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3.01 00:04최종 업데이트 24.03.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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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께, 참담한 심정으로 글을 올립니다

“2000명 증원은 변할 수 없다”고 밀고 나가시면 이번엔 전공의들도 정말 수련을 포기할 겁니다

[칼럼]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뇌혈관외과 전문의 방재승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께, 병원을 지키고 있는 현직 신경외과 의사로서 참담한 마음에 글 올립니다. 
 
여태까지 보지 못한 전공의들의 강한 태도와 정부의 비현실적인 의료정책에 심각함을 느낍니다. 이번 의료정책을 만든 학자들이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임상 의사들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은 채 잘못된 수치와 정책을 정부에 제시하고 대통령의 힘을 이용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1. 의사인력이 1만5000명이 부족하다는 것은 잘못된 수치이며, 의과대학 정원을 한 해 2000명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의료현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필수의료의사와 지방의사 수가 부족한 겁니다. 필수의료의사가 부족한 것은 의료수가를 정상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겠고, 지방의사수가 부족한 것은 국가에서 지방의료에 투자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료행위에 맞는 의료수가를 정상화해 의사들이 '의료(의술로 병을 고치는 일)'라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부터 죽으라고 노력해 막상 의사가 되고 보니, 순수한 의료행위 자체로 병원을 유지할 수 없다면 다른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는 이야기 들으면서까지 의사를 하고 싶지도 않겠지만, 또한 자신의 삶을 바쳐 직업정신을 발휘하는 시대도 세대도 아닙니다. 그들이 강경할 수 있는 건 젊은 세대들이기 때문입니다. 
 
2. '필수의료 패키지'는 의료수가라는 핵심을 논하지 않은 정책입니다. 얼핏 보면 필수의료를 살리는 듯하게 교묘하게 포장해 놓은 정책입니다. 
 
1) 필수의료패키지에는 “비급여 진료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개인병원이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현재 의료시스템에선 의료수가(의료행위비용)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으니 개인병원 의사들이 비급여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손익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비급여재료 사용을 '필수의료 패키지' 조항으로 제한하면 개원가가 문을 닫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뇌혈관외과 같은 필수의료분야가 주를 이루는 대학병원에서조차 비급여 재료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양질의 수술은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제발 의료수가를 OECD 국가 평균이라도 맞춰놓고 비급여 재료 시장을 손봐야 합니다. 국가 재정이 없으니 당장은 안되더라도 5년, 10년 보고 서서히 수가를 OECD 국가 수준으로 올리는 정책을 시행해야 합니다.

'의료수가' 이야기만 나오면, 국민들이 '돈만 밝히는 의사 집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걸 자주 경험합니다. 현재의 의료수가는 OECD 국가 평균보다 훨씬 못 미치는 터무니없는 수치인데 국민들은 정말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합니다. 제가 시행하는 뇌혈관외과수술의 수가도 일본 수가(OECD 평균)의 1/5 수준임을 어느 국민들이 아시겠습니까?

