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라 말하는 모바일 닥터의 신재원 대표는 얽매이거나 간섭 받는 걸 싫어해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남을 살리는 직업이니 더할 나위 없었다고 한다.
서울의대에 진학한 그는, 병원 내 불합리한 점을 자주 지목하다 보니 후배한테 기자가 될 것을 권유 받기에 이른다. 그래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MBC에 지원서를 넣었다가 덜컥 의학기자가 되었다.
의학상식 전달에서부터 아이티 지진현장 취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기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거치고 나서 또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바로 창업. 2011년,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소셜 의료정보미디어 회사를 차린 것이다.
이걸 시작으로 그 다음은 모바일 앱에 도전했다. 모바일 소아과란 앱으로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은 구글플레이의 인기 출산/육아 앱 1위에 올라 있는 ‘열나요’를 만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도움을 주는 한편, 향후에는 빅데이터 수집을 통해 의료진에게도 유의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의학기자로 딴짓 시작
기자는 3년만 해보기로 마음먹고 시작했다가 결국 5년간 몸 담았다.
서울의대 재학 중 PD수첩, 100분 토론을 즐겨보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가 잠입 취재해 고발하는 '시사매거진 2580'이었다.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의대생이었다.
결혼해 자식까지 둔 상태에서 기자를 하려니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오히려 나를 믿고 응원해 준 아내 덕분에 기자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10년 아이티 지진이 났을 때는 대한민국 의학기자 최초로 현지까지 파견되어 현장 취재를 했을 뿐 아니라 의사로서 실력 발휘를 하기도 했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고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탈장 수술에 참여하고, 혈종제거 수술을 어시스트 하기도 해 당시 내 얘기가 기사에 실렸던 적이 있다. 의사면허를 딴 게 정말 뿌듯했던 기억이다.
스타트업으로 꿈을 실현
기자 생활을 마치고 그 다음을 생각하다 도저히 진료실에 종일 갇혀 있는 건 못하겠고 스마트폰 확산 시대에 이것을 활용해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창업을 했다. 요즘 말하는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창업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저지르지 않으면 못하게 된다. 일단 저지르고 열정이 있어야 성공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과 사업, 둘 다 돈을 버는 건 맞지만 분명 다르다. 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꿈을 실현하는 게 핵심이다.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되지 않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1%만이 성공하는, 실패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 중 하나다.
쉬운 길을 갈 수 있지만 어려운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는, 의료에도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 아이템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시도로 올바른 건강, 의료 정보를 담은 미디어를 모토로 하는 소셜의료정보미디어 회사 '아폴로엠'을 만들었다. OBS 'TV 주치의'에서 MC를 맡고 있을 때였다. 최근에는 의료분야 스타트업으로 전환해 인하공대와 산학협력을 통해 복강경 디포깅(defogging) 기술을 이용한 내시경 영상개선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그 다음으로 야간에 병원에 갈 수 없는 엄마, 아빠들에게 도움을 주는 모바일 소아과를 만들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으로 응급실에 갔을 때 고생했던 경험에 착안해 개발했다. 밤 사이 아기가 열날 때 대부분 응급실을 방문하는데, 실제로는 이 중 80%가 불필요한 방문이다.
이 서비스는 출발은 좋았지만 채팅상담이 원격의료로 오해를 받기도 해 해당 서비스는 결국 중단했다. 모바일 앱과의 첫 경험이 아쉽게 불발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열나요' 앱으로 해외 진출 도전
어느 날 육아카페에서 "37.2℃, 열나요"란 상담글을 보았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체온이 38도가 넘어야 '열'이라고 한다는 걸 당연히 알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체온 측정 간격, 해열제 복용량이나 복용 간격 등 간단한 사실이지만 모르는 엄마들이 많았다.
또 어떤 글에서는 열을 내리려면 젖은 양말을 신기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터넷에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상당히 많은 걸 보고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게 바로 '열나요'란 앱이다. '열나요'는 아이가 열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어플로, 여기에 체온, 해열제, 증상을 입력하면 이를 분석해서 알려준다.
지난 해 7월 출시 이후 지금까지 20만 명이 다운로드 하면서 구글플레이 출산/육아 부문 카페에서 현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밤 사이 열 나는 아기가 국내에만 7만~8만 명, 전세계적으로는 5백만 명 이상이나 된다. '열나요'를 필요로 하는 엄마, 아빠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
국내의 성공적인 반응을 발판 삼아 지난 11월에는 일본 버전을 출시했다. 또 이 달에는 중국 진출을 위해 현지 관계자와 미팅을 갖기도 했다.
현재 20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확보했고, 그 중 1만 명 이상의 예방접종 열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이 빅데이터를 분석해 어린 아이들의 발열관리에 있어 맞춤의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전국적 열성질환 유행지도 서비스도 준비할 생각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 챗봇이나 인공지능 독감진단키트 같은 걸 만드는 게 목표다.
열나요 앱은 또 한편으로, 환자데이터의 주인이 환자(혹은 그 가족)가 되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환자데이터의 주인은 환자가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도 그 데이터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병원이나 EMR 업체는 주체가 아니라 보관해주는 객체이다. 이제 환자가 그 데이터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 첫 걸음에 '열나요'가 함께 하고 있다.
의대생 후배들에게 "사회현상에도 관심 가지길"
후배들이 스타트업 분야에도 활발히 진출하기를 바란다. 헬스케어에 대해 많이들 얘기하지만, 엔지니어에 치중한 개발로 의사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분야에 실제 의료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의 인풋(input)이 중요한 이유다.
알파고(AI)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것은 기존 지식과의 융합이 필요하다. 여기에 의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한국도 이 주류에 낄 수 있다.
중국에서 생겨나는 스타트업 중에 헬스케어 분야는 하루 100개나 생겨나는 실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로 따져도 몇십 개에 불과하다. 디지털 헬스에 대해 중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국내 의료인 창업은 아직 10~20명 정도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이번 아이템을 성공시키고 싶다. 후배들이 보고 이 분야에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부담감이 느껴질 정도로 책임감이 막중하다. 지금으로서는 의사가 하면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표다.
의대에 특강을 나갈 때면 항상 얘기한다. 교과서만 들여다보지 말고,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라고. 김치원 선생의 책 '의료 4차 혁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막상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낸다는 건 실제 매우 어렵다. 앞으로 이런 기술의 변화나 의료에 대한 통찰력·안목을 키워야 한다. 이 분야에서 자연스러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융합적 사고를 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덕분에 공대생 출신 의대생들이 꽤 배출되는데 이들에 대한 인기가 높다. 공대 출신의 의대생, 즉 융합인재가 헬스케어 스타트업 분야에 진출하기가 수월하다.
의사를 선호하는 분위기 덕분에 우리나라도 공대를 다니다 의대로 다시 진학하는 학생들이 꽤 된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디지털 헬스 분야에 진출하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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