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150명 남아있던 소청과 전공의 사직 이유 "낙수과 오명에 희망과 자긍심마저 잃어"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호소문 "월 100만원 보조금, 일시적인 수가인상은 현 상황 모면하기 위한 땜질처방"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패키지에 반대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낸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이 용기 내 목소리를 냈다.
28일 전국에 150명 남짓 남아있었던 사직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이 성명서를 통해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정부는 그간 소청과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그 피해는 아이와 부모의 몫이 됐다"며 "전공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기 전, 10년 이상 임상경력을 가진 전문의들도 낮은 수가로 인해 소청과 진료를 포기하고, 상급병원은 적자라는 이유로 전문의 고용을 늘리지 않는 현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늘어나는 의료소송과 신고에 폐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소청과를 선택했다. 전공의들은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와의 눈맞춤,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가 회복해 지어주는 미소,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보람 등 저울로 잴 수 없는 가치들을 위해 저희는 이 길을 선택했다"며 "소아는 저희가 살려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힘든 수련도 버텨왔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작년부터 시작된 '소아과 오픈런' 사태는 원가보다 낮은 수가와 환자 수 감소로 인해 소아청소년과들이 폐업하면서 이미 예견된 사태였으나 그동안 정부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았고 소청과 전문의들의 호소에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와 부모들의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후에 발표된 다양한 소아 의료관련 정책들을 보며 조금은 개선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으나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2000명의 의대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패키지는 '낙수과'라는 오명과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저희의 희망과 자긍심마저 잃게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소청과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방임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전공의들은 "소청과는 대부분 국가가 정한 급여체계 안의 진료를 하며 영유아 검진 등 각종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지만 오히려 만년 적자로 개원가에서도 대학병원에서도 생존할 수 없었다. 성인과 달리 소아진료는 장시간과 많은 인력, 기술을 요하지만 현재의 수가체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에 나날이 증가하는 의료 소송으로 인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진료를 하다보니 대다수의 소청과 전문의들이 뜻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진료과를 선택하고 있다. 2000명의 의대생 중 일부가 소청과 전문의가 돼도 이후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정책이 되는 것이다. 2000명 중 극소수를 10년동안 기다리는 것보다 저평가된 수가의 개선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정책으로 숙련된 전문의 유입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제해결 방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소아청소년과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환자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 1명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필수의료다. 단순히 수가위주의 개선이 아닌 진료실과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보전을 위한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필수의료 패키지는 해법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오히려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가 '고질적인 의료계의 문제들을 지속하는 패키지'라고 지칭했다.
전공의들은 "2000명의 진로와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의료비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깊은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전공의들은 필수의료의 붕괴를 앞당기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고자 했으나 정부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저희들을 밥그릇을 뺏길까 두려워하는 집단으로, 환자의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로 언론을 통해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후 발표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월 100만원의 보조금, 일시적인 수가인상 역시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땜질 처방에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전공의들은 "힘든 수련과 이 길이 끝나도 비전이 없을 것이라는 수많은 비난에도 저희들은 여린 생명들을 살릴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지금까지 아이들 곁에 있었다. 이번 사태로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더 나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아들, 제자리를 잃어가는 선배 의사들과 동료들,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난하는 언론을 보며 저희의 가치와 미래는 어디에 있을지 무력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2000명의 무리한 증원을 고집하는 것보다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조속히 실시해 더 이상의 의료 붕괴를 막아야 한다. 동반해 쏟아내고 있는 단발성 정책이 아닌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해 붕괴를 앞둔 필수의료 과들의 특수성에 걸맞은 정책과 보상을 통해 필수의료를 소생시킬 정책을 논의해 달라"고 호소했다.
