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서 하루에도 수 십통 전화 오지만 환자 못 받아…의대정원 '원점 재논의' 합의되도 응급실 전공의 50% 안 온다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전공의 사직 등으로 인한 의료대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응급실 상황이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당장 응급실 관련 사건사고는 보고되지 않고 있지만 응급의료 질 자체가 낮아져 받을 수 있는 환자가 대폭 줄었다는 게 다수 응급실 의사들의 전언이다.
8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 대형병원 중 한 곳에서 응급실 정체로 인해 충수돌기염, 담낭염 의심 환자가 검사 없이 서울아산병원으로 전원됐다.
당시 근처에 있던 강남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 등 모두 시술이 불가한 상황으로 전해졌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 같은 응급실 정체 상황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는 "국가응급진료망에 '중증응급질환 중 일부 진료 제한'으로 뜨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3월 첫주 10곳에서 4월 5일 기준 16곳으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응급의료 현장에서도 점차 진료 역량이 위험수위에 도달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응급의학회 이경원 공보이사는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없이 전문의만으로 진료하다 보니 의사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태로 입원 수술이 줄어 들어 그에 따라 응급실에서도 입원하고 수술할 환자를 못 보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중증응급환자, 응급실에서 진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들은 꼭 진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노력도 점점 한계로 몰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응급 환자 관련 사고가 보고되지 않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응급의료 질 하락으로 인한 악영향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번 정부의 정책 강행으로 인해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응급실로 돌아올 전공의는 절반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응급 수술 뿐만 아니라 응급 시술도 평소 보다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입원이 되던 환자들이 이제 입원이 안 되기 시작하고 진료 역량이 달려서 전원도 못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응급 수술은 최대한 빨리 하는 것이 좋지만 수술이 지연되서 생기는 장기적인 악영향은 현재 수치화하기 어렵다"며 "지금도 요양병원에서 응급실로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가 온다. 환자 좀 받아달라고 하지만 받기 어렵다. 이런 노인 환자들의 사망도 통계에서 누락된다. 응급의료를 포함한 대형병원들의 전반적인 진료 역량이 많이 하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응급실 의사들은 대통령이 의료계와 실질적인 대화를 위해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제언한다. 반대로 이미 응급의료 기반이 무너져 협상이 이뤄지더라도 응급의료 질을 끌어올리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이경원 공보이사는 "대통령 담화, 전공의 대표와 만남 이후에도 전향적 결정 없이 2000명 정원 증원 그대로 고수하고 있으니 이 사태 해결은 점점 어려워 지고 있다"며 "현장에선 전공의 복귀를 바라기 힘들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 지고 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대화에 나서달라"고 전했다.
이형민 회장은 "정부와 어떤 합의가 있더라도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원점 재논의가 된다면 그나마 절반 정도 돌아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미 한국의 응급의료는 망했다. 우리 손을 떠난 듯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비대위는 현재 응급의료 역량 부족 문제를 알리기 위해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응급의학과 전문의 집단행동 방향 등 내용이 담긴 내부 설문조사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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