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혁신위, 지역보건·일차의료 10대 권고안 공개…보건소는 기획·조정, 의원은 만성질환·재택의료 담당
의료혁신위원회 초고령사회의료체계전문위원회 윤태호 위원장. 사진=보건복지부TV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동네의원의 역할을 질병 치료에서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 재택의료, 통합돌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러나 환자가 내원해 진료받을 때마다 보상하는 현행 행위별수가제로는 의원이 지역 주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거나 다학제팀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차의료기관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려면 등록환자 관리와 예방·돌봄 활동을 보상하는 별도 수가와 인력·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혁신위원회 초고령사회의료체계전문위원회는 지난 25일 ‘초고령사회 대응 지역보건·일차의료 혁신방안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초고령사회에 대응한 지역보건·일차의료 혁신 권고안’을 공개했다.
다만 이번 권고안은 확정된 정부안이 아니다. 전문위원회는 토론회에서 제시된 의견을 반영해 최종 권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보건소는 ‘지역 건강 컨트롤타워’…동네의원은 예방·재택의료까지
이날 발표를 맡은 윤태호 전문위원장(부산의대 교수)은 고령화로 만성질환과 노쇠, 치매, 다제약물, 돌봄 문제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지만 현행 보건의료체계는 병원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치우쳐 있다고 진단했다.
방문진료와 재택의료, 다제약물 관리, 노쇠 예방 등의 서비스도 기관과 사업별로 분절돼 지역 주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전문위원회는 △지역보건의료체계 혁신과 기능 강화 △일차의료 기능 정립 및 지역사회 역할 확대 △지역보건·일차의료 협력 활성화 △법·재정·정보·인력 기반 혁신 등 4개 전략과 10대 권고안을 제시했다.
보건소는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서 지역 건강정책을 기획·조정하고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하는 ‘지역 건강 컨트롤타워’로 개편한다. 도시지역에는 건강생활지원센터를 확충하고 농어촌의 보건지소·보건진료소는 지역 여건에 맞춰 기능을 조정한다.
윤 위원장은 “초고령사회의 복합적 건강 문제에 대응하려면 질병 치료 중심의 공급체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예방 중심의 지역보건·일차의료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차의료기관에는 최초접촉과 포괄성, 조정기능, 지속성을 갖춘 지역사회 건강관리기관이라는 역할을 부여한다. 만성질환과 노쇠를 관리하고 보건·복지·돌봄 자원을 연결하는 동시에 방문진료와 재택의료, 재택임종까지 보편적인 일차의료 서비스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다제약물을 복용하거나 입·퇴원을 반복하는 고난도 환자를 동네의원이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별도의 지원체계를 만들고, 통합지원회의 등 지역사회 통합돌봄 의사결정 과정에 일차의료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도록 했다.
“행위별수가제로는 절대 안 돼”…등록·가치·성과 기반 보상 주문
가장 큰 과제는 보상체계다. 현행 행위별수가제에서는 진찰과 검사, 처치 등 개별 의료행위가 발생해야 보상이 이뤄진다. 반면 예방과 건강상담, 환자 모니터링, 사례관리, 지역 자원 연계는 의료기관이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도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지역보건과 일차의료, 통합돌봄을 협력 관계로 보는 것보다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며 “행위별수가제로는 절대 안 되고 가치 기반이나 성과 기반, 등록관리제에 기반한 수가체계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나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내년부터 활용 기반이 마련되는 공공정책수가와 특별회계를 지역 일차의료 혁신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명훈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전문위원도 책임주치의팀과 다학제 진료, 재택의료, 통합돌봄을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체계로 연결하고 포괄수가 등 새로운 지불제도를 실제 지역에서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위원회는 지역보건의료기관과 일차의료기관이 협의체를 구성해 공동사업을 수행하거나 통합돌봄에 참여하면 별도로 보상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지방소멸대응기금과 지역필수의료특별회계, 건강증진기금 등을 일차의료 인프라 구축에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예방·돌봄 때문에 치료 줄여선 안 돼”…추가 재정 필요
‘초고령사회 대응 지역보건·일차의료 혁신방안 토론회’ 전경
새로운 기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동네의원의 기존 치료기능과 수가가 위축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비룡 서울의대 교수는 “앞으로도 당분간 기존 치료 서비스의 중요성은 여전히 클 것이고 오히려 이쪽에 비용이나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많은 국민이 실제로 받기를 원하는 서비스 역시 예방이나 돌봄보다는 치료 서비스”라고 말했다.
기존 의료체계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부족했던 예방과 건강관리, 돌봄 기능을 추가해야 하며, 그 재원을 기존 진료비에서 재분배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질병이 발생한 환자뿐 아니라 건강한 60·70·80대부터 등록해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체계도 제안했다.
농어촌과 인구감소지역의 일차의료 공급 방식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박건희 원장은 보건소가 행정·기획·조정과 감염병 관리에 집중하는 대신 공공 또는 민간 종합의원 형태의 거점 일차의료기관 100개를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의사와 간호사, 영양사 등이 참여하는 주치의팀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이충형 서울봄연합의원 원장은 “불필요하게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데 돈을 투자하지 말고 이미 지역사회에서 포괄적인 진료와 재택의료를 수행하고 있는 기관을 찾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량 있는 민간의원을 ‘포괄 일차의료 거점기관’으로 육성하고 환자가 같은 의료기관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도록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환자가 머물러야 좋은 환자·의사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인구소멸지역에서는 민간의료기관 지원만으로 의료공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나왔다.
김창수 연세의대 교수는 “의료취약지가 늘어나면 의료 수요나 돌봄 수요의 총량은 오히려 줄어든다”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 의원이나 일차의료기관이 해당 지역에 들어갈 동력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위원회는 지역보건법과 국민건강증진법 등을 개정해 일차의료의 정의와 기관·인력, 국가 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