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항암제 '넥시아'가 말기 암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중복게재 및 변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경희대가 예비조사만 150일이 걸린다는 입장이어서 '시간끌기'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넥시아'는 무너져가는 한의사들의 자존심을 지켜줬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반면 의사들은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사기극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이런 논쟁이 15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전의총은 '넥시아'의 증례를 보고한 2개의 논문이 중복게재 및 변조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넥시아 관련 논문의 연구윤리 위반 의혹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0년 6월 국제암학술지 'Annals of Oncology'의 Letters to the Editor(독자투고란)에 한방 항암제 넥시아의 효능에 관한 증례보고(원문:Rhus verniciflua Stokes extract as a potential option for treatment of metastatic renal cell carcinoma: report of two cases)가 게재됐다.
논문에는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성 신장암에 대해 aRVS(알러젠 제거 옻나무 추출물, 일명 '넥시아')가 대체 치료제로 유망하다는 내용의 증례보고가 게재됐고, 이는 곧 넥시아의 효능이 입증됐다는 근거 자료로 활용됐다.
실제 넥시아를 개발한 최원철(한의사) 전 경희한의대 교수는 이 논문이 국제암학술지에 게재된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전의총은 이 논문의 2번째 증례가 2008년 6월 대한한방내과학회지에 게재된 '알러젠 제거 옻나무 추출물 투여로 소퇴된 신세포암 유래 부신전이암 1례' 논문의 증례와 동일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두 증례에서 ▲전씨 성의 남자 ▲폐와 부신으로 전이된 신장암 진단명 ▲2006년 9월에 좌측 신장절제술을 받았다는 내용 ▲2007년 3월부터 2달간 Sunitinib 표적항암제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어 환자가 치료 거부했다는 내용 ▲2007년 6월 장중첩증으로 소장절제술을 받았다는 내용 ▲2007년 7월부터 넥시아를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모두 일치했다는 것이다.
물론 동일한 증례라고 하더라도 출처를 밝히고 두 학술지가 중복게재에 동의한다면 문제되지 않지만, 논문에는 어떠한 출처나 중복게재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없었다는 게 전의총의 지적이다.
이러한 중복게재 의혹과 더불어 전이성 폐암의 위치가 이 논문에서는 좌상엽(좌측 폐 윗부분)이지만, 2008년 대한한방내과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우하엽(우측 폐 아랫부분)으로 표시되어 있어 변조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전의총은 지난 2월 1일, 경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위와 같은 사실을 토대로 논문에 대한 검증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고, 경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이튿날 제보를 접수완료 했다.
경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운영 규정에 따르면 제보가 접수되면 예비조사를 거친 후 본조사, 판정 순으로 조사를 진행하는데, 예비조사는 30일 이내, 본조사는 90일 이내에 판정을 포함해 완료한다.
전의총은 예비조사 30일이 지난 3월 7일, 다시 경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로 조사 진행과정과 일정 등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자 경희대는 공문 접수 이틀 후 '면밀한 검토'를 이유로 예비조사를 60일 연장한다고 전의총에 통보했다.
이와 함께 5월 4일에는 예비조사를 추가로 60일 더 연장한다고 알려왔다.
즉 예비조사만 총 150일(30+60+60)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경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관계자는 13일 "제보자(전의총)와 피조사자(저자 이모 교수 외 5명) 간의 의견이 상이하고, 사례의 복잡성으로 인해 면밀한 검토 및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연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운영 지침 제22조 4항에 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조사결과의 통보까지 모든 절차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하지만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제보자 및 조사대상자에게 그 사유를 통보해 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예비조사를 150일로 연장했고, 본조사 또한 규정을 들먹인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
'넥시아' 복용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신속한 조사 이뤄져야
다른 연구윤리 사건은 진실을 규명하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유명한 황우석 교수 사건을 보자.
2005년 6월, 황우석 교수는 미국의 전문과학저널 SCIENCE(사이언스)에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줄기세포 조작 논란이 일었고, 같은 해 12월 11일 서울대 조사위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재검증하기로 결정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서울대 조사위는 23일, 논문이 조작됐다는 중간조사를 발표하고, 29일에는 최종적으로 "줄기세포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12월 11일 조사에 들어가 29일 최종 판정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19일에 불과했다.
결국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연구윤리 조사 기간은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전의총 관계자는 "예비조사는 본조사의 실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일 뿐인데 예비조사만 5개월이 걸린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넥시아'는 말기 암환자에게 처방하고, 한달 약값이 수백만원에 달하는 고가 항암제다.
특히 현재 수많은 암환자들이 '넥시아'를 복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문의 조작 여부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이에 따라 경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연구윤리 위반 본조사를 늦추면 늦출수록 한의계의 눈치를 보느라 암환자들의 생명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