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입원전담전문의는 제도 도입 10년이 지난 현재도 전국 약 300명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배치 수준을 국내 전체 병상에 적용하면 입원전담전문의 3만명 이상과 연간 4조원이 넘는 재정이 필요한 만큼 입원전담전문의가 진료를 총괄하고 진료지원간호사(PA)와 병동 전담약사가 역할을 분담하는 팀 진료모형과 ‘팀 수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국병원약사회와 대한병원의학회는 25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남인순 국회부의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김윤 의원 주최로 ‘입원환자 다학제팀의료, 필수의료를 지키는 협력의 힘’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여러 질환을 앓고 다수의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가 늘면서 입원진료에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복합적인 임상 판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입원과 병동 전동, 퇴원 과정에서 약물 정보가 단절될 수 있어 전문의만으로 모든 위험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전문의 중심병원, 입원전담전문의만으로 완성 못 해”
대한병원의학회 이정환 대외협력이사(인하대병원 입원의학과)는 고령화로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고 10개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가 늘면서 입원환자의 복잡도와 중증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복용 약물이 늘어날수록 약물 간 상호작용과 중복 처방, 투약 오류 위험도 커진다. 환자 상태가 빠르게 변하는 데다 외래나 다른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은 약까지 확인해야 해 상당한 시간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 이사는 “이제는 단일 분과에서 입원환자를 모두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만큼 전문의가 병동 진료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는 수련 단계에 있고 근무시간 제한과 당직·순환근무로 병동 진료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반면 전문의는 독립적으로 진단과 치료를 결정하고 환자 상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연구에서도 입원전담전문의 진료군은 병원 관련 위해와 욕창, 수술·시술 후 부작용이 감소했다.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도입 이후 응급실 체류시간과 고위험 환자의 재원기간이 줄었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다만 이 이사는 전문의 중심병원이 입원전담전문의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입원전담전문의가 진단과 치료를 총괄하고 진료지원간호사는 처치와 모니터링,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한 대응을 담당해야 한다. 병동 전담약사는 복용약을 파악하고 처방을 조정하며 상호작용과 중복·금기 약물을 점검하는 방식이다. 재활치료사와 사회복지사, 타과 전문의 등도 환자 정보를 공유하며 치료에 참여해야 한다.
이 이사는 “여러 직역이 각자의 정보를 갖고 있어도 이를 조율하지 않으면 전문성은 파편화된 채로 남는다”며 “입원전담전문의가 정보를 통합하고 진료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병동 전담약사 배치와 진료지원간호사와의 공식적인 협업체계를 마련하고 팀 기반 진료를 보상하는 제도와 수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입원전담전문의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정사태와 병원 경영난이 겹치며 관련 인력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며 “다학제 협력이 입원환자의 안전을 높이고 필수의료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라고 말했다.
입원·전동·퇴원 때 약물 정보 단절…“병동약사가 연결해야”
서울대병원 약제부 이민지 임상의료파트장은 입원환자의 약물 오류를 줄이려면 병동 전담약사를 다학제팀의 정식 구성원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입원환자의 27~54%에서 기존 복용약과 병원 처방 사이에 의도하지 않은 불일치가 발생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입원 시점에 50% 이상, 병동 전동 과정에서 60% 이상, 퇴원 시점에는 70% 이상에서 약물 불일치가 나타났다.
이 파트장은 “치료 단계가 바뀔 때 약물 정보가 끊기면서 오류가 발생한다”며 “이는 개별 의료진의 실수라기보다 입원 과정에 내재한 구조적 취약성으로, 병동 전담약사가 단절된 정보를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병원약사가 주로 약제부에서 조제·감사·불출과 처방전 검토를 담당했다면, 병동 전담약사는 입원 전 복용약을 확인하고 중복·상호작용·금기 처방을 점검한다. 신장·간 기능에 따른 용량 조절과 약물이상반응 모니터링, 다학제 회진, 퇴원 복약상담과 지역약국 연계도 담당한다.
