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2020년 젊은 의사 단체행동 당시 전공의들이 가운을 벗고 정부의 무리한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반대하며,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및 처우개선을 요구한 지 4년이 흘렀다.
당시 전공의들의 투쟁은 대한의사협회의 일방적인 합의로 일단락됐고, 전공의들은 다시 병원의 40%가 전공의인 비정상적인 시스템에서 소진 당해야 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전공의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기존 정원의 65%에 달하는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정책을 갖고 왔다.
길게는 주 88시간까지 근무하며 대학병원을 지탱해온 전공의들도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며 사직서를 내고 침묵의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난 서울아산병원 내과 전공의 A씨, B씨, C씨는 2020년 전공의 파업 이후에도 변한 것이 없는 우리나라 전공의들의 열악한 수련환경과 처우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악몽 같았던 2020년 전공의 파업, 4년 사이 필수의료 붕괴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전공의였던 A씨는 지금도 2020년 당시 꿈을 꾼다. 악몽에 시달리고 눈을 깨면 더 악몽 같은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A씨는 "2020년에도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다. 정부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라며 가운을 벗고 목소리를 냈지만, 일방적으로 합의가 됐고 우리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여전히 힘든 수련이었지만 그래도 진료가 좋아서 버텨왔다. 그런데 정부가 2000명 의대 증원은 물론 의료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필수의료 패키지라는 의료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분노를 넘어 우울감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학생이었던 B씨는 당시에는 어렴풋이 느꼈던 의료 현실을 본인이 직접 의사로 체험하면서, 이미 우리나라는 필수의료가 붕괴됐음을 느꼈다고 전했다.
B씨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24년에 내놓은
7대 요구안에는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법적 부담 완화 등이 담겨있는데 이는 이미 2020년에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4년 동안 바뀐 것이 전혀 없다. 전공의특별법으로 근무 시간이 다소 줄었을지 모르지만 전혀 개선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에게 36시간 연속 근무한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고 놀란다. 실제로 대다수 전공의들이 12시간 근무 후 당직까지 선 후 다음 날 정규 근무한 후 퇴근한다. 최대 연속 40시간 근무도 해 봤다"며 "전공의가 이처럼 병원에서 갈려 나가야지만 유지되는 병원은 이미 정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B씨는 "응급실 당직을 서보면 와서는 안 될 경증 환자들로 응급실이 마비된다. 정작 입원해야 할 중증환자들을 눈물을 흘리며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는 상황에 마주하며 이미 필수의료는 붕괴됐다고 느꼈다"며 "만약 정부가 4년 전부터 전공의의 말을 듣고 대학병원에 전문의 수를 늘려 전공의 근무 시간을 줄이고, 수가를 개편해 필수의료에 전공의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후에, 과학적 기구를 통해 단계적 점진적으로 증원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C씨는 "정부가 의료계의 신뢰를 배반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있었다. 해결한다고 한 지 수 년이 지났는데 바뀐 것은 없었다"며 "사실 내과는 환자를 직접 보는 과이다 보니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결정이 더 힘들었다. 그런데 이 수단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전공의들은 2020년도, 아니 그 전부터 지속적으로 전공의 수련 문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했지만 묵살 당했다. 그래서 정말 어려웠지만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자발적인 사직, 필수의료 지탱해 오던 전공의 '비폭력 저항운동'
사직에 몰린 전공의들이 돌아올 방법은 무엇일까.
A씨는 "이번 사태의 당사자는 전공의와 학생이다. 교수와 의사협회가 아니다.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사직하고, 휴학계를 낸 만큼 누가 들어가자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상태도 아니기에 정부는 당사자인 전공의, 학생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전공의들은 정말 자발적으로 사직했다. 정부는 의협이 관련돼 있다고 생각해 압수수색을 했는데 정말 나온 게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교사를 받은 적이 없다. 그동안 필수의료를 지탱해 오던 전공의들을 정부가 겁박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의업을 지속하지 못하겠다고 비폭력 저항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A씨는 "정부가 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하는데, 정부부터가 2000명 증원이나 필수의료 패키지를 관철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증원도 문제지만 필수의료 패키지도 정말 문제가 많다. 전공의들은 정부 정책으로 집이 무너지니까 그 집을 고쳐보겠다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무너질 게 뻔한 집에 어떻게 들어가겠나"라고 정부 의료 개혁의 백지화와 원점 재논의를 주장했다.
전공의 사직으로 병원 기능 마비되면 ‘법정 최고형’…인턴 나간다고 대기업 망하는 게 정상?