쉽게 예를 들면 똑같은 재료로 만든 짜장면 한 그릇을 일본에서는 5000원에 파는데 한국에서는 1000원에 팔라고 정부 법으로 정해놓은 겁니다. 중국집 사장님 입장에서는 4000원이 손해니 여기에 몸에 좋다는 금가루, 은가루 같은 것을 짜장면 위에 추가(소위 끼워팔기)하고, 짜장면 그릇을 금대접이나 은대접 같은 것으로(소위 비급여재료 사용)해서 억지로 4000원을 맞춰 실제 수익은 5000원으로 맞추는 게 현재의 한국 의료현실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강제로 금가루, 은가루, 금대접, 은대접을 사용 못하게 하고 그냥 양질의 최고급 짜장면만 만들어 “무조건 1000원에 팔아라! 4000원 손해보더라도 애국심으로 1000원에 팔아라!” 하는 식이니, 어느 중국집 사장님이 애국심만으로 장사하겠습니까?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중국집 사장면이 “짜장면 가격 5000원으로 올려달라!”라고 주장하면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 중국집 사장”으로 매도해버리는 상황과 같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은 전 세계가 5000원에 파는 데, 유독 한국에서는 국가가 통제해서 “1000원에 팔아라!”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그러면 짜장면 수가 100% 인상해서, “2000원에 팔아라! 한 뒤, 그래도 “5000원에 팔게 해주세요!”라고 중국집 사장님이 이야기하면, 역시나 “수가 100% 올려줘도 징징대네.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 중국집 사장!”으로 매도하는 현실입니다. 여기에 더해 필수짜장은 3000원에 팔고, 비필수 짜장은 이제 “금가루, 은가루 넣지 말고 1000원에 팔아라!” 라는 게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입니다. 중국집 사장님들은 “그럴거면 짜장면 안 만들고 안 팔겠습니다. 짜장면 만들고 팔기만 하면 적자가 나는 데 내가 왜 짜장면을 만들어야 되나요?”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럴 경우  “짜장면 안 만드는 중국집은 범죄자로 사법처리하겠다”고 국가에서 으름장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  3000원 받아도 원가가 안 되는데, 이게 무슨 필수의료 수가를 올리는 정책인가요? 국민들이 이런 내막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의료시장' 자체가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도 지금까지 한국은 터무니없는 낮은 수가에도 의사들의 희생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왔습니다. 이제는 이런 '희생정신'과 '애국심'만으로, 요즘의 젊은 세대를 억누르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의사도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직업이기에 원가도 못 받는 의료수가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의사가 필수의료의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이런 말도 안되는 의료수가 현실은 전혀 취급하지 않고, “OECD 국가에 비해 의사 수가 부족하니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학자들은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있는 겁니다. “수가 올려줘도 해결이 안되더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수가를 OECD 국가 평균 정도로 올려줘 본 적도 없으면서 의사 집단만 돈만 밝히는 파렴치범으로 내모는 겁니다. 의료수가를 올리려면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이 의료비를 더 내야 하는 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정치인들도, 나서서 이야기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국민들에게 이를 언급하게 되면 정치인들의 인기가 떨어지니 그러시겠지요. 
 
2) 또한 개원의의 자격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이렇게 급작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의대 졸업 후 몇 년 동안은 개원을 못하게 하는 것으로는 필수의료 인력을 절대 늘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필수의료에 뜻이 많이 있습니다만, 인턴, 전공의를 거치면서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꿈을 접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실의 장벽을 낮추는 쪽으로 우리 어른들이 계속 노력해나가야 합니다. 
 
3.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이 절실합니다. 
 
국민들의 생각과 달리 의사의 처우도 열악한 경우가 많지만, 간호사의 처우는 매우 심각합니다. 병원을 찾는 많은 환자 중 의사 앞에서는 겸손하면서도 간호사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정신 노동 외에 육체적으로도 하루 3교대 근무는 사람의 신체 리듬을 많이 훼손합니다. 불임이나 유산 등 건강 문제로 30대만 돼도 3교대 근무를 못하겠다는 간호사가 대부분입니다. 3교대 간호사의 처우 개선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부결된 간호법에 의사의 진료 행위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의사단체와 충돌을 했던 것으로 압니다만, 이것도 크게 보면 근본 원인은 의료수가가 낮은 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수가가 정상적이면 의사, 간호사의 진료권 다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의료수가가 올라야 간호사의 처우개선을 해줄 수 있으니까요.

특히 코로나 시기 의료인, 특히 간호사를 위험한 현장에 내몰고서는 나중에 월급도 제 때 챙겨주지 않은 지역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최전선에 나서는 의료인들에 대한 '위험수당이나 보상'은 확실하게 챙겨주는 게 국가의 책무라 생각합니다. 이는 소방관이나 군인, 경찰관 등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직종도 똑같이 적용돼야 하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4. 의사 단체를 '돈만 아는 파렴치범'으로 매도하지 말아주십시오.
 
OECD 국가의 의사 노동시간과 연봉을 비교 분석해보면 한국 의사들이 살인적 노동 강도에 시달리면서도 상대적으로 박봉을 받는다는 사실을 통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의사를 집단이기주의의 거대 권력집단으로만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의료기관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 국민들은 아실 겁니다. 한국 의료시스템이 낮은 의료수가(병원비)로 병원 문턱이 낮아 의료 접근성이 얼마나 좋은지를 말입니다.

