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의사협의체 릴레이 칼럼
젊은의사협의체는 지난 4월 대한전공의협의회·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주축이 돼 출범한 단체로, 전공의·공중보건의·의대생·전임의·군의관 등 40세 이하 의사들로 구성돼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주요 의료현안과 관련한 젊은 의사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칼럼을 격주로 게재할 예정입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의대정원 확대 이슈는 늘 핫하다. 기사가 나오기만 하면 조회수 상위 뉴스에 등극한다. ‘의사들은 밥그릇 뺏기기 싫어서 정원 확대 반대하지?’라는 댓글은 수천 개의 ‘좋아요’를 받곤 한다.
의사들이 ‘왜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니,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의사들은 돈을 벌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의료소송 건수와 의사 유죄 비율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과거보다 죄의 유무를 밝혀내기 쉬워졌을 수도 있고, 의료소송에서 돈 냄새를 맡은 사람이 많아진 걸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의사를 믿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환자의 결과가 나쁘기를 바라는 의사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의사들이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 의사가 내 가족을 쉽게 생각해서’, ‘돈에 눈이 멀어서’, ‘실력이 부족해서’ 등 의사가 최선을 다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는 2007년부터 매년 국가별 ‘번영 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를 ‘레가툼 번영지수’라고 부른다. 이 연구소는 경제, 기업 환경, 사회적 자본 등 12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데, 2023년 조사에서 한국의 사회적 자본지수가 167개국 중 107위를 했다.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 간 협력을 가능케 하는 제도나 규범, 네트워크 신뢰 등을 총괄하는 말로, 세부 항목인 사법 시스템 155위, 정치인 114위, 정부 111위 등 역시 대부분 하위권을 기록했다.
이 신뢰도는 비단 공공 시스템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 간의 신뢰 수준도 저하되고 있는데, 옆집 부부에게 내 자녀를 맡기고 출근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요즘 세대는 믿지 못한다.
직장에서 통화 녹음은 필수다. 조금이라도 분쟁이 생길 것 같으면, 녹음 시작 버튼부터 누른다. ‘당신이 이렇게 말했잖아. 여기 증거 있는데?’. 신입사원 필수 아이템으로 녹음기를 권장한다.
그리고 이는 진료실에도 스며들어왔다. 진료실에 녹음기를 몰래 들고 왔다가, 녹음 시작을 알리는 ‘띠링’ 소리라도 나면 환자와 의사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눈을 피한다. 차라리 환자만 들으면 괜찮다. 요새는 네이버 환자 카페나 카카오 채팅방에서 녹음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남의 녹음을 듣고 와서는 의사에게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녹음기를 진료실에 반입하지 마세요’라는 안내문보다 ‘녹음한다고 미리 알려주세요’라고 부탁한다.
인터넷에서 보고 온 내용을 의사에게 가르쳐주는 환자도 많다. 의사가 아니라고 말해도, ‘유튜브에서는 이렇다던데, 왜 선생님은 아니라고 하세요?’라고 되묻는다. 그럴 때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히 내가 20만 구독 유튜버의 말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이럴 때면 나도 필살기를 쓸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달라요.’
사회의 신뢰도가 저하되면, 반대급부로 사회 유지 비용은 증가한다. 각종 CCTV, 치안 인력, 분리벽 등 과거에는 필요 없었던 예산이 편성된다. 개인의 불안감 증가는 덤이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바엔,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게 낫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했던 검사라도 우리 병원에서 다시 한다. 시간이 지났으니 환자 상태가 변했을 1% 가능성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환자 부담 비용이 증가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행태들에 대해 다시 돈에 눈이 먼 의사들이라고 욕한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서명받는다. 희박한 확률의 부작용까지 다 설명한다. 환자가 이해 못했을 수도 있다. 불필요한 불안감을 심어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서명이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 병원이 안전하니까.
여전히 우리들은 소리치고 있다. ‘의료 수가를 올려야 하며, 이는 우리의 밥그릇을 위한 게 아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대한민국 의료가 붕괴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답없는 메아리다. 우리 의료계 안에서만 반복돼 들릴 뿐 밖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신뢰가 없어진 사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의사를 믿어준다면, 서로를 믿는다면, 모두가 더 나아질텐데. 우리 모두가 더 건강해질텐데.
※칼럼은 젊은의사협의체의 공식 입장이 아닌 소속 위원 개인의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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