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3.03 09:36최종 업데이트 24.03.03 17:24

제보

졸속 의대정원 증원...100년 전 교육방식으로 퇴행하려는 대한민국 의학교육을 걱정하며

[칼럼] 이영미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어떤 교육인프라 확충을 위한 구체적 방안 없이, 졸속하고 급작스럽게 의대생이 증원되었을 때 의과대학에서 취할 수 있는 교육방식은 ‘강의’밖에 없다. 흔히들 강의와 수업을 혼용하여 사용하지만, 필자가 말하는 강의는 ‘한 방에, 많은 수의 학생들을 몰아넣고, 1인 강사가 말하고, 학생들은 듣기만 하는 일방적 교수 방법’을 이른다. 

강의는 가장 값싸게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개발도상국과 같이 신속한 양적 성장이 필요할 때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창의성을 바탕으로 질적 성장을 필요로 하는 사회라면 그 한계가 명확하다. 수동적 강의 위주 교육이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과 도약에 걸림돌이 됨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의학지식의 반감기가 날로 짧아지고 있는 21세기에 강의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복합적 능력을 보유한 의사를 절대 배양할 수 없다. 

좋은 의사 1명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교육 방법을 총동원해야만 한다. 예컨대 학생이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사례 중심의 토론학습을 통해 질병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환자의 문화와 심리·사회적 요소까지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진료에서 부딪히게 되는 윤리적 법적 딜레마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성찰하게 해야 하며, 각종 시뮬레이션 교육, 일대일 또는 소그룹 멘토링을 통한 임상 교육 등, 이 짧은 글에서는 다 설명할 수도 없는 매우 다면적인 교육을 전문인력의 지적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여 제공하는 고난도 교육이다. 이런 다면적·다차원적 교육이 강의식 수업만으로 대체될 때, 좋은 의사가 배출되는 의대 교육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적인 의학교육의 목표는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양질의 의사를 배양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것은 적정 진료능력과 더불어 생명윤리와 의사의 직무윤리를 준수하며, 일회성 진료를 넘어 총체적인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효과적인 자원분배와 건전한 의료정책 수립하는 등 대중의 건강을 수호하는 전문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21세기 세계 의학 교육계는 20세기의 획일적 강의식 교육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즉, 21세기 의사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학생 중심의 개별화 교육’이다. 학습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의대생의 잠재력과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교육할 때,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복합적 능력을 갖춘 좋은 의사를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21세기 의학교육은 현장바탕 실무교육, 역량바탕교육, 창의융합인재와 의과학자 양성, 급격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변화 관리능력의 배양을 강조한다. 지금 강요받는 졸속하고 급작스러운 의대생 증원은 이 모든 21세기 의학교육의 방향성을 교란하고 역행하는 것이며, 우리나라 교육을 100년 전으로 퇴행시키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이제는 북미와 서유럽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교육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멈추지 않고, 우리나라 의과대학은 학생의 선호도와 개별성을 존중하고 잠재력을 신장시키는 더욱 고도화된 교육 시스템으로 도약해야 한다. 이런 도약 발전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교육인프라의 확충이다. 

즉, 토론식 소그룹, 프로젝트 수업, 다양한 선택과정 제공, 코칭과 멘토링을 포함한 21세기 선진의학교육을 위해서는 교원 수 증원, 교육시설, 설비 확충, 다양한 교수전략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행정인력의 증가가 필요하다. 따라서, 교육인프라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없이 의대생 숫자만 증원하겠다고 하는 작금의 강요된 정책은 100년 전 교육방식으로 의사를 양성하는 것으로, 20세기로 퇴행하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의과대학에서 교수를 더 뽑고 교육재정을 늘리면 되지’라고.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자. 의대생의 등록금은 의대 교육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재정의 극히 일부분에 그치기에, 부속된 대학병원의 진료 수입에서 의대생 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 국립의대의 경우 국고의 지원이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사립대학은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다. 지금 정부는 교수 증원 등을 위한 지원을 할 것이라고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지만, 어떤 규모로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구체성이 없고 그나마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국립대학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사립 의과대학에 대한 지원책은 없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정부가 사립, 국립 의과대학 구분 없이 교수 증원을 위한 재정 보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지금도 턱없이 부족한 기초 교수를 갑자기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정부는 비의대 출신 박사를 기초의학 교수로 임용하면 된다고 하였다. 생명과학 분야 박사도 기초의학의 이론은 잘 가르칠 수 있겠으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다루는 의학을 심도 있게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또한 의대 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상의학을 가르칠 교수는 어디서 수급할 것인가? 많은 젊은 임상교수들이 대학병원을 떠나고 있는 것이 현재 실정이다. 너무나 열악한 근무 여건에서 진료, 연구, 교육이라는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하느라 소진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즉, ‘교수 더 뽑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체계적인 절차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충분한 재원을 투자하기 전에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충분한 재원이 투자된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세금이 더 투입된다는 뜻이다. 그저 의사 수의 증가가 단순하게 의료의 질 향상으로 착각하여 환영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증원된 의대생들에게 내실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막대한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면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결국 제대로 준비 안 된, 졸속한 의대생 증원은 그동안 피땀 흘려 노력한 의학교육의 발전을 뒤로하고, 값싼 20세기의 교육방식으로 의사를 만들게 할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대중에게 물어보고 싶다. “10년 뒤, 여러분은 100년 전 방식으로 교육을 받은 의사들에게 진료받아도 괜찮으신가요?”라고.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