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본 게 언제였더라? 가운을 벗어서 뒷좌석에 내팽개쳐 두고 운전석에 앉는데..."
드루와, 드루와… #2.
A-part는 과연 명불허전 지옥이었다.
다른 교수님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나 DD박사의 히스테리와 손찌검은 참 견디기 힘들긴 하더라.
맞을 때마다 윗년차들 뿐 아니라 다른 교수님들까지 분개하였으나
분개는 분개에 그칠 뿐
아무도 DD박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잠도 못 자고 일하는데 얻어맞기까지 하는 것은
참으로 참기 어렵고 서러운 일이었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고, 혹시나 내가 도망 갈까봐
선배들과 교수님들은 노심초사 하였다.
CMC외과의 각 년차의 레지던트는 병원별 순환배치 근무기간이 다 다른 까닭에
한 병원에서 서로 다른 선, 후배들이 자주 교차되는데
내가 강남성모에서 1년차 후반부를 시작할때의 윗년차들은
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고
다른 병원에서 다른 선배 년차들이 강남성모로 왔다.
그 중...
내가 지금까지 학부와 수련의 과정을 통틀어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선배가 3년차로 나와 A-part를 같이 하게 되었다.
DD박사에 DW3년차...(initial이다, 포도당용액(Dextrose Water)이 아니라고...)
지구상 최악의 상전 조합...
이미 Turn표가 짜여진 처음부터
나에겐 골고다 언덕이 예약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기 1년차들이 반복적으로 도망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리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 했었으나
도망갔다 와도 별 penalty를 받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 도망 안나가면 나만 손해인가? '
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A-part는 병실환자 Dressing(상처소독)을 1년차가 하고 중환자실 dressing은 3년차가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또한, part에 상관없이 postop. order(수술 후 처치명령)은 수술에 참여했던 레지던트가 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DW 이 형은
수술이 끝나고 나면 나에게 삐삐를 쳐서
postop. order 내라고 하기 일쑤였다.
그거 잠깐 내는게 뭐 그리 힘든 일이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거 아니라도 스케쥴 앵벌이 하러 다니느라 정신없는 1년차에게
수술 들어가지도 않아서 뭘 어떻게 수술했는지 모르는데(수술시 있었던 상황에 따라 order가 조금씩 달라지고, 때로는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postop. order를 내라고 하는 것은
기운 빠지고 신경질 나는 일이었다.
집도하신 교수님들도 postop. order를 1년차가 내는 것을 금하셨지만 DW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게다가 DW는 틈만 나면 나가서 술을 마셨는데
혼자 나가서 술을 먹다가도
나중에 돈이 모자라면(비싼데를 가니까 그렇지...)
아직 일도 끝나지 않은 밑엣년차를 불러내어
알량꼴량하게 술을 먹이고는 뿜빠이를 하자고 하기도 했다.
어느날...
내 응급실 당직인 날.
(1년차 3명이 번갈아가며 사흘에 한번 응급실 콜을 받는데 이런 날은 거의 잠을 못잔다.)
일 하느라, 콜 받느라 밤을 꼴딱 새고
새벽 6시 조금 넘어 겨우 당직실에 들어와 담배 한대를 물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래도 됐다. 시비걸지 마시라...)
눈은 까끌거리고,
머리는 띵 하고,
온몸은 천근만근인데
이제부터 4개 병동에 나뉘어져 있는 환자들 dressing하고
7시까지 conference room으로 가야한다.
그럼 바로 또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희망이 없는 삶...
그때...
" 윤아, ICU(중환자실) dressing 좀 해라. "
DW가 부시시 일어나면서 말한다.
' 이런 C8... '
나는 밤 꼴딱새고 일 했는데
지는 밤새 술마시고 들어와 실컷 쳐 자고서는
안그래도 바쁜 새벽에
자기 일까지 떠넘기는 DW에 증오심이 폭발했다.
다시 침대에 눕는 DW를 뒤로하고
병원 원내용 삐삐를 책상위에 올려놓고는
당직실에서 나왔다.
곧장 병원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병원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본 게 언제였더라...?
오지 않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95년 식 아반떼에 올라탔다.
가운은 벗어서 뒷좌석에 내팽개쳐 두고
운전석에 앉는데...
한겨울 실외주차장에 있던 차...
운전석은 소스라치게 놀랄만큼의 싸늘함으로 주인을 맞았지만
나는 온몸을 감싸는 그 서늘한 느낌이
마치 신천지를 발견한 환희처럼 느껴졌다.
시동을 걸고 주차 바리케이트를 지나
병원을 빠져 나왔다.
반포대교를 지나, 강북강변로를 서쪽으로 달리며
등 뒤로 떠오르는 여명을 느낀다.
' 아... '
가슴이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았다.
라디오를 켜자 경쾌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차체가 쿵쿵 울릴 정도로 볼륨을 높였다.
7시 조금 전.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의 강변북로를 달리며
크게 소리쳤다.
" 어디 찾아봐라, 이 씹새끼야 !! "
겨울의 차가운 새벽바람이었지만
병원의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에 비하면
상쾌하기 이를데 없었다.
자유...
빠삐용...
억압과 핍박으로부터 해방된 영혼...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도 그 기분을 뭘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3편에서 계속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의 저작권은 저자인 외과 전문의 엄윤 원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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