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친구가 되라는 말이 있다. 영어권에선 “If you can’t beat them, join them”이라는 상투적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2024년 시작된 1년반의 의정갈등은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에게 강한 집단 기억을 남겼다. 정부 정책이 독단적이고 비합리적이어도, 논리로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는 기억이다. 민간의 주장이 아무리 타당해도,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기로 작정했으면 이를 저지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정부의 힘 중 하나는 바로 언론 장악이었다. 작년 사태 초기에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비대위 활동을 하던 전공의 선생님에게서 부탁을 하나 받았었다. 정부의 정책 홍보에 반박하는 메시지를 내보내려는데, 홍보업체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가능한 업체들을 수소문해 알아봐줬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광고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돌아온 답은 단순했다. “업체가 정부 눈치를 보느라 일을 맡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기자들 중에 의사 측 입장을 실어주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언론사들이 정부 광고 수주를 위해 그런 기사는 못 올리게 막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를 여러 기자들에게 들었다.
언론을 움직이는 것은 광고료다. 광고료가 아닌 독자들의 구독료로 언론사를 운영하려는 시도도 많았지만 항상 결말은 같았다. 구독자 수를 늘려서 더 많은 광고료를 얻어내는 운영 방식이다. 결국 언론사를 움직이는 것은 광고다.
언론사는 광고를 두고 을이 되기도, 거꾸로 갑이 되기도 한다. 언론사들이 광고를 안 실어주는 기업을 타겟으로 비난하는 기사를 쓴다는 비판은 수십년 전부터 반복되는 얘기다.
반대로 광고주가 갑이 되는 사례도 있다. 한 유명 한방병원의 이야기다. 여러 언론사에 “한방병원에 우호적인 기사를 매달 4개 이상 쓰지 않으면 광고를 중단하겠다”는 식으로 압박한다고 한다. 언론 입장에선 한의학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와 무관하게, 운영 문제로 한방병원에 유리한 기사를 작성할 수 밖에 없다.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원장이 말하는 '한의사에 우호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렇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의사들이 한결같이 불평하는 말이 있다. “기자들이 의사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분히 악의적인 기자도 많다. 하지만 이는 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의사협회 같은 의료단체가 평소에 언론을 다루는 작업을 꾸준히 해두었다면 지금만큼 언론에 화날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상이 꼭 언론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NC다이노스의 홈구장 창원NC파크에선 매년 'NC다이노스와 한의사의 날' 행사를 진행한다. 클리닝 타임에는 전광판에 한의사도 초음파를 쓸 수 있다는 광고가 나온다.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홍보 부채를 나눠주기도 한다. 한의학이 저절로 사라질거라며 의사들이 방심하는 동안 한의계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
의사협회 같은 의사 단체도 못할 일이 아니다. 거창한 광고일 필요도 없다. 평소에 국민에게 도움되는 공익 캠페인으로 진행해도 된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타이레놀 안정성 문제나, CPR시 흉부압박 전 확인할 것들도 의미있는 공익광고가 될 것이다.
의정사태가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을 꺾는 것만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절대악이 아니라면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도 이기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