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예비후보가 8일 대한의사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수술실 CCTV 설치법은 결국 의료과실 입증의 문제다. 의료사고가 있을 때 의료과실을 어떻게 입증하는지가 달린 중요한 문제"라며 "현재 제도에서 입증 책임만 (현재 환자에서 의료기관으로) 전환하는 정도의 조항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모든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입증책임 전환의 내용이 담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황에서 이번 홍준표 후보의 발언은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입증책임(立證責任, burden of proof) 혹은 거증책임은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어느 한쪽의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가정해 판단하지 않을 수 없을 때 가정으로 인해 당사자의 한쪽이 입게 되는 위험 또는 불이익을 말한다.
원고는 민사소송에서 주장하는데, 이 주장에 대해 피고는 부인할 수 있다. 주장은 본증을 통해 법관이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하며, 부인은 반증으로써 법관의 확신이 흔들리게 하면 된다. 따라서 원고가 주장하고 피고가 부인하는 경우, 양자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거나 혹은 없어서 진위불명이 된 경우,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기 때문에 원고가 패소한다.
피고는 부인 말고도 항변을 할 수 있다. 피고의 항변은 본증인 만큼 법관이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하며, 원고는 이에 대해 부인할 수 있다. 부인은 반증으로서 법관의 확신이 흔들리게 하면 된다. 피고가 항변하고 원고가 부인하는 경우, 양자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거나 없어서 진위불명이 된 경우, 입증책임은 피고에게 있으므로 피고가 패소한다.
입증책임의 전환이란 소송법의 일반원칙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건의 경우에 입법적으로 예외의 경우를 두는 것을 말한다. 즉 소를 제기하는 자가 아닌 소를 당한 자가 위법행위나 고의과실이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법원은 판례에서 의료소송 환자는 ①의사가 의료행위 당시의 임상의학의 수준에서 나쁜 결과를 예견하지 못했거나 나쁜 결과의 발생을 회피할 수 있는 방지책을 세우지 않은 사실(의료과실) ②의료서비스를 받은 후 상해 혹은 사망 등의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 ③의료과실과 나쁜 결과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다만 최근의 판례는 손해 발생의 원인이 의료과실에 의한 것인지를 전문가인 의사가 아닌 보통인은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는 이유로 ③'상당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환자가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이 있는 행위만 입증하고 그 결과와의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않은 이상 의료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다3822 판결).
이런 판례를 통해 이미 피해자측의 입증책임이 완화돼 있다. 판례에 따르면 환자측에게 의료상식에 바탕을 두고 구체적인 의료과실 내용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할 책임은 있는 것이므로, 막연히 '의사가 시행한 시술에 잘못이 있으므로 그 책임이 인정돼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홍준표 후보의 발언을 비춰보면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최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발의된 상황에서 의료계가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법률 개정안의 내용대로라면 환자측에게 판례에서 요구하는 입증책임마저 없게 되고, 단순히 의료행위 이후에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점만 입증하면 된다. 오히려 의사측이 의료행위 과정에서 과오가 없었다는 점과 나쁜 결과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라는 점 등을 입증해야 면책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의사들에 대한 불측의 손해, 소송의 남용 및 이로 인한 의사의 진료회피가 우려된다.
의료분쟁의 입증책임이 전환되면 의료사고에 대한 무과실을 의료인에게 입증 책임을 전가하도록 해서 의료사고의 피해를 의심하는 모든 사건에 대해 환자의 주장만으로 의료인이 건건이 무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진료업무보다 의료사고의 무과실 입증 업무가 과다하게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의료사고라고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일방적으로 환자들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의 과실을 주장하며 의료분쟁조정신청을 하게 되고, 의사의 진료 환경은 철저히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불법행위법은 손해를 주장하는 자가 상대방의 고의‧과실 등 입증책임을 부담하도록 돼있다. 형사법적으로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데도 의료사고의 의심을 환자가 주장하고, 의료인이 의료사고가 아님을 의사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 입증책임의 전환이다. 불법행위법상 체계 및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과 보호범위 등을 고려할 때 입증책임의 완전한 전환은 법 체계 적합성에 훼손되는 것이므로 타 손해배상 책임제도와는 달리 의료사고에 한해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은 근대 손해배상법제도상 근본 원칙에도 위배된다.
원칙적으로 의료과오 소송의 경우에도 다른 일반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권리를 주장하는 자가 그 권리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입증책임 전환은 수술실 내 CCTV 설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다. 의협이 홍준표 후보의 방문에 앞서 사전에 문제의 발언을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와 당시 의협이 어떻게 반론을 제시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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