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만성적인 의약품 수급 불안정 사태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극심한 해외 원료의약품 의존도와 비현실적인 국내 약가 정책이 결합된 구조적 실패의 필연적 결과다. 이러한 상황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성분명 처방'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오히려 공급망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새로운 임상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잘못된 정책 방향이다.
쌍둥이 위기: 붕괴된 공급망의 두 얼굴
한국 의약품 공급망의 위기는 외부와 내부,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공급망의 기초가 되는 원료의약품(API)을 해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치명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한국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13년 31%에서 2022년 11.9%라는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원료의약품의 57.3%를 중국과 인도, 단 두 나라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약국'인 인도조차 원료의 약 70%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베이징의 정책 결정 하나가 한국의 필수의약품 공급망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더 이상 보건의료가 아닌 국가 안보의 문제다.
내부적으로는 비현실적인 약가 정책이 공급망을 고사시키고 있다. 정부의 약가 통제는 단기적 재정 절감에 기여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필수의약품 생산 기반 자체를 소멸시키고 있다. 제약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항생제, 해열제와 같은 기초의약품 생산을 중단하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 활동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퇴장방지의약품'마저 공급이 중단되는 현실은 현재의 낮은 약가 정책이 생산 동력을 완전히 상실시켰음을 증명한다. 결국 낮은 약가를 달성한 정책의 성공이 안정적 공급을 담보하지 못하는 실패의 직접적 원인이 된 셈이다.
전 세계적 시장 실패: 미국과 영국의 경고
한국의 위기는 전 세계적인 제네릭 의약품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2019년 미국 FDA는 의약품 부족의 근본 원인을 '수익성 낮은 의약품을 생산할 인센티브 부재'와 소수 거대 구매자가 주도하는 무자비한 '바닥을 향한 경쟁(race to the bottom)'으로 지목했다. 최저가를 향한 집착이 품질 관리와 설비 투자를 포기하게 만들어,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한 공급망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는 공격적인 약가 통제가 어떻게 의도와 정반대의 '잘못된 경제(false economy)'를 낳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영국 정부는 아토르바스타틴의 약가를 27% 인하해 720만 파운드를 절감했지만, 이로 인해 주요 제조사가 시장에서 철수하며 심각한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 결국 부족한 약을 확보하기 위해 8개월간 2450만 파운드를 추가 지출해야 했고, 납세자들은 총 1730만 파운드의 순손실을 입었다. 이는 명목 가격 인하에만 집중하는 정책이 역설적으로 총 의료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성분명 처방 해부: 복잡한 질병에 대한 결함 있는 만병통치약
의약품 부족 사태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성분명 처방은 위기의 근본 원인을 완전히 오해한 처방이다. 이 정책은 공급 측면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다음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1. 구조적 위기의 심화: 성분명 처방은 약국 단계에서 최저가 제네릭 선택을 유도해 '바닥을 향한 경쟁'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다. 이는 필수의약품의 생산 중단을 가속화하고 해외 원료 의존도를 심화시켜, 공급 부족을 야기한 구조적 취약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 뿐이다.
2. 심각한 임상적 위험: 모든 제네릭 의약품이 환자에게 동일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가정은 위험한 착각이다. 특히 혈중 농도의 미세한 차이가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협소 치료역 지수(NTI)' 의약품의 경우 무분별한 대체 조제는 치명적일 수 있다. 와파린(항응고제), 카르바마제핀(항전간제), 사이클로스포린(면역억제제)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약국의 재고 사정에 따라 약이 무작위로 변경될 경우 발작, 장기 거부 반응, 심각한 출혈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환자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다.
3. 예측 불가능한 부작용과 비용 상승: 잦은 약 변경은 환자의 혼란과 치료 효과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여 복약 순응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는 치료 실패와 불필요한 입원으로 이어져, 의약품 단가에서 절약한 비용을 훨씬 뛰어넘는 막대한 추가 의료비를 발생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