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학교육저널에 ‘전공의 사직’ 알린 이주영 교수 “3년 뒤 의대교수 한국 엑소더스 시작”
[인터뷰] 의대교수, NIW 미영주권 추천 요청 이렇게 많았던 적 처음…올해 연말 수련병원 파산 시작되면 새 국면 맞을 듯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이주영 콜로라도 의과대학(University of Colorado School of Medicine) 교수가 3년 뒤인 2027년부터 전공의뿐만 아니라 국내 의대 교수급 전문의들의 ‘한국 엑소더스(탈출)’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정부와 의료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역시 의사 부족으로 인해 해외 의사들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영 교수는 최근 미국판 의학교육평가원(ACGME)의 의학교육 저널인 JGME(Journal of graduate medical education)을 통해 한국의 전공의 사직 사태를 조명하는 기고 논문을 내 관심을 받았다.
이주영 교수는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 혹은 10년 이상의 전문 경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본인 스스로 미영주권을 취득하는 제도인 NIW 추천서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하면서 “NIW 영주권 처리 기간이 3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2027년부터는 전공의와 더불어 교수들의 미국 진출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증원된 인원을 가르칠 교수를 확보하는 것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25년 증원이 된 인원이 본과 실습을 하는 2030년에 대학병원에 얼마나 많은 교수들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라고 회의감을 표했다.
특히 이 교수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린다는 정책 취지와 달리, 실제론 의대증원 정책이 인력 수급이 어려운 2차병원이나 새로 신설되는 3차병원 분원의 원활한 인력수급을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병원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의대증원 정책이 이렇게 급속도로 추진될 수 있었다는 게 이 교수의 견해다.
그는 이번 의정갈등 엔드포인트에 대해선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 일부 재정 상황이 어려워진 수련병원 중 파산하는 곳이 실제로 생기게 되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이라고 봤다.
다음은 이주영 교수와 나눈 서면 인터뷰 일문일답 내용이다.
- JGME 논문 기고 내용을 보면,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이 '값싼 전공의 노동자를 양산해 기존 수련병원의 저비용 운영 구조를 지탱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개선을 위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지만 일부 병원계 단체들과 함께 다른 속내가 있다는 뜻인가.
정부가 갑자기 결성된 한국종합병원협회라는 단체와 회동한 이후 2000명 증원 정책이 급물살을 탔던 것에 주목했다. 한국종합병원협회는 현재 전공의 정원(TO)이 없는 2차 병원급 경영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정부와의 만남에서 ‘적당한 가격에 전문의를 고용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민원을 전달했다. 사실 채용이 어려운 병원들은 무리한 근무 시간과 많은 환자 등 근무 조건이 좋지 않으니 아무리 돈을 줘도 채용을 하지 못한다. 정부와 이런 단체 간 이해 관계가 적절히 맞아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의료대란이 진행된 후 정부는 한국종합병원협회가 속한 병원 현장 답사를 나갔다. 이는 의대증원 인원 배정이 필요한 의과대학 자체 현장 실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정부로서는 우연이라고 하기 어려운 움직임이다. 병원 답사 이후 얼마 있지 않아 3차 병원에서 수련을 못하는 전공의가 있으면 2차 병원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전공의를 갑작스럽게 늘려서 현존하는 3차 병원에서 실습이 불가능한 인원을 2차 병원이나 수도권의 새로운 3차병원 분원으로 할당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 병원이 현재와 같은 저수가 시스템에서는 전공의 TO를 받아서 비용을 절감해야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공의들은 관성처럼 지켜지던 ‘전문의는 꼭 해야 한다’라는 규칙을 깨고 수련을 포기해 버렸다. 여기서부터 정부 스텝이 꼬였다. 정부가 원하는 의료 개혁이 이뤄지려면 증원된 전공의 숫자가 필수였다. 그래야 여러 병원들에 재정적 안정성을 공급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번 전공의 사직에 대해 ‘전공의들이 주인의식과 개별 주체성을 갖고 이번 사태에 임하고 있다’고 평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는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단체행동을 주도하는 일반적인 보건의료노조 등 보건의료계 파업과 다른 양상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파업 사태와 달리 이번 의료대란의 엔트포인트는 좀 특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태의 엔드포인트에 대해선 어떻게 예측하나.