이 파트장이 소개한 국내 연구에서 약사가 복용약을 직접 확인한 중재군의 비의도적 약물 불일치는 대조군보다 절반 이상 감소했다. 입원 전 복용약의 원내 처방 반영률은 31.8%에서 66.5%로 높아졌고, 약사가 제안한 처방 중재의 92.3%가 실제 처방에 반영됐다. 약물 위해 예방에 따른 추정 회피 비용은 총 510만원이었다.
약사가 병동에서 환자와 의료진을 직접 만날수록 처방 중재도 활발해졌다. 대만 대학병원 연구에서는 약사의 처방 중재가 조제실 근무 당시 약 800건에서 병동 상주와 회진 참여 이후 약 1900건으로 증가했다.
이 파트장은 모든 병동에 약사를 즉시 배치하기 어렵다면 다약제와 고위험 의약품 사용이 많은 노인·내과계 병동과 중환자실, 장기이식·혈액종양·신경계 병동부터 우선 배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병동 전담약사 운영을 개별 병원의 선의에 맡겨서는 지속하기 어렵다”며 “중증도가 높은 병동부터 다학제팀 단위 시범사업과 병동 전담약사 배치 시범수가를 도입하고 성과를 토대로 본수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치료 이행기 약물 조정을 국가 환자안전 전략으로 규정하고 병동 전담약사 상주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투약 이력에 대한 약사의 접근 권한 확대도 요구했다.
(왼쪽)대한병원의학회 한승준 이사장, (오른쪽)보건복지부 양명철 약무정책과장
“전국 병동 맡기려면 입원전담전문의 3만명”…팀 수가 제안
패널토의에서는 입원전담전문의 개인에게 의존하는 현행 제도로 전국 병동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병원의학회 한승준 이사장(서울대병원 입원의학센터)은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됐지만 전국 등록 인원은 현재 약 300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때 약 400명까지 늘었지만 2021년 본사업 전환 이후에도 감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이사장은 감소 원인으로 낮은 보상과 당직 부담, 병원 내 일자리 부족 등을 꼽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더라도 입원전담전문의만으로 전국 병상을 담당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배치 수준인 병상 100개당 입원전담전문의 약 4.8명을 국내에 적용하면 3만명 이상의 의사가 필요하다. 국내 모든 병상에 입원전담전문의 관리료를 적용할 경우 소요 재정도 연간 4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했다.
한 이사장은 “입원전담전문의만으로 전국의 모든 병상을 담당하는 것은 인력과 재정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제도가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입원전담전문의의 환자안전과 재원기간 개선 효과가 확인된 만큼, 이제는 개인 중심 제도에서 지속 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팀 진료모형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이사장은 “현재는 환자가 입원하면 복용약 확인과 같은 업무를 의사와 간호사, 약사가 각각 반복하는 등 업무분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각 직역이 따로 일하는 비효율을 줄이고 기존 인력이 팀으로 협력하면 전문적인 입원진료를 제공받는 환자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팀 수가 시범사업을 통해 전문의와 간호사, 약사의 전문성과 역할을 함께 인정해야 한다”며 “입원환자 진료 전문가를 포괄하는 ‘호스피탈리스트 팀’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지부도 다학제팀 진료가 환자 치료 효과와 안전을 높일 수 있다는 데 공감했지만, 수가와 인력 관련 업무가 여러 부서에 나뉘어 있어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양명철 약무정책과장은 “구체적인 모델은 세부적으로 검토해야겠지만 다학제팀 기반 의료가 환자 치료 효과와 환자안전 수준을 높인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각인됐다”며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현장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관련 수가는 건강보험정책국, 다제약물 관리사업은 보건의료정책과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간호인력과 입원전담전문의는 각각 간호정책과와 의료자원정책과, 전문약사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는 약무정책과가 담당하고 있다.
양 과장은 “다학제팀 진료를 모델화하고 약물관리까지 수가로 연결하려면 여러 부서가 함께 풀어야 한다”며 “토론회에서 제기된 내용을 내부에 공유하고 관련 부서가 협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제도화 시점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정책을 만드는 데 보고와 재검토, 부서 간 이견 조정 등 오랜 과정이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우수한 운영사례와 성과를 지속해서 축적해 공유한다면 복지부도 이를 학습하고 정책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