외국 의사들은 우리나라에서 1주일만 근무하면 바로 사표를 낼 겁니다. 외국 의사들은 워라밸을 중시해서 우리 한국 의사들처럼 자기 희생해가면서까지 환자를 돌보지 않습니다. 작금의 의료대란을 전공의만의 잘못이라 하지 말고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검토하고 정부의 상황을 재고하십시오. 지금 현장에 남아있는 의사들은 자신의 생명을 갈아 넣고 있습니다. 
 
5. 마지막으로 제 개인적인 상황으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수술을 기다리는 급한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의료대란 이후로 예정된 정규수술은 못하고 응급, 준응급 수술만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뇌출혈 환자를 동료 교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을 수술했습니다. 수술을 하는 동안 병동에는 의사(전공의)가 없어 수술장에서 병동 호출을 받아가며 수술을 했습니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병동의 환자가 심각한 상황에 빠지더라도 신속한 대처를 할 수 없습니다. 

제일 먼저 급한 수술을 해야 될 제 환자들 중에 모야모야병 아이들을 가진 40대 초반의 주부가 눈에 밟힙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모야모야병으로 수술을 했는데 정작 아이들 엄마는 아직 수술을 못 받고 있습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들도 밝고 맑게 자랄텐데요. 이 외에도 팔다리 마비가 자주 오는 50대 여성 모야모야병 환자도 수술 대기중이고, 뇌동맥류가 터지기 직전인 60대 여자 환자도 대기 중입니다.

이런 어려운 환자들은 수술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수술 후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공의가 빠진 상태에서는 위험해서 정규 수술을 시행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많은 국민들이 “이렇게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를 늘리라는 건데 의사들은 왜 반대하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도 결국 의료수가 문제입니다. 의료수가가 턱도 없이 싼 탓에 전공의가 아닌 양질의 전문의를 병원에서 많이 채용할 수 없습니다.

병원은 그나마 값싸게 부릴 수 있는 전공의를 소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진료에 투입합니다. 전공의의 희생을 통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건데, 지금의 의료수가로 병원에서 양질의 전문의를 대거 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만 늘어난다고 병원이 양질의 전문의를 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의료수가 현실화 없이 의사 수만 늘리는 건 그나마 희생정신으로 일했던 의사들마저 의료현장을 떠나게 할 겁니다. 한국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뿐입니다. 
 
이런 환자들이 더 희생되지 않으려면 윤석열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려주셔서 합니다. 의대정원을 합의 대상에 포함시켜 주셔야 지금의 이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2000명 증원은 변할 수 없다”라고 밀고 나가시면 이번에는 전공의들도 정말 수련을 포기할 겁니다.
 
저는 30대 초반 젊은 전공의 시절 의사에게 한없이 불합리한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많은 낙담을 했고, 한때는 미국 의사고시를 다시 준비해서 미국 의사가 되고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공의들의 낙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한민국의 의사입니다. 우리가 일한다면 누구를 위해 일하겠습니까? 바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의사들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현직 실무자 의사의 진심 담긴 글을 읽어 보시고, 아무쪼록 '정부, 의사단체(의사협회와 교수단체)'와의 중재가 하루 빨리 이뤄질 수 있게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전공의들이 희망을 갖고 복귀해야 한국 의료에도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사법 처리가 무서워서 복귀하는 건 실질적으로는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재가 되려면 '의사수 증원 2000명' 전제를 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공의들이 복귀한다 해도 현실에 쓸씁해하며 더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미국 의사국가고시(USMLE) 인터넷 사이트가 폭주해서 폐쇄됐다는 씁쓸한 기사를 봤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의료계에 책임있는 인재는 점점 줄어들 겁니다. 언론에는 진료를 제 때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 기사가 연일 뜹니다. 그로 인해 국민 여론은 의사 단체를 '돈만 아는 파렴치범'으로 매도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엔 희망이 없을 겁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드림.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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