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계 제외한 전공의∙개원가 절대 반대…필수의료 인력 재배치 우선시하고 전문과 내 인력 불균형부터 해결해야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의지를 공공연히 밝히는 가운데 한국보건행정학회가 2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의사인력 정책,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주제 하에 학술대회를 열었다.
특히 이날 학술대회 메인세션에선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윤석준 교수의 진행 하에 보건의료전문가 5인과 복지부 관계자가 100분에 걸쳐 치열한 토론을 벌여 이목을 끌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 대한개원의협의회 민승기 보험부회장은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서울대 간호대 김진현 교수, 전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최병호 교수, 대한중소병원협회 김태완 정책부회장은 의대정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인사로 참석한 보건복지부 송양수 의료인력정책과장은 의대정원 확대 주장에 힘을 실었다.
OECD 의사 수 통계 놓고 이견…“나라별 차이 고려해야” vs “평균치 의미 있어”
패널 참석자들은 토론 초반 의대정원 확대 주장의 근거로 활용돼 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놓고 맞붙었다.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비해 적은 편이다.
대전협 강민구 회장은 각 국가별 상이한 보건의료체계 등에 대한 고려없는 일괄적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의사인력 부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도 추계 과정에 쓰인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강 회장은 “OECD 통계는 우리도 잘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단순히 OECD 평균보다 의사수가 부족하니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고 얘기해선 안 된다. 국가별 맥락, 재원조달 방식, 의료전달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역설적으로 OECD 통계 상 다른 나라들보다 필수의료 전문의 수가 많거나, 도시와 농촌 간 의사 격차 분포에서도 지역 격차 적은 경우가 대다수”라며 “의사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면 분배 문제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논의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또 “국내 통계에도 문제가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의 경우 의사의 근무시간 계산 시 활동의사 12만명 중 10% 이상을 차지하는 전공의를 제외시켰다”며 “주당 근무시간이 100시간에 육박하는 전공의를 제외하니 당연히 근로시간이 낮게 산출되고 의사 수도 더 부족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서울대 간호대 김진현 교수는 OECD 통계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실제 의료수요를 기반으로 비교하면 의사 부족은 다른 국가들에 더욱 심각한 수준이라고도 했다.
김 교수는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른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보는 건 다양한 시스템을 가진 국가들의 평균 수치”라며 “수치가 굉장히 높은 국가도 있고, 낮은 국가도 있다. 그렇지만 평균치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OECD에서 인구당 의사수 통계를 낼 때 제한점은 1인당 의료 수요가 비슷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우리나라 의료시장에서 국민의 실제 수요를 기반으로 조정해 비교해보면 국민 1인당 의료이용량은 우리나라가 OECD의 2.5배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 시장에서 나타나는 의료수요를 기반으로 의사수급 상황을 다시 추정해보면 우리나라 의사 수는 OECD 평균의 23~25% 수준”아라며 “실제 의사들의 인건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며 일반 근로자와의 임금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는 사실만 봐도 수요와 공급 간 격차가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의료이용량도 많아 정원 확대 불가피 vs 인력 재배치가 우선
중소병원협회 김태완 정책부회장은 OECD 평균에 비해 의사 수는 적은 반면 의료이용량은 많은 상황임을 감안해 의대정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회장은 “1000명당 의사 수로 따지면 타 국가들에 비해 60% 정도인데 국민 1인당 병원 방문 횟수는 2배가 넘는다”며 “결국 우리나라 의사들이 다른 나라 의사들에 비해 4배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어 “결국 의사가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고 투입하는 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의사 수를 늘리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송양수 과장도 “고령화 등으로 미래에 의료수요와 이용량이 상당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 반면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이 장시간 근무를 원치 않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가 점점 확산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와 달리 많은 OECD 국가들은 의료수요 증가와 의사 번아웃에 대응하기 위해 의대정원을 확대하거나 확대 중”이라며 “게다가 1990년대에 의대정원 확대로 신규 배출된 의사인력이 10년 정도 뒤엔 대거 은퇴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최병호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의료이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의사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의 대응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의대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전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선 의사와 간호사를 소위 갈아넣는 형태로 수익을 뽑아내고 있다”며 “의사들은 수입이 낮아지더라도 의사를 더 고용하는 형태를 선호하는지, 지금처럼 늘어나는 수입을 그대로 즐기고 싶은지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 그대로가 좋다면 의대정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미래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젊은 의사들은 수입이 좋고 험한 과목들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양보해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게 맞다”며 “의료계는 향후 인구가 감소하니 의대정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주기적으로 분석하며 조정하면 된다.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너무 겁 먹을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개협 민승기 보험부회장은 “의대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실제 의사 배출까지는 10년이 걸린다. 지금의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의사 수 증원보다는 전문 과목별, 의료기관 종별 쏠림 상황을 풀기 위한 인력 재배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전문과 내 인력 불균형 문제…“정원 확대로 못 풀어” vs “일단 총량이 충분해야”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으로 조명을 받은 필수의료 세부분과 인력 부족 문제를 놓고도 패널들 간 의견이 갈렸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신경외과 의사 중에도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가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환자를 불가피하게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
민승기 보험부회장은 “전문과 내에서도 세부분과 간 불균형이 상당히 심하다. 신경외과 전문의의 중 상당수는 뇌에 비해 수가 등이 좋은 척추 분야를 택한다”며 “정부가 비용을 투자할 때 진료과를 넘어 세부 분과별로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구 회장도 “국내 신경외과 전문의 수는 OECD 평균보다 3.5배”라며 “의대정원 총량을 2배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병원이 채용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이 전문의를 채용하도록 병상당 인력기준을 만들고 상급종합병원을 대개혁하는 게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김진현 교수는 “과목별·지역별 분포, 배치가 중요하단 얘기도 나오지만 그것도 총량이 충분해야 가능하다”며 “의대 졸업생은 3000명인데, 전공의 선발인원이 4000명으로 수급에 미스매치가 생기니 정원을 못 채우는 과가 나온다. 과목 간 불균형 문제 해결을 위해선 시장의 수요변화를 신속히 반영하지 못하는 전공의 정원 결정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의대정원은 5000명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소규모 의대에 정원을 확대하는 동시에 필요할 경우 의대가 없는 국립대에도 의대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송양수 과장은 기존 인력의 재배치, 근로환경 개선 등도 추진할 예정이지만, 동시에 의대정원 확대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송 과장은 “의사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물론 정원을 늘리더라도 최소 10년 뒤에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과거에도 그대로 두다 보니 지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부터 의대정원 확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다가올 미래엔 더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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