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2019년 안인득 진주방화살인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중증정신질환이 방치되고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비극이 발생했고 비슷한 사건이 지금이라도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게 소송의 취지다.
유가족 측 소송대리인인 오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법과 치유)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26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주 혹은 다음 주 안에 손해배상 소장 접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구금액은 일반적인 손해배상 범위 내로 알려졌다.
유가족과 신경정신의학회가 소송을 통해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부분은 경찰 부작위에 대한 위법성과 이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국가의 방관이다.
이번 사건에서 2018년 9월경부터 2019년 3월까지 정식으로 112에 접수된 신고건만 8회였고 특히 3월 신고건의 경우 쇠망치를 꺼내 피해자를 위협한 사건으로 나타해 우려와 급박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8회 모두 신고자들의 호소는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출동 이후 얌전해진 안인득의 말만 듣고는 매뉴얼상 요구되는 조치를 행하지 않았다. 또한 오직 경찰만이 할 수 있는 전문의에게로의 이송조치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2019년 3월 고위험정신질환자 112신고가 들어왔어요’라는 매뉴얼을 만들어 현장에서 경찰관이 대응해야 할 기본조치들을 매우 상세히 규정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경찰은 '흉기소지 여부나 가족 등의 진술을 토대로 이전 112신고 이력이나 범죄전력, 현재 난동상황 및 약물치료 중단 여부 등을 검토'해 전문의 진단 및 보호요청을 할 수 있도록 돼있다.
오지원 변호사는 "경찰이 신고된 접수건 중 한 번이라도 안인득에 대해 매뉴얼상 요구되는 검토를 했다면 유사 범죄전력과 112신고인력, 약물치료 중단 상태 등이 드러날 수 있었다"며 "정신건강복지법상 전문의 진단과 보호요청을 했다면 전문의는 지자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할 수 있어 범행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이런 과정에서 안인득의 형은 이 사건 직전까지도 안인득의 문제를 홀로 떠안고 검찰청 민원실, 시청, 주민센터 등을 전전하며 비자의입원이 가능한지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를 제대로 안내해주는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결국에는 입원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건이 터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유가족 측은 경찰이 현행법만이라도 제대로 지켰다면 사건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다룰 만한 역량강화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오 변호사는 "일선 경찰 개개인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취지"라며 "이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법령과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정신질환자들을 다룰 만한 역량강화 교육이나 훈련의 부재로, 경찰은 이후의 보복이나 갈등이 두려워서 정신질환자들을 이송해야 하는 상황을 회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지금이라도 법을 지킬 수 있는 현장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도 쏟아졌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이영렬 공보이사도 "법이 지켜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역시 명백한 경찰과 지자체, 국가의 책임"이라며 "경찰이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은 현장에서의 책임면제가 되지 않다 보니 책임의 문제가 가장 크고 지방의 경우 인력 부족의 문제가 크지만 국가가 책임을 방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이사는 "대만은 정신보건법에 경찰과 소방관이 자타해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한 즉시 근처의 의료기관에 호송해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보호의무자는 유기금지 의무, 자타해 유의 의무가 있으나 실제 입원이 필요한 상황에선 국가를 통한 도움조차 명확히 정의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백 법제이사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만 찾아가나 응급입원목적으로 응급실 방문을 지원하는 것 외에 진단평가를 시행할 권한이 없어 설득 외에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며 "결국 입원만 까다로워지고 준비는 부족한 상황에서 중증정신질환자들이 사고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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