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 반대 이유 들며 파업 가능성 시사…“밥그릇 지키고, 살인∙강간 의사 옹호하기 위한 것 아냐”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전공의들은 정치권의 첨예한 갈등 속에 일방적으로 파업에 내몰리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료계와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모든 법안과 정책이 추진될 경우 저희는 전국 전공의 단체행동(파업 등)을 논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강민구 회장은 2일 의료대란 관련 대국민 입장문을 통해 “젊은 의사들은 동료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최근 민주당이 간호법∙의사면허취소법을 강행처리한 것과 관련해 의사, 간호조무사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연대가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전공의들이 국민들에게 관련 법안과 현재 의료현장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이해와 지지를 구하고 나선 것이다.
간호사 처우 개선엔 동의…간호법은 대리수술∙대리처방 승인 우려로 반대
강 회장은 먼저 대전협은 전공의 뿐 아니라 간호사, 임상심리사 등 보건의료 여러 직역의 처우 개선에 대해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1인당 환자 수 5명 제한 ▲무임금노동 개선 ▲무면허 불법의료 근절 ▲불필요한 위계질서 개선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주100시간, 36시간 연속근무 등 과로에 몰려있는 전공의의 경우도 연속근로시간 제한 등의 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간호법’에 대해서는 향후 대리수술, 대리처방을 합법적으로 승인하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2015년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법이 도입되면서, 일부 병원들이 부족해진 일손을 간호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로 메꿔오는 일이 암묵적으로 행해져왔는데 간호법은 이를 대놓고 승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대전협은 그동안 무면허 의료행위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간호사에게 종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면서도 “최근 복지부에서 발표 예정인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안)와 간호법안 원안의 주요 내용을 종합하면 앞으로 의료기관 및 지역사회 각종 센터 내에서 의사 없이 각종 시술 등 의료행위가 합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단 우려가 있다”고 간호법은 이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 여러분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우리는 향후 의료계 내부의 ‘대리수술 및 대리처방’ 근절 운동을 포함한 자정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며 “의사가 해야 할 일은 의사 추가 채용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자 한다”고 했다.
강 회장은 그러면서 “향후 우리는 병원과 지역사회 등에서 의사의 관리 감독 하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여러 직역이 한 팀을 이뤄 안전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잇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며 “정부와의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이런 부분을 협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살인∙강간 등엔 면허 취소 지지…파업 권리 박탈 시 필수의료 대탈출 혈실화
강 회장은 모든 범죄에 대한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분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의료계가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살인, 강간 등의 중범죄에 대한 의사면허 취소에는 동의하지만,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분야 ‘대탈출’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도 살인 및 시체유기, 강간 등 중범죄를 저지르며 직업 윤리를 저버린 의사와 동료로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며 “하지만 지금의 의사면허취소법은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형 이상 형사처분을 받은 의료인에 대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앞으로 교통 사고를 포함한 모든 범죄에 대해 의사는 면허취소를 걱정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또한 의사면허취소법이 업무개시명령과 엮여 의사들의 파업 가능성을 비롯한 노동 3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생각한다”며 “법적으로 공무원을 제외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직종은 의사, 약사, 화물운수종사자 밖에 없다”고 했다.
강 회장은 “전공의는 주 100시간씩 일하며, 36시간 연속근무를 일상적으로 해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다. 주 100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파업은 최소한의 노동3권이자 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며 “그러나 의사면허취소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우리는 파업 시 업무개시명령 불이행에 따른 의사면허 취소를 각오해야 한다. 사실상 ‘의사 파업 방지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가 파업을 못하면 의료 대란이 없을 테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의료인은 주료 필수의료 종사자다. 젊은 의사들은 악화되는 환경 속에서 필수의료 영역 전공에 지원하지 않을 것이고 조용한 사직 트렌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 회장은 또 “사명감을 강조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의사도 생활인이고 한 명의 직업인”이라며 “시민 여러분들도 급여를 떠나 교통사고로 인한 면허취소,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주100시간 근무를 감내해야 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바보가 그런 선택을 하겠느냐”고 했다.
강 회장은 오히려 환자 안전 확보를 위해서 ‘의사 파업권’ 확보가 필요하다며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선 전공의들이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등을 내걸고 파업을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국내 대형병원들의 입원진료는 의대 교수가 맡고 있을 것이란 일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주100시간 일하는 전공의가 담당하고 있단 점을 언급하며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전공의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문의 중심 입원진료 체계 구축∙건강보험 개혁 필요…시민들에 지지 호소
강 회장은 구체적인 필수의료 위기 해결책으로는 ▲전문의 중심의 입원진료체계 구축 ▲건강보험 개혁 등을 주장했다. 현재 전공의 중심의 병원 입원진료 체계를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건강보험은 국고보조금 상향과 함께 다보험 체계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전문의 중심 입원진료체계 구축에 대해 “물론 전공의도 의사면허를 취득해 입원환자를 볼 실력은 어느정도 갖추고 있지만, 전공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며 “시민 여러분들은 전공의 숫자를 늘리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국내 주요 기피과목의 전문의 비율은 이미 OECD 평균을 훌쩍 상회한다”고 했다.
이어 “최근 젊은 의사 사이에선 열악한 환경을 감내해야 하는 전공의 수련 자체를 기피하는 추세도 있어 전공의 정원이 실제 기피과목 지원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떠나간 전문의를 다시 불러올 방법을 찾는 게 먼저다. 해외 선진국처럼 전문의 중심의 입원진료체계로 바꾸고, 이에 필요한 병상 당 인력 기준을 확보하자는 게 우리의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건강보험 개혁과 관련해선 “고령화 대비,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접세 등을 활용해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독일, 프랑스과 같이 30~40%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는 보건재정의 확충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를 위해 시민들의 건보료를 독일, 프랑스 수준인 급여의 15%로 무작정 인상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선진국 건강보험은 대부분 공공성을 가진 다보험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며 “일부 국가는 보험자 간 경쟁원리를 도입해 효율적 구매를 통한 의료 공급을 유도하고 있다. 중증응급의료, 소아, 분만 등에 대해선 조세 기반 지원과 함께 경증에 대해선 본인부담 강화, 민간보험 기반 이원화된 진료 서비스 제공 등 여러 인센티브 구조 개혁을 하는 부분을 이제는 검토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강 회장은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공의들은 정치권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일방적으로 파업에 내몰리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모든 법안과 정책이 추진될 경우 단체행동(파업 등)을 논의할 수 밖에 없다”며 “합리적이고 의료인 친화적인 의료환경 구축을 위한 노력에 대해 시민 여러분들의 지지를 거듭 부탁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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