나아가 "저희의 사직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을 아이들과 보호자분들께는 믿음에 보답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장기간의 사직으로 빈자리를 메워주고 계실 교수들과 전임의 선배들, 그리고 간호사들을 포함한 병원의 모든 가족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한다"고 말했다.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호소문 [전문]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전국에 150명 남짓 남아있었던 사직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입니다. 5년 전 전체 840명이였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던 소아청소년과가, 지금은 "2000명" 정도는 증원을 해야 충원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되는 낙수과가 되었습니다. 지속되고 있는 의-정 갈등의 핵심 당사자들로서, 현장에 있는 의사로서 국민 여러분께 저희의 실정과 문제점에 대해 용기를 내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기 전, 10년 이상 임상경력을 가진 전문의들도 낮은 수가로 인해 소청과 진료를 포기하고, 상급병원은 적자라는 이유로 전문의 고용을 늘리지 않는 현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늘어나는 의료소송과 신고에 폐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와의 눈맞춤,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가 회복하여 지어주는 미소,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보람 등 저울로 잴 수 없는 가치들을 위해 저희는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소아는 저희가 살려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힘든 수련도 버텨왔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소아과 오픈런” 사태는 원가보다 낮은 수가와 환자 수 감소로 인해 소아청소년과들이 폐업하면서 이미 예견된 사태였으나 그동안 정부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았고 소청과 전문의들의 호소에도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와 부모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발표된 다양한 소아 의료관련 정책들을 보며 조금은 개선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으나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2000명의 의대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패키지는 ‘낙수과’라는 오명과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저희의 희망과 자긍심마저 잃게 하였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부족하게 된 이유는 이미 배출된 전문의들이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정책과 정부의 방임 때문입니다. 소청과는 대부분 국가가 정한 급여체계 안의 진료를 하며 영유아 검진 등 각종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지만 오히려 만년 적자로 개원가에서도 대학병원에서도 생존할 수 없었습니다. 성인과 달리 소아진료는 장시간과 많은 인력, 기술을 요하지만 현재의 수가체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나날이 증가하는 의료 소송으로 인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진료를 하다보니 대다수의 소청과 전문의들이 뜻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진료과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2000명의 의대생 중 일부가 소청과 전문의가 되어도 이후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정책이 되는 것입니다. 2000명 중 극소수를 10년동안 기다리는 것보다 저평가된 수가의 개선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정책으로 숙련된 전문의 유입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제해결 방법일 것입니다.
소아청소년과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환자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 1명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필수의료입니다. 단순히 수가위주의 개선이 아닌 진료실과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보전을 위한 정책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전문의 수와 함께 위의 정책들을 모두 개선할 수 있다면 최선의 방법이지만 이는 엄청난 건보료의 부담으로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기에 우리는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의 정책을 먼저 실행해야합니다. 반면 정부가 제시한 필수의료 패키지는 “고질적인 의료계의 문제들을 지속하는 패키지”라는 명칭에 걸맞습니다. 지금까지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에 대해 성숙한 협의 과정 없이 막대한 세금으로 1년 안에 해결하겠다는 것은 허황된 꿈이며 지금까지 반복된 실책의 연장입니다. 2000명의 진로와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의료비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깊은 논의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저희들은 필수의료의 붕괴를 앞당기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고자 하였으나 정부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저희들을 밥그릇을 뺏길까 두려워하는 집단으로, 환자의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로 언론을 통해 호도하고 있습니다. 의사 면허 취소, 형사 고발 등으로 압박하며 잘못된 정책 하에서 일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소아청소년과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임을 알고 있는 저희는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좌절감과 실망감으로 깊은 고민 끝에 사직을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발표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월 100만원의 보조금, 일시적인 수가인상들을 포함하여 매일 검증 없이 쏟아내는 정책들은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땜질 처방에 불가합니다. 지방의 의대생을 증원하여도 해당 지역의 근무 또는 환자수가 보장되지 않는 한 일시적인 눈가림일 뿐, 지속될 수 없습니다. 소아청소년과를 포함한 필수의료가 붕괴되기 전에 지금과 같은 적극적인 관심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힘든 수련과 이 길이 끝나도 비전이 없을 것이라는 수많은 비난에도 저희들은 여린 생명들을 살릴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지금까지 아이들 곁에 있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더 나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아들, 제자리를 잃어가는 선배 의사들과 동료들,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난하는 언론을 보며 저희의 가치와 미래는 어디에 있을지 무력감을 느낍니다.
정부는 2000명의 무리한 증원을 고집하는 것보다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조속히 실시하여 더 이상의 의료 붕괴를 막아야 합니다. 동반하여 쏟아내고 있는 단발성 정책이 아닌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하여 붕괴를 앞둔 필수의료 과들의 특수성에 걸맞은 정책과 보상을 통해 필수의료를 소생시킬 정책을 논의해주시길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럼에도 저희의 사직으로 인하여 불안해하고 있을 아이들과 보호자분들께는 믿음에 보답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장기간의 사직으로 빈자리를 메워주고 계실 교수님들과 전임의 선배님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을 포함한 병원의 모든 가족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합니다.
정부의 진정성 있는 움직임으로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아이들을 지키고 있던 의사들이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 의문이 드신다면 저희들의 이야기에 잠깐이라도 귀 기울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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