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4.06 07:42최종 업데이트 25.04.0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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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기록에 대한 형사처벌과 정부의 회의록 작성 보관 의무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전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재판부에서 선고한 벌금형은 말소되지 않고 그 전과기록은 수사기관에 영구적으로 남는다. 기업이나 개인이 확인할 수 있는 범죄경력조회서는 5년이 지나면 삭제된다. 사면이나 특별 조치를 받지 않는 이상 수사기관 기록은 평생 남아 재범 시 가중처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한 안과 의사가 수술 후 진료기록부를 작성했지만, 필수적인 내용을 충분히 기재하지 않았다는 의료법 위반으로 300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진료기록부가 의료법상 요구되는 사항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안과에서 시행한 결막 봉합수술에 대한 의무기록에 수술의 구체적인 내용과 결막 상태, 봉합 범위, 수술 중 소견 등 필수적인 정보를 충분하게 기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의무기록은 환자의 치료 과정과 의료진 간 협업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서 환자의 주요 증상, 진단 및 치료 내용, 경과 등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해 환자의 건강 상태와 치료 과정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하기 위함인데도 안과 전문의가 작성한 내용을 수술 후 다른 의료인이 향후 치료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명확하게 제공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무기록을 이유로 형사처벌 남발 시 또 다른 대형 싱크홀 발생
 
의무기록을 불성실하게 작성하여 결국 수준(Standards) 이하의 의료적 판단을 받은 것이다. 재판부는 결막 봉합수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우리나라는 의료법에 의료인은 환자의 진료 과정과 경과를 기록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의무기록 누락이나, 기록을 했어도 재판부가 수준 이하로 판단하는 경우 얼마든지 형사처벌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선진국에서 의무기록의 부실로 형사처벌을 받는 형태는 지극히 예외적이거나 아예 상상하기도 힘들다. 이것은 부실한 의무기록 행위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의무기록 부실에 대한 적절한 징계는 전과자를 만드는 형사처벌 보다 더 실효적인 방법으로 의무기록을 잘 할 수 있도록 의료(practice)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데 형사처벌을 하는 관행으로 의무기록이 좋아질지에 대한 지적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설명이 부족해도 형사처벌의 대상이요, 설명의 내용을 기록에 담지 않아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혹시라도 부실한 의무기록이 전체 안과의사의 현상이라면 예외적인 본보기 사례에도 형사 처벌을 고려해 볼 수 있으나 외국의 경우 본보기용 처벌은 대개 엄청난 배상금이나 벌금이 부과된다. 부실 의무기록으로 인한 징계에서 자율규제 체계를 적용하는 선진국 대부분은 자체 징계로 높은 의료 수준(standards)을 유지하고 나쁜 의료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부실 의무기록에 안과의사는 범죄자가 된 셈인데 과연 의무기록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
 
이번 사건은 의료로 인한 결과가 환자에게 신체장애나 불구를 만든 경우는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선진국과 같이 면허기구가 의사의 수준에 관한 판단을 내리고 개입한다면 분명 해당 안과의사의 의무기록에 대한 전문가적 판단과 이를 교정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필요하다면 다른 기록에 대한 요청도 했을 것이다. 상습적인 기록 미비인지 어쩌다 한 사례에서 빠진 기록인지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감정판결에 앞서 올바른 방향 찾아가도록 자율규제가 선행돼야
 
선진국에서 의무기록의 수준에 대한 판단은 대개 우리나라 용어 표현으로 행정처분이 우선이다. 가령, 교육 훈련의 문제라면 교육을 요구할 수도 있고 경고나 의무기록에 대한 성실 이행 서약도 가능하다. 그리고 사후 관리도 포함시킬 수 있다. 즉, 행정처분 이후의 의무기록에 대한 확인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형사처벌보다 계도를 통한 의료 수준의 향상과 질 낮은 의료에 대한 방지가 주된 역할을 하는 기구가 면허기인데 아직 우리나라는 이런 기구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하지 않다.
 
통상 의무기록에 대한 처벌의 주된 내용은 내용 변조나 부당한 내용 기재 등으로 허위 증명서 발부 등이다. 이번처럼 의무기록은 했으나 내용이 부실하다는 판단이 환자가 고발한 내용에 근거하는지도 매우 궁금하다. 이런 판결은 향후 의뢰서 등 작성에서 의무기록의 부실로 의사가 전과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적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진국과 같이 전문직으로서 의료수준 향상을 위한 복잡한 징계 조치가 우리나라에 더 수용가능성이 있을지, 아니면 귀찮은데 벌금 내고 잠시 전과자 취급을 받는 것이 더 편할지 생각해 볼 시점이 됐다.
 
시기적으로 묘한 시점에 내려진 판결에 대하여 최근 의정 사태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흥미롭다. 정부는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회의록이나 일정 수준을 갖춘 기록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처음에는 회의록이 없다고 했고 후에 수기로 작성된 것이 있다는 주장으로 번복했다. 수기로 된 기록은 본 적도 없다.

국민만 바라본다는 정부 관리들이 정작 국민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새다. 아니면 말은 국민을 위한다는데 알고 보면 국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회의록 따위는 알 필요도 없다는 태도다. 회의록 부실 기록이나 허접한 행정에도 오히려 당당한 관료의 모습에 기가 질린다.
 
쟁점 사안 회의록조차 제시 못하는 정부 누가 믿고 따르겠나?
 
우리나라에는 정부의 중요한 정책 결정에 대한 회의록을 작성이 누락되거나 부실한 경우 의료법과 같이 처벌 조항이 없거나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보편화된 것 같다. 의무기록을 잘 남기라는 요구는 환자의 알권리와 의료의 투명성, 신뢰성, 독립성 확보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치료 과정의 전개에 따라 과거의 의무기록이 매우 중요할 수도 있어 의무기록에 대한 부실이 잠정적으로 환자나 동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알 권리나 한 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에 중요한 의대 정원 증가의 결정에 대한 부실한 회의록 작성자는 어떤 책임과 제재를 요구할 수 있을까?
 
회의록이 없어도 고위 관료는 여전히 2000명 증원의 당위성과 자신들이 내린 결정은 항상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의사에게 요구하려는 사과법도 정책적 실패를 만들어내는 공직자, 정치가에게도 해당돼야 하는 사안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의무기록에 대한 형사처벌과 중대 정부 정책 과정 결정에서 기록물 미비의 두 사안을 놓고 볼 때 과연 어느 것이 공공의 복리를 위해 더 중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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