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력 수급추계위 ‘구성’ 놓고…공급자 과반수·의결권 부여 반대 “특권 의식·떼쓰기 안 돼”
국회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 공청회’ 개최…환자단체·소비자단체 등 객관성·공공성 위해 공급자 단체 견제 필요성 제시
14일 열린 국회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 공청회’. 사진=국회방송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장기화되는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국회가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한 가운데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 의대 정원 증원을 찬성해 온 일부 전문가들은 ‘수급추계위원회’의 구성과 권한에 대해 공급자 단체에 대한 견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급추계 대상이 된 의료인력 당사자들이 위원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거나 그 위원회의 결정을 의결하는 권한까지 가질 경우 사회적 합의 도출이라는 차원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표적인 의대 증원 찬성론자인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특권 의식과 떼쓰기보다는 절차에 따른 협상이 존중돼야 한다”며 의사단체 등 이해당사자들이 의결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고,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역시 공급자-수요자-공익 전문가 동률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 공청회’를 개최하고, 국민의힘 김미애, 서명옥, 안상훈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보건의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민주당 김윤, 강선우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 총 6건에 대해 논의했다.
환자·소비자단체 “환자 피해 너무 컸다…폭넓은 환자·소비자·시민단체 참여 보장해야”
이날 12명의 진술인들은 1년째 이어지고 있는 의대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 그 형태와 운영 방법 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중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은 공급자 단체 견제 차원에서 수급추계위원회의 구성에 공급자 단체를 과반수로 보장하는 내용과 위원회의 권한을 사실상 의결기구로까지 확대하는 것을 강고하게 반대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 이후 발생한 의료 공백으로 지난 1년간 환자들의 피해가 너무 컸다고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다.
안 대표는 “의정 갈등은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비과학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의료계의 불신과 항의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갈등을 종식시키고 환자의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은 추계위원회를 신속히 법제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위원회의 구성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춰야 한다. 이수진 의원안을 제외한 5개 법안은 모두 공급자 단체에서 추천한 위원이 전체 위원의 과반 이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객관성이 현저히 결여되고, 심의 결과 공정성도 담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에 안 대표는 “위원회는 보건의료인력 공급자 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 수요자 단체 추천 전문가, 해당 보건의료인력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공익 전문가로 구성하고 객관성과 공정성 담보를 위해 그 비율을 공률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계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안 대표는 의결기구가 아닌 심의 기구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6개 법안 모두 추계위원회 심의 결과를 보건의료정책 심의위원회나 보건의료 인력 정책 심의위에서 의무 반영하고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회적 합의 기구가 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반영해 심의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안 대표는 각 법안들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에 대한 특례 규정을 포함하고 있는 데 대해 “2026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의료계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근거로 해석될 수 있어서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 역시 위원회 위원 구성 방안과 관련해 보건의료 공급자 측 추천 위원이 수급 추계위원회 또는 직종별 분과위원회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법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해당 직종의 위원이 과반수 이상이라는 것은 객관성이나 사회적 합의라는 측면에서 우려가 크다”며 “특히 수급추계위원회의 결정은 결국 상임위원회나 보건 당국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위원회는 자문의 역할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위원회 구성에 있어서 사회적 합의라든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합의나 객관성 측면에서 폭넓은 환자, 소비자, 시민단체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참여 위원의 전문가와 관료의 논의 결정이 아닌 폭넓은 사회적 논의와 다수 전문가의 의견에 기초한 논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고 이 부분에 있어 참여와 투명성 확보를 위한 회의록 공개, 공개 청문회 진행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형선 교수 “이해당사자가 의결 주도해선 안 돼”…신영석 교수 “최종 의사결정은 정부가”
