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6.25 10:39최종 업데이트 23.06.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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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진료의사가 개발한 NK세포 치료제…연구자주도 임상시험 넘어 허가까지 '산 너머 산'

[인터뷰] 이규형 이대목동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연구자주도 임상시험 후 식약처 조건부 허가 위한 임상 2상 허가 기다리는 중

이대목동병원 혈액종양내과 이규형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특정 부위에 생기는 고형암과 달리 전신으로 연결돼 순환하는 혈액과 임파선에 생기는 '혈액암'은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라는 인식이 컸다.

실제로 백혈병과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 대표적인 혈액암 외에도 다양한 난치질환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최근 유명 연예인은 물론 젊은이 중에서도 혈액암 발생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이대목동병원 혈액종양내과 이규형 교수가 연구자 임상으로 진행한 난치성 혈액암에 대한 NK세포 치료제 연구를 진행해 주목된다.

이 교수는 일찍이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반일치 골수이식의 문을 열어 혈액암 분야 권위자로 명성을 떨치던 인물로, 반일치 골수이식법 개발 이후에도 환자 치료에 매진하며 난치성 환자 치료를 위한 치료제 개발 연구에 몰두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이 교수를 만나 임상 진료 의사로서 연구자 임상을 주도한 경험과 현재 진행 중인 NK세포 치료제 연구에 대해 소개했다.

난치성 혈액암 환자 골수이식 후 'NK세포' 투여 치료법 개발…혈액암 진행 절반으로 감소

이 교수는 2009년부터 부모와 자식간 골수이식을 가능하게 한 '반(半)일치 골수이식법'을 국내에 도입해 혈액암 치료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골수이식을 하려면 조직적합항원(HLA)과 일치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제간에도 HLA가 일치할 가능성이 한 명당 25%에 불과하다. 형제 4명 중 1명의 확률이라 어려움이 컸다"며 "그런데 부모와 자식은 절반의 유전자형이 일치한다. 이전까지는 HLA가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 간에만 골수이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절반밖에 유전자형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와 자식간 이식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형제 수가 적어지는 추세에서 동종 골수이식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 반일치 골수이식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하지만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하는 전처치 항암제의 특별한 배합과 양을 조절해서 반일치 골수이식 성공률을 높이게 됐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급성 백혈병 등 난치성 혈액암 환자 치료를 위한 차세대 면역 치료법을 내놓았다. 

그는 "혈액암 치료를 하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골수이식을 무사히 끝내도 재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태에서는 재발률이 30%에서 70%까지도 올라간다. 그러다가 골수 기증자 혈액 백혈구에 들어있는 면역세포 중 하나인 NK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을 떠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NK세포는 암세포의 근원이 되는 종양세포, 바이러스 감염세포를 감지해 직접 죽이는 세포독성을 지니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최인표 명예연구원(인게니움 테라퓨틱스 최고연구책임자),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조광현 교수와 함께 공동임상연구를 통해 조혈줄기세포로부터 NK세포를 대량 증식하는 기술을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연구자임상 허가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해당 연구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급성골수성백혈병 및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인해 부모 혹은 자녀 관계의 기증자에게 골수를 이식받은 시험 참가자 76명을 모집해 진행됐다. 

연구팀은 투여군 40명과 대조군 36명을 무작위로 배정해 NK세포 투여군에는 공여자의 혈액 속 NK세포를 골수이식 후 2~3주에 걸쳐 2회 투여했다. 그 결과 2020년 9월까지 30개월 사이에 병이 진행된 경우는 투여군이 35%, 비투여군 61%로 두 집단 간 50%가량 큰 차이를 보였다.

또 골수이식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면역 회복 정도를 살펴보기 위해 NK세포와 T세포의 평균적인 개수를 측정한 결과, 투여군이 비투여군보다 각각 1.8배, 2.6배 더 많았다.

