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이중 고통을 겪고 있는 '뇌전증' 환자에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뇌전증학회는 30일 국제학술대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사회적 낙인이 심한 뇌전증 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전국 거점의 뇌전증치료센터를 육성하는 등 뇌전증 환자를 위한 지원사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국에 30만명 이상의 환자가 존재하는 뇌전증은 사회적으로 인식이 나빠 자신이 뇌전증 환자임을 스스로 숨기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지난해 7월 부산에서 뇌전증 환자가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상암 교수는 '한국 뇌전증 환자들의 사회적 차별 및 낙인'에 대해 발표하며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가 실제로 사회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면서 "취업하는 과정에서 거절당하거나 뇌전증을 이유로 해고당하는 등 결국 질환을 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상암 교수는 "스스로 떳떳하게 자신을 뇌전증 환자라고 밝히지 못하니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고, 정부는 이런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뇌전증 환자가 많이 없는 것으로 여겨 돌봄과 지원이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뇌전증학회 홍승봉 회장(사진)은 "정부는 치매나 뇌졸중과 달리 뇌전증 환자를 위해 지원사업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서 "그만큼 뇌전증 환자들은 사회적 낙인과 소외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홍승봉 회장은 약물치료가 어려워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수술 받을 수 있는 곳이 매우 적고, 위험성이 낮은 수술법을 사용할 수 없는 현재 의료 구조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홍 회장은 "최근 1mm 작은 구멍으로 수술하는 SEEG수술법이 나왔지만 시행할 수 있는 장비 로봇이 없어 할 수가 없다"면서 "전국에 한 두 대만 있어도 환자들이 수술받을 수 있는데, 개별 병원은 수익이 낮은 고가의 장비를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홍 회장은 "정부에서 뇌졸중이나 치매에서 시행했던 것과 같이 전국 거점의 뇌전증센터를 육성해 환자들이 약물치료, 수술, 심리적 치료, 재활 등 여러 분야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재활과, 정신과에서만 존재하는 사회복지사 급여항목을 뇌전증에도 신설해 환자들의 우울함, 정신적 불안감과 스트레스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미국장애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벤더컨설팅서비스사'의 CEO인 조이스 벤더 대표(사진)가 참석해 뇌전증 인식 개선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뇌전증학회는 뇌전증 환자와 장애인의 복지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조이스 벤더 대표와 조인식을 통해 한국과 미국 뇌전증 환자의 복지 향상을 위한 협력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20대에 뇌전증을 앓았던 조이스 벤더 대표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출혈로 수술을 받는 사고를 당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벤더컨설팅서비스사를 설립해 장애인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조이스 벤더 대표는 "한국 뇌전증 환자들이 수치심과 차별로 인해 우울증과 자살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도 처음부터 사회적 낙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와 교육을 끊임없이 한 결과 지금은 상당히 개선된 상태"라고 말했다.
또한 조이스 벤더 대표는 미국은 '장애인법'에 따라 뇌전증 환자들이 취업에 있어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며, 한국의 환자들에게도 자유를 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취업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조이스 벤더 대표는 "뇌전증이 정신질환이거나 유전병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환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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