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6.07 04:29최종 업데이트 19.06.0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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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전공의 등 여성 의사의 인권 향상 위한 대책 우선순위는

[임신 전공의③] 임신 의료인 근무지침 준수 시급... 수련시간 연구하고 역량중심 교육안 만들어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전공의 모집 면접에서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 지원자는 임신 계획이 없다고 증명해야 했다. 의국에서는 임신을 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 임신을 한 전공의는 병원에서 질시나 압력을 받는 것은 물론, 임신부 근로자로서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위해한 일에 내몰렸다."

"임신 전공의 대책으로 의료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논쟁은 수련시간 단축으로 인한 추가수련 여부였다. 하지만 추가수련만으로는 결코 임신 전공의의 수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임신 전공의 논쟁은 의료계 내에서 여성 전공의의 위치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활발한 논쟁을 거쳐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여성 전공의들의 목소리 중에서)

이번 임신 전공의 기획은 여성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통해 임신과 관련해 전공의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고, 현재 진행 중인 추가수련 논쟁을 짚은 다음,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는다.

임신 전공의 문제
① '임신할 계획입니까? 당신은 우리와 일할 수 없습니다' 의료계 만연한 임신 전공의 기피현상
② 임신 전공의 수련교육을 둘러싼 쟁점은... 정량중심 수련 또는 역량중심 수련 관점의 차이
③ 임신 전공의 등 여성 의사의 인권 향상 위한 대책 우선순위는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임신 전공의 수련과 관련해 의료계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수련병원 내 임신 근로자로서 전공의들의 안전 지침을 준수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임신 전공의 수련 시간과 수련 내용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일이다.

한국여자의사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임신 전공의들의 안전한 수련을 위해 수련병원에서 임신한 근로자의 안전 지침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 전공의들은 현재 수련병원에서 임신 근로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만큼 이를 준수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의료계 내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을 기르고 성편견에 대한 인식 개선을 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임신 전공의 수련시간 문제는 노동자이면서 수련생인 전공의의 특성을 감안해 진료과별로 수련시간을 달리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나아가 임신 전공의의 수련 보충은 단순히 물리적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미흡한 수련 내용을 배우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므로 역량중심의 연차별 수련교육 프로그램을 완성할 필요성도 강조됐다.

임신 전공의 위한 근무지침 준수 등 긴급 조치 시급

한국여자의사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임신 전공의를 위한 임신 의료인의 병원 근무지침을 준수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자의사회는 진료과의 특성을 반영해 임신 의사의 근무환경 가이드라인을 개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자의사회 신현영 이사는 "임신한 의사들이라면 노출을 피해야 하는 환경이나 업무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임신부는 방사선 노출, 장시간 서서 하는 수술, 비행기를 타야하는 일 등을 피해야 한다. 또 임신부는 화장실을 자주 가야하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경우가 많다. 임신 1기에 과도한 노동은 하면 안 된다. 이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이사는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같은 임신 전공의라도 누군가는 배려를 받고, 누군가는 배려를 받지 못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최소한 이런 업무나 환경을 지양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라고 했다.

신 이사는 "정책연구를 통해 진료과의 특성을 반영한 지침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한 비용이 마련돼야 하고, 해당 진료과 여성 전공의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대전협은 자체적으로 임신 전공의의 모성보호와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표준안인 '임신 중 근로지침'을 개발했다. 이 지침은 임신 중 태아 건강영향 물질에 대한 주의사항, 자세 또는 활동에 대한 주의사항, 경고증상 발생 시 대처 방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침에 따르면 방사능 노출 가능성이 있는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고 수은, 납 등 기형유발 물질을 접촉하게 되면 적극적인 경고와 차단 등 적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풍진, 수두 등 감염력 있는 환자로부터 격리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지침에는 불필요하게 오래 서 있는 자세, 체중이 앞으로 실릴 정도로 몸을 심하게 굽힌 자세 등 지양과 체중보다 무거운 것을 들지 않도록 하는 등 자세·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주의사항이 담겨 있다.

대전협 이승우 회장은 "임신 전공의들의 민원을 통해 피해 사례들을 많이 접한다. 임신 전공의에게 안전한 수련 환경은 어쩌면 근무시간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면서 "이에 대해 임신 전공의가 말을 하면 유별난 사람이 된다. 말을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침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임신 전공의 A씨는 "수련병원은 임신 전공의의 업무 재배치에 무관심하다. 의국에서 업무 재배치가 이뤄지는데 지침도 없고 누구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임신에 위험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면서 "병원은 임신 근로자가 주의해야할 일들이 많다. 지침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원 스텝들이 이를 인식하고 지키도록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편견 인식개선 교육과 임신 전공의 수련시간 정책 연구로 의료계 합의 도출해야

여성 전공의들은 의료계 내 만연한 임신 전공의 기피현상과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식개선 교육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자의사회도 의료계가 자발적으로 성편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데 같은 뜻을 밝혔다.

