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활협동조합 방식의 사무장병원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의 사례를 보면 공무원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서류 심사를 하는지 단면을 알 수 있다.
한방요양센터를 운영하던 임모 씨는 의료생협을 만들 작정으로 2011년 3월 H의료생협 통장을 개설하고, 1천만원을 입금했다.
또 자신과 친분이 있던 보험설계사 이모 씨, 한방요양센터 요양보호사 심모 씨, 덤프트럭 기사 임모 씨, 부주 권모 씨가 각각 600여만원을 출자한 것처럼 허위서류를 준비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지인 403명을 조합원으로 등재하고, 이들이 1000원씩 출자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H의료생협 통장에 40만 3000원을 계좌이체했다.
이런 수법으로 임씨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상 300명 이상 조합원, 조합원 출자금 3000만원 이상, 조합원 1인이 총 출자좌수의 20/100 초과 금지 기준을 충족시켰다.
임씨는 이후 창립총회를 한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서울시에 조합설립 인가 신청을 했고, 시는 한달 후 조합설립인가했다.
그러자 임씨는 다음 달 H의료생협 부속 H한의원을 개설하고, 한의사를 고용해 버젓이 진료를 하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3년 협동조합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의료생협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씨의 사무장한의원은 오래 가지 않아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 들었다.
경찰 수사 결과 자신이 전액을 출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마치 지인 4명의 이름으로 600만원씩 H의료생협 통장에 이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심씨는 경찰 조사에서 "처음부터 이사에서 빼달라고 했고, 창립 총회에 참석한 적도 없으며, 이사들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진술했다.
1000원씩 출자금을 납부했다는 조합원 상당수 역시 경찰 조사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정관 사본, 창립총회 의사록 사본, 사업계획서, 임원 명부, 설립동의자 명부, 출자금 납입증명서가 맞는지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서울시는 경찰청의 요구에 따라 2004년 7월 임씨에게 H의료생협 설립인가 취소처분을 통보했고, 행정소송으로 비화됐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임씨가 조합원들의 명의만 빌려 출자금을 납부했고, 조사가 시작되자 조합원들에게 출자금을 납부했다고 대답해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고 환기시켰다.
임씨가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을 때 담당 공무원이 조합원 몇 명에게 출자금을 납입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 전화만 했어도 사기극을 막을 수 있었지만 뒷짐만 지고 있었던 셈이다.
법원은 "비의료인인 임씨가 의료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법상 1인당 출자한도 제한 규정을 준수한 것처럼 꾸미는 방법으로 의료생협을 설립한 후 한의원을 개설했다"면서 서울시의 행정처분이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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