B씨는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병원 기능이 마비되고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하면 법정 최고형을 내린다고 말했다. 이 말이 굉장히 모순적인 게 전공의는 수련의다. 수련받고 교육을 받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떠나도 병원은 정상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대기에서 인턴이나 신입사원이 한꺼번에 나간다고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 일이 생길까?"라고 꼬집었다.
그는 "전공의가 나간다고 병원이 마비되는 의료시스템을 만든 것은 정부다. 그런데 전공의에게 책임을 묻는다. 사실 일본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전공의 비율이 10% 안팎이다. 우리나라는 빅5병원의 경우 전공의 비중이 30~40%에 달한다. 미국에서 호흡기내과 전공의를 하는 친구는 교수 1명 전임의 2명, 전공의 1명 총 4명이 환자 10명을 담당한다. 사실상 전공의는 전문의 3명에게 배우는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B씨는 "그에 반해 한국 전공의들은 회진을 돌고 오면 배정된 환자가 25명이 된다. 정말 중요한 결정은 교수님 혹은 전임의가 하지만 실제 처방이나 긴급한 결정은 전공의가 한다"며 "한국은 전공의가 수련을 받는 입장이 아니다. 사실상 노동자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수십년간 전공의들이 요구해왔지만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최근에 입원전담전문의제도도 만들었지만 유명무실한 제도다.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환자는 더 중하고, 힘들다보니 아무도 안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B씨는 "수련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사명감으로 열악한 환경도 모두 감내하라고 한다. 그리고 병원을 나간 의사들을 악마화한다. 최근에는 지하철 등에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알리는 광고에 정부가 90억원을 썼다고 들었다. 여태껏 전공의들의 요구에는 돈 한푼 쓰지 않고, 정부 정책 홍보에 수십억을 투입한다는 것을 듣고 회의감이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씨도 "특정 정책을 이렇게까지 주입식으로 홍보한 사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언론을 이용해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행태에 놀랐다"며 "업무개시명령, 형사처벌, 의사는 직업의 선택의 자유에 앞서 국민 건강을 수호할 의무가 있다는 발언 등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가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함께 비판했다.
전공의들이 보는 필수의료‧지역의료 해결책은?
A씨는 "의사 수 늘리기보다 중요한 것은 수련환경 개선이다. 지역 병원으로 갈수록 전공의들을 수련 대상이 아닌 노동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C씨는 "전공의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의료 소송이다. 외국은 수련 중인 전공의가 소송을 당하는 것 자체가 선례가 많지 않다. 의료인에 대한 형사 처벌 사례도 우리나라는 해외에 몇 십배 많다. 의사들이 고위험 고난도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의료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정부와 의료계 간에 거버넌스가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고 본다. 기존 협의체처럼 법적 효력 없는 것 말고, 실효성 있는 거버넌스를 마련해 전문가들이 함께 과학적 근거를 갖고 의사인력을 추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지방 대학병원은 환자 사례 없어 수련 불가
B씨는 특히 그는 "빅5 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정말 심각하다.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당뇨병으로 1년에 2번 처방을 받으려고 서울아산병원을 찾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다.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하고 큰 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의료전달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지역의료는 살아날 수 없다"고 비판했다.
B씨는 "빅5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은 증원 문제와도 맞물린다. 의대생들은 학교에서 교재와 논문으로 공부하는 것도 있지만 결국 환자를 봐야 한다. 정부안대로 2000명을 늘리려면 그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한 환자도 늘어야 한다. 그런데 환자들이 지역 대학병원을 가지 않는다. 일례로 충북의대 정원을 4배 늘리려면 충북의대 병상 수도 2~3배 키워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대생때는 실습을 통해 사례를 배우는 데, 증원한 만큼 개개인이 배울 수 있는 사례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 수가 늘면 전공의수도 늘어날텐데 지방병원은 환자 사례가 없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나올 수도 있다"며 "실제로 이미 현재도 일부 지방에서는 환자 케이스가 없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 그렇다보니 뜻이 있는 의사들은 전부 서울로 가려한다. 환자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A씨도 "환자들의 서울 쏠림으로 수련이 안 된다는 말이 공감된다. 지역 출신으로 지방병원에서 수련하기로 결정한 친구가 있는데 환자가 너무 없어서 수련받을 환경이 너무 안돼서 결국 포기했다. 실제로 내과는 전임의를 안할 수가 없는데, 지방은 전임의 교육을 하려고 서울로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공의들의 소원은 빨리 환자를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B씨는 "주 90~100시간 일해도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열심히 일해서 환자가 회복되고, 살아나면 그 힘으로 버티는 것이다. 지금도 환자들이 준 편지를 모아두고 힘들때마다 읽는데, 정말로 환자를 보고 싶다. 전공의들은 정책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정말 의학에만 힘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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