우선 개인적으로 전공의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계몽됐다고 생각한다. 잘 보면 전공의 요구사항은 절대 ‘임금 인상’이 아니다. 이들은 비과학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길 거부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보이기 전까지 정부가 내민 판에서 플레이어로 참여를 거부한 셈이다.
저 역시 한국에서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그냥 주변의 ‘대세’에 따라서 커리어를 판단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당연히 다들 하니 전공의 수련을 해야 한다'라든지, '수련이 끝나면 군의관 복무를 한다'라는 것들이 기본값처럼 설정돼 있다. 이를 Peer pressure(또래 압력)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들 수련과 군 복무 판단에 있어서 개별적 득실을 객관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엔드포인트에 대한 예견은 좀 조심스럽다. 다만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 수련병원 몇 곳이 실제로 파산할 가능성이 있고 병원 파산이 이뤄지면 정부와 의료계 사이 대치의 해결 실마리가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중부 지역부터 시작된 응급실 폐쇄 상황이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하고 국민들이 건강의 위협을 직접 체감하면 그때부터 정부가 정치적 압력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론 정부가 증원 계획을 접고 과학적인 의료인 수요 조사 협력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이후 건보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의료 전달체계 개편안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 정부가 전공의 수련을 하지 않은 이들이 곧바로 진료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개원면허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정부와 정치권에선 의무수련제를 실제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턴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시킨다는 말은 이미 나온 바 있다. 아마 인턴 2년을 끝내야 의사 면허를 주는 형태로 정부는 한국 의료제도를 수정하려고 할 것이다. 정부는 이 인턴 2년차 인원들에게 기피과 주치의 역할을 부여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무너지고 있는 필수 의료를 그나마 연명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속내라고 평가한다.
다만 벌써 의대생들이 공보의, 군의관 등 군복무를 기피하고 있고 젊은의사들도 해외로 나가는 경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정부 예상대로 사태가 흘러갈 수 있을진 미지수다.
- 8월 16일 진행된 교육‧보건복지위 공동 국회청문회에 대한 견해도 궁금하다.
국회청문회를 보니 ‘1년만에 50% 증원’이라는 역사적으로 없었던 큰 정책을 추진하는데 회의록을 폐기했다는 내용이 인상 깊다. 전공의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미래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데 이를 결정한 사람들이 밀실 회의를 했고 정책은 일방적으로 강행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 의대증원 정책으로 인해 젊은의사들 사이에서 미국 등 해외 진출 인기가 늘어나고 있다. 교수급 전문의들의 동향은 어떤가.
현재 놀라운 수의 한국 의대 교수들로부터 미국 NIW(석사 이상의 학위, 혹은 10년 이상의 전문 경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본인 스스로 미영주권을 취득하는 제도)영주권 추천서 요청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미국에 온 이후 이렇게 많은 요청을 받은 적이 없어 굉장히 놀라고 있다.
NIW 영주권 처리 기간은 3년 정도다. 마침 미국의 여러 주에서 의사 부족으로 레지던트 수련 없이 해외 의사들에게 면허를 주는 법안을 상정하고 있다. 이 두 흐름이 맞물리면서 2027년부턴 의대 교수급 전문의들의 한국 엑소더스(탈출)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증원된 인원을 가르칠 교수를 확보하는 것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2025년 증원이 된 인원이 본과 실습을 나오게 되는 2030년에 대학병원에 얼마나 많은 교수들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 미국에선 한국의 전공의 사직 사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제 미국 멘토들에게 현 한국 상황에 대해서 말하면 다들 놀란다. 많은 이들이 인권 측면에서 문제를 지적한다. 미국도 병원 경영진들이 의사를 보드게임의 말처럼 다루는 현상들이 늘어나면서 의사 노조 결성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어느 정도 한국 상황과 접점이 있다. 미국에선 의사가 만약 병원 운영진이 추진하는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직이 너무나 쉽다. 사직의 자유는 한국도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한국계 의대생, 의사들로부터 관련 연락을 많이 받고 있다. 아마 병원 파산이 맞물리기 시작하면 미국 주요 언론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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