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김효상 칼럼니스트]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원자력 사고였던 체르노빌 사태가 최근 미국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라고 한다. 최악의 사고를 끊임없이 거짓으로 축소하려는 관계당국과 정부 그에 맞서 싸우는 과학자, 시민들의 기록이 가슴에 와닿았고 그중에 아래의 대사가 공감이 많이 됐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 거짓의 진짜 대가란, 거짓을 끝없이 듣다가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그때 무엇을 할 수 있나. 진실에 대한 희망조차 버리고 꾸며 낸 이야기에 만족할 때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 이야기에서 누가 영웅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 말을 들으며 의료 보장성 강화를 기치로 ‘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 등으로 나아가는 문재인 케어를 포함한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방향은 과연 진실일까 거짓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첫째, 의료 보장성 수치를 OECD 평균으로 높여야 하는 것은 진실일까.
정부나 시민단체가 틈만 나면 비교하는 OECD 평균 의료 보장성 수치에 우리가 못 미친다고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OECD 국가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국가와 호주 캐나다 등의 나라들은 국가가 대부분의 의료기관을 소유하고 의료를 통제한다. 또한, 공공의료 보장을 받는 체계인 사회주의 의료 보장 시스템을 갖고 있고 개인 소득의 많은 부분이 의료 보장을 받기 위한 세금으로 징수한다.
사립 의료가 존재하기는 하나 미미하기 때문에 국가의 의료 보장률은 90% 가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민간 의료기관 체계다. 국민들이 부담하는 의료보험료율도 위의 국가들과 비교도 안 되게 적고 전혀 다른 시스템인데 OECD 국가들과 단순 비교해서 우리가 빨리 위의 수치들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허황된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2·3인실 방값, 초음파 MRI 건강보험 적용 등을 통해 전체 보장성 수치를 올린다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서 죽어간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부족한 재원 내에서 전체 보장성 수치 중 상승수치에 집착하기 이전에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 의료의 보장성 수치를 높이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선택의료에는 보장성 수치에 연연하지 않는 정책을 하며 국민들에게 혜택을 더 받으려면 건강보험료를 더 올리는 것이 맞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바른 일이 아닐까. 표만 바라보지 말고 말이다.
둘째 비급여는 과연 의료비 상승의 주범이면서 사악한 것이 사실일까.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의료비 상승의 주범이어서 죄악시돼야 하는 비급여는 도대체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누가 허가하고 의료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일까.
의사들이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가 환자들의 진료, 치료에 필요하다고 의학적인 근거를 통해서 허가하고 그 기준에 맞춰서 사용하는 것이 의학적 비급여이다.
비급여의 탄생 자체가 환자에게는 필요하나 건강보험에서 보장하기에는 국가 재정이 부담되기 때문에 정부에서 환자의 선택권에 따라 비용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비급여를 만든 주체인 정부가 의료진들을 의료비 상승의 주범으로 몰면서 비급여를 없애겠다고 칭찬해 달라고 하는 상황은 웃긴 것이 아닌가.
그럼 애초에 비급여라는 것을 정부가 허가하지 말고 OECD 선진국들처럼 국가가 처음부터 다 보장해줬으면 되는 일 아닌가.
그리고 비급여 중에는 지금 당장 보험재정으로 급여화하지 않으면 환자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항목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항목(2·3인실 방값, 허리 디스크 MRI, 초음파 등)까지 한꺼번에 급여화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결국 인기영합을 위한 것인가.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명목으로 직접 허가한 비급여를 죄악시하고 없애며 자화자찬하는 정부의 행태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셋째 문제없다는 의료전달체계 현실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특진비 폐지, 상급병실료 급여화로 전국 환자들이 수도권의 대형병원들로 몰려들고 있다. 환자단체들은 동네의원을 못 믿고 대형병원들의 서비스가 좋아서라고 한다. 정부는 통계의 오류일 뿐이라며 이미 상급병원은 환자들이 밀려있다는 등 가볍게 넘겨버린다.
사실 정부와 환자단체의 논리대로 환자 자율에 병원 선택권을 맡긴다면 이것은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는 OECD 선진국들과 전혀 반대의 방향이다.
OECD 국가 중 사회주의 의료를 하는 나라는 국가 재정 절감을 위해 환자들의 무분별한 의료기관 이용을 통제한다. 그래서 언론에 가끔 보도되는 것처럼 중환자나 암환자가 치료를 기다리다가 사망하거나 타국으로 진료를 받으러 가는 일이 발생한다.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아래서 아무것도 모른 채 병원 순서를 기다리다가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는 환자들의 억울한 죽음 누가 책임지는가. 한번 무너뜨린 건물을 다시 세우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건물에 깔려서 신음하는 국민들의 아픔은 누가 책임져줄 것인가. ‘그럴 줄 몰랐다’는 정책 관여자가 해줄 것인가.
체르노빌 사태에서 끊임없이 책임 당국자나 정부는 책임회피를 위해 사고를 은폐하려 하고 축소하려 한다. 사고 후 노출 방사선 수치부터 현장의 상황까지 감추고 통제되고 있다는 앵무새 소리만 한다. 그 상황 속에서 방사선에 노출돼 죽어가고 집을 잃고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힘없는 국민들이었다.
문재인 케어, 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 등으로 대변되는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실제로는 갖가지 붕괴 신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구멍이 숭숭 뚫려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 의료체계이다. 그 안에서 결국 피해를 볼 것은 국민들이 아닌가.
실제 의료체계는 속으로 처절하게 곪아들어가고 있지만 곳간에 쌀이 가득하다. 상급병원 쏠림은 통계적 오류라고 하는 당국자들의 이야기는 진실일까 거짓일까. 다시 한번 표와 인기에 영합하며 보건의료 정책을 만드는 정부 관계자와 그에 부화뇌동하는 무리들에게 묻는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 거짓의 진짜 대가란, 거짓을 끝없이 듣다가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그때 무엇을 할 수 있나?’
보건의료정책을 거짓된 진실로 속이고 국민들에게 달콤함 말로 진위를 분간 못하게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 정부와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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