대표적인 의대 증원 찬성론자로 알려진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정형선 교수는 먼저 2012년과 2020년 정부의 의대 증원이 의사들의 반발로 백지화된 역사를 톺아보며 이로 인해 필수의료 의사 부족과 응급실 뺑뺑이가 심화됐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하지만 의사들은 감원 필요성까지 주장하며 의대 증원 논의의 참여를 계속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는 1년 전에 2000명 의대 증원을 발표했고, 전공의들의 이탈로 의정 사태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물론 총선을 앞둔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배경도 의심이 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쏟아낸 밀어붙이기식 발언과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킨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의대 증원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의사 측과 미뤄진 의대 증원을 이루려는 정책 당국의 밀고 당기기는 협상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OECD 국가 평균 임상의사 수가 3.7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꼴찌이고, 인구 10만명당 의대 정원도 6명으로 OECD 평균 14명의 절반도 안되면서도, 국민 의료비는 200조원을 훌쩍 넘어 자연히 의사 1인당 수입은 현재 발표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며 “한국 의사들은 의사 배출을 줄여 환자 수를 늘리고 혹사를 통해 개인 수입을 높이는 고난의 터널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발의된 법안들이 위원회가 의결권을 갖거나 자문만 하더라도 그것을 반영 또는 존중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의결권을 갖도록 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먼저 위원회는 이해당사자의 일방이 의결을 주도하는 구성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의사단체 전체가 의대 정원의 이해관계를 갖고, 행동하는 상황에서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또 의사, 반의사, 간호사, 약사, 치료사 등은 서로 상호 보완적이고 대체적 관계에 있다라는 사실이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발의된 법안 대부분이 의사단체의 과반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 데 대해 “의결권을 가진 추계 위원회라면 공급자와 수요자의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하고, 위원회 밑에는 김윤 의원 안에서 제시된 것과 같이 위원회의 방법론 분과위원회와 직종별 전문 분과위원회를 두고 직종별 전문 분과위원회에서 해당 직종, 즉 의사의 과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의료 인력 수급 체계 조직은 보다 중장기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2020년 400명 증원 발표 시점에서 의료계가 이를 수용하고 함께 지역의사제, 공공의과대학 설치 등을 위해 노력했다면 작금의 의정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특권 의식과 떼쓰기보다는 절차에 따른 협상이 존중받는 문화가 우리 보건의료 제도에도 정착하기를 기대한다”고 의료계를 비판했다.
정부 의대정원 증원의 근거가 된 논문을 발표했던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네덜란드와 일본, 프랑스, 호주, 캐나다,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를 가진 나라들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갖고, 의결 기능은 없는 자문기구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의료인력 5개 직역에 대해서는 매 3년마다, 의료기사 등 20개 직종에 대해서는 매 5년마다 인력수급추계를 실시하고, 의사인력의 경우 진료과목까지 세분화해 추계할 필요가 있다”며 “수급 추계 외에도 인력 양성, 교육, 배치 등에 대한 정책 제안도 함께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본 형태에 대해 제안했다.
그는 “구성은 총 21명으로 생각하며, 세부적으로는 공급자가 추천하는 전문가 3분의 1, 가입자 추천하는 전문가 3분의 1, 공공 파트에서 3분의 1로 제안한다. 위원장은 공공대표 중 호선으로 선임하면 된다”며 “운영 재원은 정부가 부담하면서도 정부로부터 운영 관련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신 교수는 위원회의 위상에 대해 ‘자문기구’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는 “위원회가 추계 결과를 복지부 장관에거 제출하면 장관은 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특별한 이유가 없는 위원회 수급 추계 결과를 준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위원회는 정책을 제안하는 자문기구 역할을, 최종 의사결정은 정부가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옥민수 교수 “보건의료종합계획 안에 수급추계”…장원모 교수 “기술적·사회적 측면 나눠 의사결정 구조화”
이들과 달리 다소 온건한 입장 속에 의견을 낸 이들도 있었다.
울산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옥민수 교수는 수급추계위원회가 보건의료 종합계획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의료인력 수급 추계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건의료 자원은 독립적으로 기능하기 쉽지 않다. 의사 인력은 다양한 보건의료 직종 중에 하나이고 병상이나 의료 시설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추계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차원에서는 모든 것들을 이 위원회 안에서 자원 관련된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며 추계 결과를 종합적으로 심의하는 절차를 추가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옥 교수는 어떤 법률에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일면 타당해 보이지만, 위원회 위상이나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가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와 함께 운영되고 있어서 실효성에 대한 고민이 된다”며 “보건의료기본법에 설치하는 게 타당하고, 김윤 의원 법안대로 수급추계위원회 밑에 직종별 분과위원을 두거나 보정심에서 한 번 더 심의 의결을 거치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라매병원 공공의학과 장원모 교수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는 사회적 합의 기반의 과학적인 추계 값들을 도출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사결정의 영역을 기술적인 측면과 사회적 합의 기반의 측면으로 두 가지로 나누어서 분과를 형성해 그 영역에 맞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구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장 교수는 “추계위의 의사결정 구조는 하위 분과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보고, 분과위원회는 기술 분과, 가치 분과를 통해서 수급 추계 모형의 논리적 모형과 통계적 모형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가치 분과는 사회적 참여를 하는 구성원들이 돼야 하고, 기술 분과는 전문가 주도의 분과가 돼야한다”고 전했다.
나아가 장 교수는 “추계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심의 및 의결권 보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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