골수이식 후 NK세포 투여로 혈액암 진행을 절반으로 줄인 결과는 혈액암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LEUKEMIA'지 (IF=12.897)에 게재됐다. 

그는 "해당 연구는 난치성 암 치료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간 치료법이 없어 고통받았던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 비슷한 연구들이 있었지만, 근거 수준이 높은 무작위 대조 방식에 기반해 진행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연구는 연구주도 임상시험으로 향후 진료 현장에서 사용되기 위한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일반 임상시험 2상을 진행해야 한다. 현재 인게니움 테라퓨틱스 주도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용 임상연구를 위한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일반 임상시험 2상에 대한 식약처의 심사 기준이 높아 심사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연구자주도 임상시험, 임상연구 규제 및 연구비 지원 '고민'…"정책적 지원 필요"

이 교수가 현재 진행한 NK세포 치료제 연구는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으로 의사가 주도한 연구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은 진료하던 의사가 그 필요성을 느껴 주도적으로 하는 시험으로, 주로 제약사가 주도하는 의뢰자주도 임상과 비교된다. 의뢰자주도 임상은 영리를 추구하는 제약사가 주도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지는 난치성 질환에 대한 연구는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 주도 임상은 난치성 질환에서의 치료제 효과를 평가하는 등 공익적 목적의 연구가 많다.

이 교수 역시 "난치성 혈액암 환자들을 진료하며 치료제의 필요성을 느꼈고, NK세포가 난치성 혈액암 환자에게 생존기간을 포함해 어느 정도 임상 결과를 개선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해당 연구를 진행했으며 본인이 직접 스폰서가 돼서 임상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향후 허가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는 점이다. 현재 NK세포 치료제는 2015년부터 실시한 연구자 주도 임상 2상 완료 후 식약처에 조건부 허가용 2상 임상시험 계획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조건부 허가용 2상 임상시험계획서 타당성 평가를 위한 자문회의를 개최하고 이전 임상시험에서 안전성, 내약성 및 생물학적 활성 등이 충분히 관찰됐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이 부분이 인정되면 조건부 허가용 2상 임상시험계획을 제출하게 되고 이때부터 조건부 허가용 임상 2상 시험이 시작된다. 이 임상시험이 시작되면 식약처는 임상시험 디자인의 형태(대조군, 무작위, 맹검여부 등)와 목적(대리변수 인정여부) 등 내용을 따져 조건부 허가용 2상 임상시험계획을 심사한다.

현재 NK세포 치료제 연구는 조건부 허가를 위한 임상 2상 시험계획 승인 심사 중이며,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렵사리 조건부 허가용 2상 임상시험을 허가받게 되면 그때부터 2상 임상시험이 가능하며 해당 시험이 완료되면 조건부 허가 신청이 가능하다. 

식약처는 이때도 2상 임상시험결과 타당성 평가를 위한 자문회의를 개최하고 ▲정해진 기한 이내 3상 임상결과 제출 ▲위해성 관리계획 시행 등의 허가조건 아래에 조건부 허가를 내준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지 않다. 의사가 사비로 연구비를 마련해야 하고, 약물에 대한 법령과 규정이 복잡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NK세포 치료제 연구 역시 이 교수가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으로 진행된 만큼 높은 규제와 연구비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정부가 난치성 질환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의사과학자 양성을 강조하며 세포치료제 등에 대한 조건부 허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는 의사에 의한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을 끌고 나가기에 어려움이 큰 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그간의 연구 성과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손사래를 치며 "바쁜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연구까지 진행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연구만 전업으로 하는 실험실 의과학연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실적에 대한 압박과 연구비에 대한 부담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라고 현실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진료실 의사들은 환자 중심적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연구의 주제도 환자 중심이다. 따라서 국내에 연구자 임상시험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주제가 있어도 연구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높은 규제, 막대한 연구비 부담은 큰 제약이 된다. 환자 중심의 연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의사 연구자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인 투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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