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5.04.24 07:33최종 업데이트 15.05.01 00:03

제보

차등수가제, 이미 9년전 명분을 잃었다

복지부, 5년간 한시적 운영 '약속 위반'

재정안정 불구 14년째 진찰료 삭감


 

2001년 5월 31일 당시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은 '건강보험 재정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의약분업 시행 1년만에 건강보험 적립금은 9189억원으로 고갈될 위기에 처했고, 적자 규모가 4조원이 넘을 정도로 ‘백척간두’ 상황이었다.

 

김원길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재정안정대책을 강력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조기에 재정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을 제정, 2006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2006년까지 한시적인 ‘단기 재정안정대책’으로 발표한 것 중 하나가 차등수가제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차등수가제는 1일 평균 외래환자가 75명 이하일 때 진찰료의 100%를 지급하지만 76~100명이면 90%를, 101~150명이면 75%를, 151명 이상이면 50%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예들 들면 의원에서 의사 1명이 하루 16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면 진찰료는 75명×100% + 25명×90% + 50명×75% + 10명×50%이 된다.

 

복지부가 내세운 명분은 차등수가제를 시행하면 환자 진료를 위해 적정한 시간을 배려할 수 있고, 이는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의사가 75명 이상을 진료하면 할수록 진찰료가 깎이기 때문에 환자가 동네의원으로 분산되고, 그렇게 되면 환자 대기시간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차등수가제는 정부 예상대로 재정절감효과를 톡톡히 봤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5년만 놓고 보더라도 의사들은 75명 초과 진료했다는 이유만으로 600억이 넘는 진찰료가 삭감됐다.
 

내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등의 타격이 특히 컸다.

 

"2006년까지 단기 운영 약속 위반"
 

하지만 정부는 2006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9년째 의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14년간 재정절감에 기여해줘서 고맙다는 한마디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은 차등수가제를 폐지하라고 촉구했지만 복지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환자 분산효과는 있었을까?
 

의료윤리연구회 이명진(이비인후과) 전 회장은 '맛집'에 비유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소문난 맛집이 멀리 있더라도 찾아가고, 줄을 서서 기다리듯이 평판이 좋은 의사는 당연히 환자가 많게 되는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단순히 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진료비를 삭감해 왔다"고 꼬집었다. 
 

환자들은 소문이 난 의사를 찾는 것이 상식이며, 대기시간이 길더라도 감내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는 차등수가제를 시행하면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되고, 환자들이 여러 병원으로 분산된다는 상식을 초월한 논리로 15년간 우려먹고 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그는 "차등수가제는 애초부터 환자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면서 "실력과 노력을 통한 선의의 경쟁을 무시하는 폭력이고 일종의 착취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과의원을 운영중인 A원장은 하루 평균 90명 이상을 진료하고 있다.
 

A원장은 "의사가 환자를 볼 때 진찰료를 100% 받을 수 있는 75번째 환자에 대해서는 10분간 진료하고, 진찰료가 50% 삭감되는 151번째 환자한테는 1분만 진료하느냐"고 따졌다.

 

이어 그는 "환자는 의사를 믿기 때문에 단골 의원에 가는데 차등수가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보낼 수 있느냐"면서 "환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의사를 보고 단골 의원을 가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길다고 다른 의원으로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등수가제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든 것은 건강보험 재정이 수년째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 분산효과 전무, 재정 흑자 전환해 명분 상실
 

건강보험 재정 위기 해소라는 정책 목표가 이미 10여년 전에 달성된데다가 환자 분산 효과가 없다는 게 입증된 상황에서 더 이상 제도를 끌고갈 명분을 상실한 셈이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23일 의사협회, 약사회, 시민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차등수가 개선 간담회를 열어 제도 폐지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는 차등수가를 폐지하되 병원급까지 구간별 환자수를 공개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1일 의사당 환자수가 100명 이하인지 101~200명인지, 201명 이상인지 공개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협 서인석 보험이사는 "차등수가제는 일몰제가 적용된 제도였기 때문에 2007년 폐지했어야 했다"면서 “조건부 폐지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일부 대학병원처럼 오전에 200명씩 진료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구간별 환자수를 공개해 의료기관을 통제하겠다는 발상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일단 차등수가제를 폐지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의료계와 협의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안창욱 기자 (cwahn@medigatenews.com)010-2291-0356. am7~pm10 welcome. thank you!!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