여자의사회는 임신 전공의 수련시간에 관한 논쟁이 또다른 차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신 전공의 수련시간을 연구해 의료계 내에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영 이사는 "의료계는 남성중심 문화가 있고 전공의를 뽑는 의사결정 권한자들은 주로 남성이 많다. 일부에서는 대놓고 3년에 한 번 여자를 뽑는다고 말하는 진료과도 있다. 노동법에 위배되지만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관행이 있었다"면서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의사 4명 중 1명은 여성이다. 관행을 바꿔야 한다. 해당 발언 자체가 불법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이사는 "전공의 선발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똑같은 점수면 남성을 뽑거나,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아도 남성을 뽑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졌다. 전공의 뿐만 아니라 펠로우나 교수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면서 "심지어 T/O가 한 자리인데 여성이 지원해도 군 복무 제대까지 기다려주면서 남성을 뽑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신 이사는 "최소한 선발 기준을 공개하고 만일 누군가 선발 과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채용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현재까지 남성 중심으로 선발해왔던 관행이 불법이라는 식으로 자정작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협 관계자 B씨는 "지도 전문의 등 의국 구성원 모두가 인식 개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서 "일반 기업이 하면 난리가 나는 성차별 질문이 수련병원의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이제는 그런 질문이나 언행을 하면 안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여성은 이래서 안 된다'는 성편견을 해소하고 의료계 문화를 점차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신 전공의 수련시간도 정책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연구는 수련 내용이 다른 만큼 진료과별로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 이사는 "업무 강도가 심한 병원이나 진료과는 임신 전공의의 주 40시간 근무를 이유로 아예 여성 전공의를 뽑지 않으려고 한다"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임신 전공의의 수련시간을 진료과별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수련시간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임신 전공의 A씨는 "임신 전공의 수련 문제를 고려할 때 최근에 임신을 경험했거나 현재 임신 중인 전공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나도 임신 전까지는 임신부들이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막상 임신해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대체인력 마련하고 역량중심 수련교육 바탕으로 수련 보충안 제시해야

임신 전공의 수련 대책으로서 대체인력 마련 방안과 역량중심 수련교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임신 전공의의 수련 보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체인력이 확보돼야 임신 전공의에 대한 차별이 줄어들고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를 기피하는 현상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신 전공의 A씨는 "전공의가 임신으로 인해 업무를 재배치하거나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의 업무 부담과 노동 시간이 동료 전공에게 돌아간다. 이를 중재하거나 조정해야 하는 교수 또한 업무 부담이 늘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임신 전공의 차별과 따돌림은 누군가의 임신으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불이익 때문이다"고 밝혔다.

A씨는 "의국 또는 수련병원은 배정받는 전공의 수가 정해져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임신으로 인한 인력 공백 문제나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남성 지원자를 전공의로 선호하게 된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임신한 전공의는 동료 전공의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임신 전공의 기피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체 인력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며 "인력 보충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 대체 인력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한 지침이 있어야 임신 전공의 기피하는 현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회장은 "국가가 임신 전공의의 모성보호를 위해 수련병원에 대체인력을 마련할 비용을 지원하는 등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전공의 임신으로 인해 공백이 생기는 인력 문제로 의료계 내에서 갈등을 키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임신 전공의가 모성보호 권리를 보호받으면서 안전하게 수련을 받으려면 대체인력에 대한 지원 방안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의사들은 이미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고 병원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 방안이 없다면 임신 전공의의 권리를 보호받기 어렵다"라며 "임신 전공의들은 계속해서 임신부로서 무리한 일에 내몰리며 안전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전협은 연차별 수련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연차별 수련교육 프로그램은 연차에 따른 수련 내용의 표준안을 마련해 전공의 수련의 질을 높이는 역량 중심 수련 방안을 의미한다.

대전협에 따르면 지금도 연차에 따라 수련 내용이 분리돼 있지만 수련병원에 따라 편차가 크다. 전공의 수련교육은 연차별로 전공의들이 반드시 배워야하는 수련 내용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아 도제식 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어떤 수련병원에서 수련하고 어떤 지도전문의를 만나는지에 따라 전공의 수련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승우 회장은 "임신 전공의들은 근로자로서 모성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수련생으로서 전문의가 되기 위한 교육도 충분히 받아야 한다. 수련의 질을 떨어트리지 않으면서도 임신한 근로자로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연차별 수련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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