전성 위협만 가중된다"면서 "기술이 진보됐다고 해도 혁신성은 의료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무작정 규제를 푸는 이번 정책방안은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오상윤 과장은 "단순히 안전성 져버리고 제도를 완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개정안은 시장 진입의 장벽 낮추되 안전성 측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마련했다"면서 "특히 인공지능, 디지털치료제 사이클 주기가 빨라지고 버전 업데이트 등 필요하며, IRB가 있는3차병원 보다 의원급에서 필요성이 높다. 즉 이 같은 대상에 한해 임상근거를 확립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려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임상 포기가 아닌 장기적 산업생태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실사용 데이터 확립 부분의 공은 산업계로 넘어갔다"면서 "단순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임상근거 창출을 위해 기업이 더 노력해야 한다. 빈약한 근거로는 정식 제도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인, 전문가 납득할만한 근거 마련이 필수"라고 밝혔다.

서민지 기자 (mjse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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